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누스 Oct 21. 2023

재능으로 화약이라도 만드는 경력 단절의 엄마들

  경단녀. ‘경력 단절 여성’의 줄임말이다. 나는 엄밀히 말해 완전한 경단녀는 아니다. 임상심리사라는 직업 특성상 감사하게도 임신, 출산, 육아의 관문을 통과하는 동안에 자유 계약 형태로 짬짬이 일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본업을 능가하는 부업은 없는 법. 아무리 시간과 체력을 쥐어짜봐도 엄마직을 완수하고 남아도는 시간에 부업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경력이 사망할 기미가 보일 때마다 심폐소생술로 숨을 불어넣으며 버텨온 지 어언 3년이 지났다. 경력 단절은 가까스로 피했으나 늘 경력이 위태로운 경태녀의 삶이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맞다. 그런데 마음은 안 꺾여도 경력은 꺾이더라.


  독하게 사회생활을 하려면 할 수도 있다. 다만 그러려면 아직 엄마 손이 필요한 꼬물이들을 해뜨기 전부터 별 뜨는 저녁까지 기관에 맡겨야 한다. 애들 좀 키워놓고 몇  년 뒤에 복귀하라는 말은 지나치게 단순한 발상이다. 그나마 어린이집은 오랫동안 아이들을 맡아주기라도 하지,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2학년 까지는 한낮에 끝난다. 초등학교 3학년이면 애가 열 살인데, 최소 십 년 이상 공백에도 불구하고 채용해 주실 관대한 고용주 분 계신가요? 한 번 끊긴 경력을 이어 붙이는 게 어려우니 엄마들은 방과 후 수업과 태권도 도장까지 총 동원해서라도 회사를 다닌다. 새끼들 고생하는 걸 보느니 차라리 관두겠다고 결심한 엄마들은 눈물을 머금고 사직서를 제출하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서 꼭 일을 해야 하는 워킹맘들은 더 뜨거운 눈물을 머금고 출근을 한다.


  사실 남녀 불문하고 우리나라에서 일하면서 애 키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경험자들이면 다 안다. 옆에서 지켜보던 비경험자들까지도 겁을 먹고 비혼과 딩크를 선언할 정도이니 더 말해 무엇하리.


  한때 왕성하게 사회생활을 하던 여성들은 엄마가 되는 동시에 짧든 길든 부분적으로든 경력의 단절을 경험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과 함께하니 마냥 불행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사회적으로는 감옥에 갇힌 셈이다. 무고한 수감자들은 억울해하고 분통을 터뜨리다가 끝내 뚫을 수 없는 벽 앞에서 무기력해진다. 언젠가 자신을 석방해 줄 현명한 제도가 마련되길 기다리던 한 엄마는 이미 백발이 성성한 노파가 되었다는 소문이…그래서 난 오지 않을 님을 기다릴 바에야 자구책으로라도 생존해 보기로 했다. 여기 감옥 선배이신 파리아 신부님의 지혜를 빌려서.


“인간의 지혜 속에 숨어 있는 신비한 광맥을 파는 데엔 불행이라는 것이 필요하다네. 화약을 폭파시키는 데에 압력이 필요하듯이. 감옥 생활이라는 건 사방으로 흩어져 있던 내 재능을 한 점으로 집약시켜 주었네. 재능은 좁은 영역에서 서로 부딪친다네.”

-알렉상드르 뒤마, <몬테크리스토 백작 제1권> 228쪽, 동서문화사-


  온전한 승리가 아니면 어떠하리. 일단 정신이라도 승리하고 보자. 피할 수 없는 압력이라면 집약된 재능으로 화약이라도 만들겠다는 각오를 하며 난 오늘도 펜을 들었다. 무고한 수감자, 아니지 경단(태)녀들이여, 힘내자.


매거진의 이전글 하마터면 무기력할 뻔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