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누스 Feb 15. 2023

마음의 행간 읽기

호불호로 말하기엔 너무나 복잡한 아이의 마음

  우리 첫째는 호불호가 분명하다. 한동안은 하루에 수십 번씩 “아니야”를 남발하며 별별 것에 다 퇴짜를 놓더니, 이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눈앞에 대령하거나 금지된 행동을 계속하고 싶을 때 “좋아”를 외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엄마 휴대폰을 몰래 가지고 놀다가 들키면 엉덩이 밑으로 쏙 감추고는 “좋아 좋아 좋아”한다거나, 밥 먹기 싫을 때 “젤리 좋아! 좋아! 좋아!”라고 외치는 식이다. 한 때 청개구리처럼 아니라고만 하던 딸에게 “기야는 안 배웠어?”라며 놀리곤 했었는데, 기껏 배운 말의 용도도 어째 “아니야”스럽기 그지없다.


  이런 딸아이의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는 대상은 바로 하지(할아버지)이다. 원래도 아이를 예뻐하시는 친정아버지에게 우리 딸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첫 손주이다. 그런 데다가 둘째가 태어난 후로 친정 부모님께서 매일 큰 아이를 등원시켜 주시면서 조손 간의 정이 더 두터워졌다. 할니(할머니)도 좋지만 자기를 번쩍 들어 올려 오랫동안 안아주고, 엄마가 금지한 일도 몰래(?) 하게 해 주시는 하지가 딸아이에겐 1순위이다.


  그런데 우리 딸은 엄마에게 서운할 때에도 뜬금없이 하지 좋아를 외친다. 때로는 기쁨의 소리가 아니라 화가 난 듯한 앙칼진 목소리로 “하지 좋아!!!”하며 악을 쓰기도 한다. 아직 싫다는 표현을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단순히 싫다는 두 글자에 담기에는 엄마에 대한 감정이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불편하고 속상한 상황에서 언제나 자기편이 되어주는 예스 맨, 하지를 떠올리며 제 마음을 위로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 속에는 ‘엄마가 절실히 필요하고 엄청 좋으면서도 자꾸만 동생을 안아줘서 속이 상해요’라는 마음이 숨어 있을 테다. 하지만 질투, 서운함, 양가감정 따위의 정서는 두 돌도 채 안 된 아이가 알아차리고 표현하기에 너무나 어려운 마음이다. 그래서 엄마 손 안 잡으면 잠도 못 자는 녀석이 “엄마 가!”라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 엄마가 좋으냐는 물음에는 입을 꾹 다문 채 딴청을 피우거나 굳이 눈앞에 있지도 않은 하지, 할니, 탐통(삼촌), 퉁모(숙모)에게만 사랑을 고백하며 어깃장을 놓는다.


  어린아이들은 솔직하지만 서투르다. 그래서 때로는 행간의 의미를 읽어야 표현 너머에 있는 진심을 발견할 수 있다. 발달상의 미숙함을 감안하지 않고 액면 그대로만 받아들이면 오해가 쌓이고 감정이 상하기 십상이다. 물론 어른의 추론이 틀릴 때도 있다. 하지만 무조건 내가 옳다는 식의 횡포가 아니라면,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 그 자체로만으로도 아이에게 위로가 된다. 어려운 문장을 곱씹듯 아이의 마음을 되짚어 보는 과정에서 어른 역시 화를 가라앉히고 감정을 정리할 수 있다.


  이론은 특별할 것 없는데 육아가 늘 그러하듯 실전이 어렵다. 그래도 해보자. 표현만 번지르르할 뿐 솔직하지는 못한 어른들에 비해서 아이들의 마음은 훨씬 읽기 좋은 명문(名文)이니까.


* 표지 사진 출처: pixabay.com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는 체력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