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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네 Aug 24. 2023

무지개를 보려면, 하늘을 봐야 해

이제부턴 레인보우 헌팅

한 달 전, 쌍무지개를 보고 느낀 바가 있다. 무지개를 보고 싶으면 비 온 뒤 하늘을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는 것. 그날은 일요일 늦은 오후였는데 집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베란다 쪽으로 고개를 돌린 신랑이 소리치며 창가로 뛰어갔다. 깜짝 놀란 나는 무슨 일인가 했는데 세상에나 무지개가 두 개나 선명하게 펼쳐져 있는 게 아닌가. 부분적으로 흐리게 본 일은 있었지만 이렇게 또렷한 쌍무지개는 처음이었다. 신랑은 아량 넓게 나 먼저 사진을 찍으라고 베란다의 좋은 스팟을 양보해 주었다. 나는 널따란 무지개를 최대한 잘 담으려고 요리조리 카메라 비율도 조절하고, 영상도 찍었다 사진도 찍었다 하며 몇 분을 소요했다. 마침내 신랑도 몇 장을 찍었는데 처음보다 무지개가 흐릿해져 있었다. 그렇게 아쉬워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기를 몇 분 더. 무지개는 십분 남짓 후에 금세 사라졌다. 보통 때라면 TV 보느라 하늘도 못 봤을 텐데 어쩌다(!) 하늘을 본 남편 덕분에 쌍무지개를 보는 행운을 누렸다.


놀라운 장관을 혼자만 보기 아까워 주변 사람들과도 사진과 영상을 나눴다. 하나같이 행복에 찬 모습에 그 감동이 열배는 더 커진 기분이었다.


영롱- 쌍무지개

그 후 무지개에 대한 생각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명상할 때도 무지개 생각이 났고, 2살 조카가 요즘 꽂혀서 보게 된 ‘유니콘’ 그림들에도 무지개가 함께 그려져 있었다. ‘우연히’ 볼 수 있고, ‘찰나’만 허락하기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스케치북에 그리듯 아치 2개가 완전하게 반원을 이룬 거대한 무지개의 광경이 너무 아름다워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입추가 지났는데도 비는 오락가락 내렸다. 주말 나들이를 갔다 집으로 오는 길에 장대비가 갑자기 퍼부었다. 빗길이 위험한 고속도로를 조심조심 내달리다, 집이 가까워지자 어느새 비가 그쳤다. 거짓말처럼 해까지 나기 시작하는데 나는 왠지 그동안 그리워(!)했던 무지개를 볼 수 있을 듯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조수석에 앉은 나는 자유롭게 두리번거리며 마치 북극에서 깜깜한 밤, 오로라를 찾아 달리는 오로라 헌터들처럼 무지개를 찾아내려 이리저리 하늘을 올려다봤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흰 구름이 하나둘 늘기 시작했다. 그즈음 구름 뒤에서 짜잔-하고 무지개가 영롱한 색깔을 드러냈다. 레인보우 헌터마냥 꼭 보고 말 테야 집념을 가지고 본 무지개라 그런지 성취감마저 느껴졌다.


터널을 지나 또 다른 길이 나왔고, 나는 다시 하늘을 뚫어지게 헤집듯 이리저리 올려다보았다. 앗싸, 다시 무지개를 찾았다. 비록 구름에 가려 삼분의 일 정도만 보였지만 그마저도 좋아서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보았다. 평소와 다르게 가장 밑 보라색 띠가 눈에 들어왔다. 보라색이 오늘 따라 더 잘 보이지 않느냐는 나의 말에 신랑도 놀랍다는듯 긍정해보였다. 보라색이 유독 선명하게 보이는 건 ‘자세히 보았기에’ 예뻐 보인 걸까.


레인보우 헌팅의 흔적들

한 달간, 비가 그치고 햇빛 나는 날이 여럿 있었지만, 특별히 무지개를 찾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못 했었다. 일정이 있고, 일이 있으면 하늘을 올려다볼 생각을 하기 힘드니까. 하지만 이번에 무지개를 애써서 발견(?!)해 내고 나서는 북부 지역에 여행 가서 보는 오로라만 보고 싶다고 할 게 아니라 우리 곁에서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는 찬란한 무지개를 보려는 생각으로 모두가 레인보우 헌터가 되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무지개를 본 그날은 설레는 마음으로, 행복을 나누어주기까지 할 수 있을 테니까.


학교나 회사나 비가 그치고 햇빛이 나기 시작하면 다 같이 옥상에 올라가거나 창문에 삼삼오오 딱 붙어서 무지개를 찾는 그런 낭만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우리 사회의 행복도가 못해도 곱절은 더 높아질 것만 같은데.


비 온 뒤 햇빛 나는 날, 누군가 내 옆에 있다면 나는 기꺼이 레인보우 헌터가 되어 오로라를 보며 감격한 티비의 배우들처럼, 무지개를 보며 ‘함께’ 감탄하는 그런 순간들을 앞으로 많이 만들어 보고 싶다.


레인보우 헌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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