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레인지처럼 무설치 식기세척기가 있답니다, 꼬옥 들여보세요
결혼하고 본격적으로 살림을 하면서 가장 놀란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설거지 거리가 어마어마하게 나온다는 점. 아, 정말 내가 잘못했구나 싶을 정도로 식기세척기를 들여놓지 않은 걸 후회막급으로 후회했다. 그리고 이 지점은 마치 거울처럼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훤하게 보여주는 듯했다. 요리를 그다지 해 본 적도 없고 심지어 본가에서도 엄마를 도와 설거지를 한 일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그러고서는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적극적으로 설거지를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대답하기가 꽤 어려운 문제(!)였다.
망원동에서 자취할 때는 기껏해야 수저와 컵 같은 작은 설거지 거리였지만 양이 작아서였을까, 사실 이건 나만의 비밀이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일주일을 넘게 그냥 방치한 적도 있었다. 멀리 본가에 몇 주간 다녀왔을 땐 그냥 두고 간 물컵 한두 개가 맹물이었음에도 그 안에 곰팡이가 필 수 있다는 귀중한 생물학 교실 체험을 하기도 한 나였다. 이따금 극단의 P 성향 (MBTI의 마지막 4번째 글자인 이행 및 생활 양식의 항목 중 계획적이기보단 융통성과 자율적인 타입)을 내포한 이로써 만약 남자로 태어났으면 과장을 좀 보태서 기안84처럼 살지 않았을까 싶은 내 모습이 자연스럽게 상상이 되는 때가 많았다.
주변에서 식기세척기는 꼭 장만해야 한다는 말에 나는 우리는 고작 두 명이고 두 명이 먹은 식기가 얼마나 될까 그냥 씻으면 되지 하며 괜찮을 거라고 답했다. 나중엔 설거지를 누가 하느냐 때문에 싸우기까지도 한다는 덧붙여진 말도 그때는 흘려 들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식기세척기를 쓰고 있는 주변 지인들에게 물었더니 굳이 기계를 작동시키는 게 번거로워서 일부는 4인 가족임에도 먹은 걸 바로 바로 설거지하는 편이라 그렇게 자주 쓰지는 않게 되더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웬걸, 식기세척기는 나 같은 애들을 위해 존재하는 거였다.
두 명이 가정이라는 한 세대를 꾸리고 살다 보니 실상에서 먹는 문제가 7할인 느낌이고 그중에 설거지가 3 할 정도 되는 느낌적인 느낌이 있다. 요리를 하다 보니 설거지 거리가 정말 많이 발생한다는 걸 몸소 체험했다. 남편은 설거지 거리가 생기면 바로 바로 치우는 편인데 나는 한 번에 다 하자 주의라 쌓아두고 모아두는 경향이 있다. 요리할 때도 남편은 중간중간에 도구들을 씻어 가며 설거지 거리를 최소화하는 반면 (이 방법은 살림 고수인 엄마도 그렇다) 나는 귀찮고 비효율적이게 뭐 하러 한 번에 할 걸 여러 번에 나눠서 하나 싶은 생각을 했다. 누가 설거지를 하느냐의 문제로 싸운 적은 없으나 서로의 다른 성향과 어쨌든 처리해야 하는 일거리를 자주 마주하는 게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빌트인으로 식기세척기를 들여놓지 않은 걸 막급하게 후회하고 있는 와중에 마침 신혼인 친구 하나가 테이블에 올려놓고 쓸 수 있는 테이블 탑 형태의 소형 식기세척기라는 게 있다고 알려주었다. 두 끼까지는 힘들고 2인 가구 정도의 식기류와 조리 도구들을 편리하게 세척해준다는데 만족도가 매우 높다는 거였다. 처음 들어본 신문물에 대해서는 개념상으로도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한두 달 즈음 간간이 떠올렸고, 야금야금 생각을 더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쌓아둔 설거지 거리를 마주했던 나는 이미 피곤한 상태였고 30~40분을 들여 설거지를 하고 나면 더 피곤해질 나를 생각하니 아, 이제는 안되겠구나 한계에 다다랐다. 그리고 마침내 느낌이 왔다, ‘아 나도 그 식기세척기를 들여야만 한다!’
