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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스 Oct 10. 2023

하마터면 무기력할 뻔했다.

   기나긴 연휴가 지났다. 엄마들에게 연휴란, 사랑하는 아이들과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고통의(?) 시간이다. 행복한데 눈물이 난다. 연휴가 끝날 즈음엔 엄마들 어깨에 큰 바위가 내려앉는다. 폼롤러도 이건 못 부순다.  


   직장인들은 멱살 잡혀 끌려가듯 맞이했을 오늘만을 기다려 왔다. 둘째까지 모두 등원시킨 후에야 나도 비로소 퇴근할 수 있었다.


   그런데 북적거림이 갑자기 사라져 버리니 조금 당황스럽다. 고대하던 자유 시간이 주어졌는데 그 속으로 풍덩 뛰어들지 못하고 멈칫한다. 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할 일을 찾아 헤맨다. 아마도 그 시간을 너무나 의미 있게 쓰고 싶었기에, 의미가 없어 보이는 허드레 일에 선뜻 내어주기가 싫었던 모양이다.


    문제는 엄마들의 할 일이란 게 대부분 그 허드레 일이라는 점이다. 인정이나 생산성 따위를 논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영역이다. 아, 물론 게을리했을 때 욕을 먹기는 쉽다. 정체성의 위기를 기회 삼아 자아 탐색 좀 해보려고 하면, 엇? 벌써 4시네. 애들 찾으러 가야 한다.


   집안일처럼 티가 안나는 일을 할 때 흔히 겪는 일이다. 남들은 다 잘 나가는데 나만 멈춰 있는 듯한 느낌이 들면, 원래도 희미하던 의욕이 더 옅어진다. 그리고 이름과는 달리 행동만큼은 매우 잽싼 무기력감이 훅 들어와 그 자리를 차지한다. 소중한 자유 시간도 모래알처럼 흩어진다.


   그래서 난 어떻게 했을까? 무기력보다 더 잽싸게 도망쳤다. 대충 선크림만 찍어 바른 후 걸쳐 입은 그대로 집을 나섰다. 타인들의 활기에 덩달아 힘을 얻기 좋은 카페로 가서 노트를 펼치고 무작정 끄적였다. 뭐라도 쓰니 남았고, 뭐라도 남으니 속이 든든해졌다.


  휴, 하마터면 무기력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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