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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스 Jul 23. 2022

엄마의 자유를 결재해 주시겠습니까?

사랑스러운 나의 꼬마 상전께.

  첫째가 어린이집에서 낮잠까지 자고 올 무렵부터 보고 싶은 사람들과 약속을 잡기 시작했다. 둘째 출산까지 남은 기간은 백일 남짓. 시한부의 자유 시간이 끝나면 또 일 년 가까이 모유수유와 각종 갓난쟁이 돌봄 활동으로 인해 바깥 활동이 어려워질 것을 알기에… 약간 필사적으로 노는 중이다. (그나마도 배불뚝이 임산부에게 허락된 놀이는 독서, 집 앞 카페 탐방, 넷플릭스 등으로 너무나 작고 귀여운 것들이지만)


  하루는 옆 동네에서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대학원 동기와 만나 브런치를 먹기로 했다. 오랜만에 육아 자조모임 회원님과 온갖 고충을 나누며 영혼이 정화될 생각에 들떠, 평일 오전인데도 식당까지 예약해뒀다. 그런데 고대하던 그날이 되자… 엄마들끼리만 재미있게 노는 것이 샘이라도 났는지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아프기 시작했다. 그 집 애가 나으니 우리 애가 아프고 장염이 가시니 열감기가 오시고. 여기에 맞춰 약속을 세 번이나 미뤘지만 종국엔 파투가 났고, 남은 것은 열심히 병간호한 어미 몸에 남은 영광의 기침 가래뿐이었다.


  어린이집 덕에 잠시 몸이 편해져서 깜빡 잊고 있었다. 엄마가 자유를 누리려면 아이의 결재가 필요하다는 사실. 기관에 보낸다고 해서 완전한 자유가 허락된 것은 아니었다. 그나마 이번에는 어린이집 아기들 전체가 한꺼번에 걸린 감기라서 이 정도로 살살 넘어갔지, 코로나나 수족구였으면 꼼짝없이 기약도 없는 릴레이 가정보육에 시달릴 뻔했다. (참고로 저번에 아이랑 같이 코로나에 걸렸을 때에는 아이 간호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내 코로나는 아플 새도 없이-임산부라 약도 없이-그냥 생으로 버텼더랬지…)


  아주 보수적인 조직 문화를 가진 직장에 다녔을 때에도 휴가를 쓰려면 상사에게 허락을 받았어야 했다. 예나 지금이나 나의 자유를 타인의 손에 맡긴 것은 매한가지이나, 여기에는 너무나도 큰 차이점이 하나 있다. 내 새끼는 예쁘다는 것. 그래서 때로는 자발적인 자유 반납도 가능하다는 것. 그래 이렇게 반쯤 정신이 나가고 콩깍지가 씌어야 육아가 가능하다. (결혼도 그러했듯 말이다.) 그래도 가끔은 이 엄마의 자유를 결재해 주시겠습니까?



* 표지 사진 출처: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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