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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스 Feb 22. 2023

불빛이 코 자러 가서 깜깜한 거야.

어둠이 무서운 아이에게.

  23개월이 된 딸아이는 이제 제법 문장으로 말을 할 줄 안다. “엄마 물 주떼여“, “(반찬이) 너무 커”, “이거 좋아”, “목이 아파요”. 웬만한 의사소통이 되니까 엄마는 아이가 어른처럼 다 말할 줄 안다는 착각에 빠진다. 그래서 잠자코 있으면, 괜찮다고 오해한다.


  원래도 자다가 몇 번씩 깨곤 했던 딸아이는 동생이 태어난 후 이래저래 심기가 불편해져서 더욱 잠들기 어려워했다. 길게는 두 시간 가까이 눈을 말똥말똥하게 뜬 채 신경질적으로 뒤척이는 모습을 견디는 일이 여간 지치는 게 아니었다. 졸린데 못 자는 본인은 오죽 괴로울까 싶어서 아이의 잠투정을 받아주다가도, 나도 사람인지라 한 시간이 넘어가면 슬슬 짜증이 났다. 한계에 도달할 때면 목소리를 깔고 “어서 자!”라며 겁을 주었고, 아이는 주눅이 들어 억지로 눈을 감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거실과 방의 불을 끄자 딸아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깜깜”


  혹시 무서워서 그러나?


  “깜깜해서 무서워?”

  “응. 하이 무셔~”


  늘 아이가 깊게 잠이 들 때까지 손을 잡고 곁을 지켰기에 어둠이 무서울 거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어른처럼 말할 줄 모르는 아이는 그저 뒤척이거나 엄마 손을 세게 쥐는 일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었을 테다. 아이 나름대로는 몸짓으로 힘껏 말하고 있었지만, 언어적인 대화에 익숙한 나는 그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고작 말 몇 마디 하기 시작한 아가가 벌써 어른처럼 표현하기를 기대했나? 나 역시도 한참 클 때까지 어둠을 무서워해놓고는 두 돌도 안 된 아기는 덤덤할 줄 알았나? 답답하고 불안했을 아이에게 미안했다.


  아이가 좀 더 편안하게 어둠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당장 두 가지 조치를 취했다. 먼저 오르골 소리와 함께 달과 별, 고래, 요정 등 멋진 그림자를 연출하는 수면등을 구입했다. 엄마가 동생을 재우는 동안 큰 아이는 아빠와 함께 누워서 천장과 벽에 비친 그림자를 보며 마음을 달랜다. 동생을 눕히고 나서는 엄마품 우선권을 양보하느라 애쓴 딸아이를 꼭 안고 어둠을 맞이할 준비를 시킨다. 이때 아이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어른의 말 대신, 동심 번역기를 돌린다.


  “불빛이 코 자러 가서 깜깜한 거야. 해님도 코 자러 갔어.”


  그럼 아이는 자기가 아끼는 사람(혹은 장난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며 모두 코~ 자러 갔음을 확인한다. 인사성이 어찌나 밝은지 허공에 손까지 흔들어가며 “안녕”하고 인사를 한다.


  “깜깜한 건 잘 안 보이는 것뿐이야. 엄마가 우리 00이 옆에 있어. 손 꼭 잡아줄게.”

  “응”


  매일 밤 이 과정을 반복했다. 그랬더니 이해를 한 건지 아니면 엄마의 나긋나긋한 음성에서 안정감을 얻은 건지, 이전보다는 좀 더 안정된 모습이다. 물론 갖가지 이유로 잠자리 전쟁은 지속되고 있지만 적어도 그 원인이 어둠은 아닌 듯하다.


  아이는 끊임없이 말한다. 이건 좋고, 이건 싫다고. 어둠이 무서워서 눈을 감기가 힘들다고. 다만 그 말이 어른의 언어와 달라서 알아차리기 어려울 뿐이다. 저 멀리 코 자러 간 엄마의 동심을 깨울 시간이다.


* 표지 사진: 우리 아가가 더 아가였을 때, 코~ 자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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