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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스 Nov 18. 2023

나도 키 크면 회사 만들 수 있어

  딸아이가 요즘 아빠엄마 회사에 관심이 많아졌다. 아침마다 “아빠는 회사 가셨어", “엄마도 회사 다녀올게"라며 인사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개념을 알게 되었나 보다. 그래서 딸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아빠 회사는 멀리 있어. 엄마 회사는 가까워. 아빠 회사 이름은 00이야. 000 만들어” 정도로 설명해주곤 했다. 사실 엄밀히 말해서 내가 다니는 곳은 회사가 아니라 상담소이지만 상담이 무엇인지 알려면 최소 십 년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그냥 회사라고 퉁치기로 했다.


  하루는 엄마의 일터에 대해서 이것저것 묻던 딸에게 개업을 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개업이란 말은 너무 어려울 테니까 내 딴에는 아기 용어로 바꾸어 말했다.


“엄마가 회사 만들었어.”


  그랬더니 이 꼬마는 마치 자기도 아는 내용이라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손으로 제 가슴을 톡톡 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아직 키가 작아서 회사 못 만들어. 키 크면 회사 만들 수 있어. 엄마는 키 커서 회사 만들었어.”


  회사 만드는 걸 블록 쌓기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엄밀히 말해 건물 올리기도 블록 쌓기 같은 거니까 아주 틀린 건 아니다만. 하긴 우리 딸, 공룡 책 읽다가 모기 잡듯이 손바닥으로 그림 한 대 치고는 싱크대로 가져가서 버리며 “내가 공룡 잡았어요"라고 하지? 네가 공룡을 잡았듯이 엄마는 회사를 만들었어. 우리끼리는 허세 좀 부려보도록 해.


  그런데 딸아 엄마가 조금 과장했어. 엄마는 사실 회사를 만든 게 아니라 상담소를 열었어. 회사는 사람들이 여럿 모여서 일하는 곳인데 여기는 사장도 엄마, 직원도 엄마, 환경 미화도 엄마, 홍보도 엄마, 마케팅도 엄마, 비품 관리도 엄마, 분리수거도 엄마, 블로그 관리도 엄마 혼자 다 해… 아 그리고 엄마 키가 되게 큰 줄 아는데 얼마 전에 쟀더니 0.5센티 줄어서 큰 키와는 더욱 멀어지기도 했…


  속내는 저랬지만, 어쨌거나 키가 충분히 커지면 회사를 만들 수 있다는 말 자체는 틀리지 않으니까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었다. 꿈은 꿀 수 있잖아요?


“그래~ 우리 땡땡이도 키 커지면 회사 꼭 만들어~~”


* 표지 사진: 회사 만들기엔 아직 키가 작은 우리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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