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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네 Mar 15. 2023

결혼 학교에 다닙니다

‘인간의 이해’ 과목을 실습 중

결혼하고도 회사에서 비슷한 또래의 이성들과 ‘이성적으로’ 어울리길 좋아하는 선배가 있었다. 심성도 착하고 인간적으로도 괜찮고 일도 잘하시는 분이 장난으로 플러팅(이성에게 장난 삼아 추파를 던지는 행위)을 즐기셨다. 아무리 그래도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는 분이 왜 그럴까 싶었는데 알고 보니 남편과 사이가 순탄치 않은 부분이 있다고 들었다. 얼핏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계속 생각했다, ‘남편이 있는데도?’.


시간이 흘러 나도 드디어 결혼이란 걸 하게 됐고, 남들이 말하는 ‘결혼 초반의 다툼’도 하게 됐다. 한 번은 꽤 오래 냉전이 지속됐다. 따뜻하고 화창한 날에 개울가를 따라 혼자 산책을 하는데 마음이 너무 헛헛했다. 배우자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취미도 동성도 가족도 아닌 ‘이성’을 통해서 결국 그 마음을 채우려고 하겠구나 싶은 감정이 들었다. 그러고서 전에 이해하지 못했던 회사 선배를 떠올렸다. 또 남편에게 사랑을 받지 못해 이혼을 진행 중이라던, 그때는 와닿지 않던 회사 친구의 이야기도 생각났다. 미혼일 때야 언제나 연애의 가능성이 열려 있고, 어느 이성에게서 사랑을 받거나 주어도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기혼이 되면 그만큼 ‘이성’적인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배우자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거였다. 결혼으로 결합한 관계라면 상대방에게 사랑을 잘 주기도 하고, 잘 받기도 하는 기능을 실행할 수 있어야 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그러던 어느 날 ‘인정 시스템’이라는 개념에 대해 들었다. 인간이라면 자존감을 느끼며 사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인정을 받는 네 개의 대상이 필요하다고 한다.


‘부모에게 받는 인정, 사회로부터 받는 인정, 친구에게 받는 인정(공감대 형성), 이성에게 받는 인정’


인간은 이 네 개의 대상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고, 이 네 가지가 있으면 안정감 있게 살아간다는 것이다.


친구 하나와 이런 얘기를 했더니 친구의 남편이 애정 표현을 늘 과하게 해서 부담스럽긴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이성에게 받는 인정 부분이 채워지는 것 같기도 하다고 했다. 과거의 연애에서는 사귀어도 사랑을 못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면 허전한 마음이 더 커지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그 영역이 ‘이성에게 받는 인정’으로써 안정적으로 채워져 있다는 걸 느낀다고 했다.


결혼은 정말 학교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결혼을 안 해봤으면 어쩌면 이해 못 했을 회사 선배와 동료의 마음, 그리고 나의 감정과 인간의 욕망까지 스스로 배우게 했다. 체험은 자동으로, 배움은 셀프인 결혼 학교에서 가장 재미있는 과목은 바로 이 <인간의 이해>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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