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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정철 Mar 05. 2019

달아나는 기억을 붙잡는 법

단 한 번을 읽어도 제대로 남는 <메모 독서법> 연재


페트라르카는 책에 대한 기억이 눈 녹듯 사라지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페트라르카는 아우구스티누스와의 가상의 대화를 통해 본인이 사용한 독서법을 묘사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책을 읽다가 자네의 영혼을 뒤흔들거나 유쾌하게 만드는 경이로운 문장을 마주칠 때마다 자네의 지적 능력만을 믿지 말고 억지로라도 그것을 외우도록 노력해보게나. 그리고 그것에 대해 깊이 명상하며 친숙한 것으로 만들어보라고. 그러면 어쩌다 고통스런 일이 닥치더라도 자네는 고통을 치유할 문장이 마음속에 새겨진 것처럼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음을 깨닫게 될 걸세. 자네에게 유익한 것 같은 어떤 문장이든 접하게 되면 분명히 표시해두게. 그렇게 하면 그 표시는 자네의 기억력에서 석회의 역할을 맡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멀리 달아나고 말 걸세.: 책을 읽을 때는 매우 유익하지만 책이 손을 떠나자마자 그 책에 대해 느꼈던 모든 감정도 눈 녹듯 사라지고 마는 걸요.

아우구스티누스: 그런 식의 독서는 지금 매우 보편적이라네. 학식 있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으니까. 하지만 자네가 적절한 여백에 약간의 메모를 간결하게 적어놓으면 아마 독서의 열매를 쉽게 즐길 수 있을 걸세.

프란체스코: 어떤 종류의 메모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우구스티누스: 책을 읽다가 자네의 영혼을 뒤흔들거나 유쾌하게 만드는 경이로운 문장을 마주칠 때마다 자네의 지적 능력만을 믿지 말고 억지로라도 그것을 외우도록 노력해보게나. 그리고 그것에 대해 깊이 명상하며 친숙한 것으로 만들어보라고. 그러면 어쩌다 고통스런 일이 닥치더라도 자네는 고통을 치유할 문장이 마음속에 새겨진 것처럼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음을 깨닫게 될 걸세. 자네에게 유익한 것 같은 어떤 문장이든 접하게 되면 분명히 표시해두게. 그렇게 하면 그 표시는 자네의 기억력에서 석회의 역할을 맡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멀리 달아나고 말 걸세.

- <독서의 역사>, 알베르토 망겔 



페트라르카는 유익할 것 같은 문장에 표시를 하고, 책의 여백에 메모를 해놓으면 독서의 열매를 쉽게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페트라르카는 기억나지 않는 독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메모 독서법을 고안해 실천하였습니다.


몽테뉴도 메모 독서법을 사용했습니다. 몽테뉴는 책에 밑줄을 긋고, 책의 여백에 자신의 생각을 메모하고, 마지막 페이지에 책을 다 읽은 날짜와 그 책에 대한 자신의 평을 적었습니다. 책의 말미에 적은 메모 덕분에 그는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책을 읽을 당시 자신이 저자와 작품에 대해 가졌던 생각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메모 독서법이 아니었다면 몽테뉴는 《수상록》을 쓰지 못했을 것입니다.





책을 읽으며 생각을 수집하다


조선 시대의 학자들도 메모 독서법을 사용했습니다. 정민 교수가 쓴 <책벌레와 메모광>을 보면 다산 정약용과 성호 이익은 독서가이면서 동시에 메모광이었습니다. 다산 정약용은 책의 여백에 메모를 한 것뿐 아니라, 책의 중요한 내용을 수집하기 위해 초서(抄書)를 사용했습니다. 초서란 책을 읽다가 중요한 구절이 나오면 발췌하여 옮겨 적는 것입니다. 책을 읽는 목적에 걸맞은 부분을 찾아 베껴 쓰면 공부에 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책을 쓰는 데에도 훌륭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정약용이 초서를 중요하게 생각하여 그의 제자들은 저마다 독서 노트를 가지고 책을 읽었다고 하네요.


무릇 한 권의 책을 얻더라도 내 학문에 보탬이 될 만한 것은 채록하여 모으고 그렇지 않은 것은 눈길도 주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비록 100권의 책이라 해도 열흘 공부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다산이 두 아들에게 남긴 편지> 중에서
                                                                                                                 -《책벌레와 메모광》, 정민


정약용이 사용한 또 다른 메모 독서법은 ‘질서(疾書)’입니다. 질서는 ‘묘계질서(妙契疾書)’의 준말로, ‘묘계’는 오묘한 깨달음이란 뜻이고, ‘질서’는 빨리 적는 것을 말합니다. 책을 읽다가 번쩍하고 떠오른 생각과 깨달음이 달아나기 전에 재빨리 종이에 메모하는 것이 바로 ‘질서’입니다.


정약용은 ‘초서’를 통해 모아둔 자료와 ‘질서’를 통해 쌓인 생각의 재료를 가지고 글을 썼습니다. 정약용이 500여 권의 책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메모 독서법 덕분이었습니다. 정약용은 가히 메모 독서법의 대가라 불릴 만합니다.


성호 이익도 메모 독서 애호가였습니다. 그 역시 묘계질서를 통해 책을 썼습니다. 《맹자》를 읽다가 쓴 메모를 가지고 《맹자질서》를 썼고, 뒤이어 《대학질서》, 《논어질서》, 《소학질서》, 《역경질서》, 《시경질서》 등을 써 ‘질서’ 연작을 완성하였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수집하는 메모 독서법을 통해 공부의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초서와 질서 이외에도 책에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빨간 먹글씨로 고쳐가며 익는 ‘교서(校書)’, 책을 읽고 난 뒤 감상과 평을 남기는 ‘평서(評書’), 책을 읽고 난 뒤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는 ‘저서(著書)’ 등 선비들이 사용한 메모 독서법은 참으로 다양했습니다.


책에 메모하기, 책의 중요한 부분 옮겨 적기, 책을 읽으며 떠오른 생각을 메모하기, 독서 노트에 책에 대한 감상과 평 남기기, 책을 읽고 난 뒤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기……. 우리 선조들이 사용한 독서법을 합쳐보니 제가 활용하고 있는 메모 독서법과 크게 다르지 않아 놀라웠습니다.


3/9 출간 예정인 <메모 독서법> 내용 일부와 책에 담지 못한 내용을 연재합니다. 구독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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