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고 생각했는데 몰랐던 감정 이야기 [1]
건강한 마음을 위한 소식지, 누스 레터입니다.
감정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쁜 감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흔히 나쁘다고 불리는 것들에는 분노, 슬픔, 혐오, 불안 등이 있습니다. 편안함, 친밀감, 애정, 만족감 등은 “좋은 감정”들로 불리지요.
하지만 엄밀히 말해 감정은 가치 판단의 대상이 아닙니다. 따라서 옳고 그름, 좋고 나쁨과 같은 가치를 매길 수가 없어요. 특정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자극이 있으면 그에 따른 감정을 경험할 뿐입니다. 위협을 당하면 공포를 느끼고, 부당하고 부조리한 상황에서는 분노를 느낍니다. 소중한 것을 잃으면 슬픔이 나타나고, 종잡을 수 없는 일들에서는 불안이 생깁니다. 정서는 저마다 다른 목적과 기능을 갖고 있어요. 자신의 역할에 맞는 일들이 벌어지면 그에 맞는 감정이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그럴 만한 상황에서 그럴 만한 감정이 나타나지요.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감정을 수식할 때는 “좋다, 나쁘다”라는 말보단 “마땅하다”라는 말이 좀 더 어울리는 듯합니다.
먼저, 특정 감정들과 관련된 신체적 변화가 불편해서 그럴 수 있어요. 슬픔이라는 감정은 몸을 축 처지게 하고 무거운 느낌을 줍니다. 불안할 때 손에서 땀이 나거나 근육이 긴장되는 느낌도 꽤 불편합니다. 공포를 경험할 때는 심장 박동이 빨라져서 요동치는 듯하지요. 이러한 신체적 변화들은 모두 편안하고 안정된 느낌과는 거리가 멉니다.
다음으로 감정을 둘러싼 상황, 기억 등이 부정적으로 경험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악취를 맡으면 미간과 코 사이를 찌푸리며 몸을 뒤로 빼는 반응을 합니다. 이러한 정서를 혐오라고 부르지요. 물론 혐오는 상한 음식처럼 생존을 위협하는 것들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는 고마운 정서이긴 합니다만... 어떻게 악취까지 사랑하겠어요? 분노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개 분노가 발생하는 상황은 차별, 편애, 부조리 등과 관련이 있어요. 분노 그 자체에는 아무 잘못이 없다 하더라도, 분노와 한 세트로 묶여 다니는 상황들은 좋은 기억으로 남기 어려워요. 그렇다 보니 이 모든 불쾌한 경험들이 “나쁜 감정"으로 퉁쳐지는 것 같아요.
언어 습관을 비판하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나쁜 감정"이라는 말로 뭉뚱그리면 불필요한 오해와 편견이 따라붙어요. 나쁜 것은 으레 없어져야 할 것으로 취급되기 마련입니다. 오명을 쓴 감정들은 충분히 해소될 기회도 없이 무조건 참거나 까먹어버리는 식으로 홀대를 당합니다. 때로는 비교적 만만한 감정들로 포장되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절대 감정을 소화시킬 수 없습니다. 결국 마음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빵 터져서 뒤탈이 나고 말아요. 홀대를 당하는 동안 감정의 좋은 기능들까지 모두 사장되는 건 말할 것도 없고요.
세상에 나쁜 감정은 없습니다. 그럴 만한 상황에서 그럴 만한 감정이 나타날 뿐입니다. 오히려 나쁘다고 부를 만한 일들은 감정과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할 때 생깁니다. 감정의 마땅함을 인정해 보세요. 좋은 관계의 시작은, 상대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것부터입니다.
오늘의 누스 레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한 주도 마음-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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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건복지부 공인 정신건강임상심리사 1급, 한국심리학회 공인 임상심리전문가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참고 자료: Leslie S. G. & Sandra C. P. <심리치료에서 정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