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불호로 말하기엔 너무나 복잡한 아이의 마음
우리 첫째는 호불호가 분명하다. 한동안은 하루에 수십 번씩 “아니야”를 남발하며 별별 것에 다 퇴짜를 놓더니, 이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눈앞에 대령하거나 금지된 행동을 계속하고 싶을 때 “좋아”를 외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엄마 휴대폰을 몰래 가지고 놀다가 들키면 엉덩이 밑으로 쏙 감추고는 “좋아 좋아 좋아”한다거나, 밥 먹기 싫을 때 “젤리 좋아! 좋아! 좋아!”라고 외치는 식이다. 한 때 청개구리처럼 아니라고만 하던 딸에게 “기야는 안 배웠어?”라며 놀리곤 했었는데, 기껏 배운 말의 용도도 어째 “아니야”스럽기 그지없다.
이런 딸아이의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는 대상은 바로 하지(할아버지)이다. 원래도 아이를 예뻐하시는 친정아버지에게 우리 딸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첫 손주이다. 그런 데다가 둘째가 태어난 후로 친정 부모님께서 매일 큰 아이를 등원시켜 주시면서 조손 간의 정이 더 두터워졌다. 할니(할머니)도 좋지만 자기를 번쩍 들어 올려 오랫동안 안아주고, 엄마가 금지한 일도 몰래(?) 하게 해 주시는 하지가 딸아이에겐 1순위이다.
그런데 우리 딸은 엄마에게 서운할 때에도 뜬금없이 하지 좋아를 외친다. 때로는 기쁨의 소리가 아니라 화가 난 듯한 앙칼진 목소리로 “하지 좋아!!!”하며 악을 쓰기도 한다. 아직 싫다는 표현을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단순히 싫다는 두 글자에 담기에는 엄마에 대한 감정이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불편하고 속상한 상황에서 언제나 자기편이 되어주는 예스 맨, 하지를 떠올리며 제 마음을 위로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 속에는 ‘엄마가 절실히 필요하고 엄청 좋으면서도 자꾸만 동생을 안아줘서 속이 상해요’라는 마음이 숨어 있을 테다. 하지만 질투, 서운함, 양가감정 따위의 정서는 두 돌도 채 안 된 아이가 알아차리고 표현하기에 너무나 어려운 마음이다. 그래서 엄마 손 안 잡으면 잠도 못 자는 녀석이 “엄마 가!”라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 엄마가 좋으냐는 물음에는 입을 꾹 다문 채 딴청을 피우거나 굳이 눈앞에 있지도 않은 하지, 할니, 탐통(삼촌), 퉁모(숙모)에게만 사랑을 고백하며 어깃장을 놓는다.
어린아이들은 솔직하지만 서투르다. 그래서 때로는 행간의 의미를 읽어야 표현 너머에 있는 진심을 발견할 수 있다. 발달상의 미숙함을 감안하지 않고 액면 그대로만 받아들이면 오해가 쌓이고 감정이 상하기 십상이다. 물론 어른의 추론이 틀릴 때도 있다. 하지만 무조건 내가 옳다는 식의 횡포가 아니라면,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 그 자체로만으로도 아이에게 위로가 된다. 어려운 문장을 곱씹듯 아이의 마음을 되짚어 보는 과정에서 어른 역시 화를 가라앉히고 감정을 정리할 수 있다.
이론은 특별할 것 없는데 육아가 늘 그러하듯 실전이 어렵다. 그래도 해보자. 표현만 번지르르할 뿐 솔직하지는 못한 어른들에 비해서 아이들의 마음은 훨씬 읽기 좋은 명문(名文)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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