20대쯤이었나, 설거지하는 엄마에게 물은 적이 있다.
“엄마는 설거지하는 게 귀찮지 않아?”
나에게 설거지를 시킨 일이 거의 없던 엄마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우리 가족을 위한 일인데 즐겁지, 하나도 안 귀찮아.”
실제로 엄마는 설거지하는 일이 전혀 귀찮거나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능숙하고도 빨랐고, 심지어 설거지하는 일이 DNA에 각인된 듯 자연스러웠다. 아직도 철은 없지만 그래도 이제는 엄마가 설거지하는 모습에서 십 대 때부터 모질도록 집안일을 해온 켜켜한 세월이 보였다.
집으로 놀러 온 엄마에게 자랑하며 나는 포크 하나까지 모두 식기세척기에 넣고 시작 버튼을 딸깍 눌렀다. 단 하나도 손으로 씻지 않겠다는 내 일념을 읽었는지 엄마는 ‘정말 손에 물 하나 안 묻히려고 하는 구나’라며 웃었다.
언젠가 나이가 있는 어른들과 함께 가평으로 야유회를 간 일이 있었다. 1박 2일을 숙소에서 머무는 동안 간단하게 음식도 하고 설거지도 했는데 엄마 나이 대보다 얼핏 대여섯 살은 더 적어 보이는 아주머니께서 내가 주방에서 분투하는 걸 보시고는 본인이 직접 하겠다며 일을 덜어주셨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이셨다.
“젊은 사람들은 이런 일 잘 못해도 컴퓨터 같은 거 잘하잖아. 우리는 주방 일, 집안일 잘해도 컴퓨터 잘 못해. 그러니 주방 일, 집안일 안 해봐서 못 하는 거 당연해, 못해도 괜찮아.”
세상에는 주방 일과 집안일을 못한다고 나무라는 시선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너그러운 분도 있는 거였다. 옛날에는 어떻게 다 했지, 하며 지금 세대가 나약하다는 듯하다는 말을 들으면 세대가 다르면 다른 나라 사람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이 자주 생각났다. 60년대와 80년대의 GDP는 다르고, 지금의 GDP는 또 다르니 한 나라에 태어나도 세대가 다르면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거고 생각하면 된다는 게 꽤 와 닿는 표현이었다.
어떤 제품으로 살지 둘러보고 모델을 결정했는데 제품에 대한 리뷰 평점이 5점 만점에 4.9점이나 되었다. 여러 판매처마다 구매 횟수도 꽤 많은데 모두 4.9점이거나 5점이었다. 그리고 다들 약속이나 한 듯 ‘설거지옥’에서 해방되어 행복하다는 리뷰가 스크롤을 내려도 끝없이 반복됐다. 요리는 창작인 데 반해 설거지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노동이라는 유튜브의 컨텐츠 광고도 본 적있는데 과연 수긍되는 부분이었다. 이제는 설거지하는 시간과 노동력과 그 후에 얻게 되는 피곤함까지 식기세척기로 한번에 해결이 가능했다.
식기세척기가 있으니 좋으냐는 엄마의 질문에 나는 날아다닐 것같이 행복하다고 했다. 괜히 리뷰가 만점에 가까운 게 아니었다. 남편도 이런 게 있는 줄 알았으면 진작 샀을 거라고 말했다. 이렇게 좋은 게 있어도 친구가 알려주지 않았으면 전혀 몰랐을 거다. 친구가 나에게 알려주었던 것처럼 나도 나비의 날갯짓을 펄럭여 설거지에서 해방된 행복감을 사람들에게 전파해 함께 날아다닐 것 같은 기분을 느끼도록 돕고 싶다. 그래서 외쳐본다, ‘전자레인지나 에어프라이어처럼 설치하지 않고 바로 쓸 수 있는 식기세척기가 있어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