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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네 May 27. 2018

성과 평가와 공정 사회의 연결고리


성과 평가 기간이 몇 달 앞으로 다가왔다. 사내에서는 올 한해 직원들의 성과평가를 진행하기 위해 달라진 내용을 설명하는 인사팀의 세션이 진행됐다. 세 번의 시간 중 스케줄에 따라 한 번만 선택해서 들으면 되는데 두 번째 세션엔 열 명 남짓한 인원이 참석했다.


올해 새롭게 변경된 조직의 사명과 관련 평가 항목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40여 분에 걸친 설명이 끝났고, 일부가 (가장 중요한) 급여(및 성과급)에 관한 질문을 했다. 직원들의 급여 인상에 대한 할당 예산이 있는지, 정해진 비율이 있다면 평균 비율과 개별 인상률을 비교해서 내가 어느 정도 받았는지 판단 기준이 될지 등을 이야기하다 정성적, 정량적 평가에 대한 주제로 이어졌다.

우선 숫자나 금액으로 환산할 수 있는 정량적 평가로 봤을 땐 120점을 받은 직원과 80점을 받은 직원 중, 당연히 120점 받은 직원이 더 높은 성과급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예를 들어 고객센터에서 평가를 진행할 경우, 간단한 사용법 문의나 판매처 같은 난이도가 낮은 질문만을 120건 처리한 직원과 블랙 컨슈머가 다수 포함된, 비교적 많은 시간과 노력이 투입되는 80건의 콜을 처리한 직원을 절대적인 처리 콜 수만으로 평가하기는 힘들다. 이때는 당연히 수치화하기 힘든 상황에 대한 참작(또는 일반적으로 만족도, 선호도, 심리적 효과 등)의 정성적인 평가를 동반한다.

조금 더 달리 생각해보자. 대학 입시와는 달리 사회에서는 개인의 역량이나 실적과 관계없이 한 조직 내 같은 부서에 근무한다 해도 (소위) 잘 나가는 제품(또는 채널, 부문 등)을 맡을 수 있고 덜 중요하게 여겨지는 (또는 매출이나 중요도가 떨어지는) 일을 담당하게 될 수도 있다.


잘 나가는 제품이나 사업, 채널을 담당한 A가 120점을 받고, 매출에 대한 기여도가 떨어지는 (그러나 전략적으로 꼭 필요한) 제품 등의 담당자 B가 80점을 받았을 때, 과연 어떤 평가가 공정한 것일까?

A는 회사 매출의 90%를 차지하는 분야를 담당하고 있어 전략적으로 본사나 타 부서의 협조를 늘 받는다. 회사의 모든 시선과 관심이 A에게 집중되어 책임감을 막중하게 느끼지만 그래도 늘 자신에게 협조적인 분위기로 일이 순조롭게 돌아가며, 시장 규모도 커지고 있다. 언제나 우수한 실적을 낼 수 있어 당당하다.

B가 담당하는 사업군은 전체 매출의 10%를 차지한다. 매출 비중은 적으나 회사의 전략상 꼭 필요한 사업이며, 지속해서 키워나갈 계획이다. 하나 할당된 예산과 자원, 타 부서의 관심도나 우선순위에선 늘 밀려있다. 그렇다고 노력이나 시간을 덜 할애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겉으로 보기엔 역할이 적어 보이나 오히려 같은 일을 해도 불리한 상황에서 A보다 더 많은 노력과 공을 들인다고 할 수도 있다. 물론 A와 B 둘 다 능력과 노력을 100% 다 쏟아붓는다는 가정을 하자.

설명하던 인사팀장은 A와 B가 각각 120점과 80점을 받는 것이 공정한지, 아니면 A와 B 모두 100점을 받는 것이 공정한지 물음을 던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B 역시 동등하게 100점을 받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했다. 마침 질문이 내게로 향했기에 큰 소리로 "A와 B 모두 100점을 받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
실은 (이) 회사에서 (올해 처음 일한) 내가 B와 같은 상황에 처한 처지였다. 인사팀장은 '그렇죠?'라며 원하는 답변을 얻어냈다는 듯 제스쳐를 취했다.
일동 공감하는 듯했으나 이내 타 부서의 팀장이 팀원들을 평가하는 입장의 고충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질문을 이어갔다.


"그러면 A는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과연 공정하다고 느낄까요?"


명백히 높은 수치의 성과를 증명할 수 있는 A 입장에서는 자신의 노력에 대한 대가가 공정하지 않다고 느낄 여지가 분명 있을 터다.

조직의 입장에서는 정량적 평가뿐 아니라 정성적 평가도 함께 고려해서 조율할 필요가 있다는 게 인사팀의 공식적인 답변이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는 조직의 운영상 후자처럼 A와 B 모두에게 100점을 주는 것이 좀 더 합리적이라는 점이라는 데는 다들 의견을 같이했다.

그러나 A를 설득할 답변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필요해 보였다. 문제를 제기했던 타 부서 팀장은 아마 A는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성과가 익숙하기 때문에 '다 내가 잘해서' 받는 당연한 보상으로 여길 수 있다고 말했다.

입장에 따라 공정의 기준은 달랐다. 각자 처지에 따라 공정이 공정으로도, 불공정으로도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누구에게나 공정한) 공정이란 건 이토록 어려운 문제예요." 애처롭게 들린 한 문장에 인사팀장의 고충을 느낀 건 나만은 아니었을 듯했다.

"모든 것을 공정하게 만드는 건 불가능해요. 다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부당한(unfair) 일들을 줄여나가는 것이에요. 그게 공정을 향해 나아가는 최선의 노력이 될 수 있어요."

한 조직 내에서의 처우와 공정에 관한 고민이었으나, 나는 우리 사회의 문제로 확장해서 생각할 수 있는 문제로 여겨졌다.

출발 선상과 환경, 조건이 열악한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처우를 하는 것이 공정한 일일까. 고소득자나 상위 자산가에 대한 누진세는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까. 누진세로 손해를 본다는 이들에게 어떤 설명이 필요할까. 우리가 바라는 건 힘든 고통의 과정을 거치더라도 장기적으로 공정하고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자신이 힘들고 억울한 상황에 처해도 어떻게 대우받고 싶은가를 생각하면 생각 외로 답은 어렵지 않다고 말하고 싶지만, 회사에서 인사팀장이 했다는 말처럼 아마 공정은 모두가 다 다르게 받아들이기에 이조차 동의하기 힘들 테다. 모두에게 공정한 공정은 이루기 힘들지 모른다. 그렇기에 사회에서도 불공정한 사안들을 개선해 나가는 일이 우리가 해나갈 수 있는 현실 답안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살아가는 동안은 사회적 약자들이 보호받는 공정한 사회에 대한 열망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그리고 우리가 같이 물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는 어떤 모습인지. 묻는다고 밝은 미래가 보장되진 않지만 지금 묻지 않으면 오지 않을 화목하고 공정한 사회를 그려보면서 함께 묻고 또 묻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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