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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y Apr 13. 2020

Go Home Stay Home

케네디언들의 사회적 거리두기

산책을 다녀오는 중이었다. 사람을 보기 힘든 조용한 동네길, 어느 집앞 차가 가득차 있고, 웅성거리는 느낌이다. 부활절 연휴라고 파티를 열었나? 잠시 의아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누군가 큰소리로 가까이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저러면 안되지 않나?" 하면서 다가가보니, 집앞 창문에 붙어서 있는 아주머니가 보인다. 대화를 나누는 상대는 창문 저쪽에 있는 4살쯤 되어보이는 남자아이. 가까이 붙다시피 이야기하는 그 사이에는 창문이 가로막고 있다.


그녀는 우리에게 고개를 돌려 해피 이스터!! 한다. 우리도 손을 흔들며 같은 인사를 했다. 창문 저쪽의 꼬마도 우리쪽으로 팔을 흔들어 보인다.


"손자 만나러 오셨어요?"

"안전을 위해서 이렇게 밖에서 이야기 나누는 거에요."

그녀는 창문에서 잘 보이도록 저멀리에 선물을 놓아두었다.

"저 선물 손자주려고 가져오셨군요. 너무 슬픈 일이네요."

"이스터(Easter, 부활절)라 손자에게 자신이 간 다음 가져가라고 그곳에 놨어요."


창문에 달라붙어있는 할머니와 손자, 그 애뜻함을 보면서 엊그제 언니와 통화하면서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들이 좋아하는 갈비를 샀기에, 아들과 전화한 후 갖다 달라고 해서 아들집을 방문했다가 된통 당했다는 이야기였다. 어린 손녀 둘이 있는 그집에 갈비와 야채등을 가져가서, 예전처럼 저녁을 먹고오나 하고 갔던 것이 큰 실수였다. 아들이 퇴근하지 않아 앉아서 기다리는데 며느리에게 눈치가 보였단다. 아들이 도착해 혹시 며느리와 다투었느냐고, 엉뚱한 질문을 던지곤, 아들을 통해서 잘못된 장소에 있음을 알게 되어  황망히 자리를 접고 일어나 나왔다고 했다. "제발" 부모가 보고싶다고 부모집을 방문하지 말고, 이웃을 불러 저녁모임을 갖지 말것이며, 불가결한 일이 아니면 집을 떠나지 말라고, 캐나다 수상은 매일 있는 브리핑에서 목놓아 외치고 있다. 언니도 그간 잘 지키다가, 아들이 선뜻 오라고 하니 그 말에 넘어갔다가 봉변을 당한 이야기였다.


며느리에게 그런 눈치를 받기는 처음이었는데, 아들이 집에 도착하지 않아 시부모님을 그냥 가시라고 할 수도 없고, 손녀를 부모님에게 안겨드릴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 연출되었던 것같다. 언니는 서운함을 접고 자신이 잘못한 일이라고 말하는데, 나도 마음이 쓰렸다. 누구나 실수할 수는 있는 일이고, 캐네디언 며느리가 한국 시부모님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빗어진 일이었던 것같다.


나도 언니와 통화하다가, 토론토에서는 마스크를 판다고 해서, 가게에서 팔 것을 언니에게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한번 가야지, 가서 언니와 엄마를 잠시 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 오랫동안 얼굴을 보지 못한 사촌오빠네도 들려볼까, 짱구를 한참 굴렸었다. 그러다가 정신이 번쩍 든 것이 아직은 감염자가 많지 않은 이 지역에 토론토 갔다가 바이러스라도 데리고 오게 되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나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전에 해왔던 습관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


어느날은 가게를 보는데 문밖에 어떤 사람이 서있고, 그 사람이 무슨 말인가 하는데 마치 혼자 벽에 대고 말하는 듯이 보였다. 한참을 서서 말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상대방은 5m쯤 멀리 떨어져 있었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나중에 그녀가 들어와 물건을 사는데 허리가 반은 접혀서 계산대에 물건을 놓고, 또 스캔이 끝난후 허리를 90도로 굽혀 그 물건을 가져간다. 그녀는 좀 너무한다 싶을 정도였다. 일하는 사람과의 사이에 거리를 두다가 거의 고꾸라질 정도였다. 또 어떤 고객은 가게에 사람이 있는 것 같으면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기다리기도 한다. 한사람이 계산할때 다음 사람은 십리쯤 떨어져 있고, 순번을 지켜 혼잡하지 않으려는 고객들의 질서의식에 놀라곤 한다.


큰 그로서리 가게에 가면 점원을 둘러싸고 플라스틱 방패막이가 설치되어 있다. 돈을 내는 곳을 뚫어놓고, 고객과 점원의 호흡중 튀어나오는 어떤 물질도 서로간에 통과할 수 없는 차단막이다. 편의점을 하는 가게들도 조금씩 설치한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기 시작했다.


이틀전 남편이 월마트에 가서 우리한테 적당한 포스트 프레임용으로 나온 투명 플라스틱을 사왔다. 남편말에 따르면 그걸 사려고 월마트에 1시간 넘게 밖에서 줄서 있었다는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이후로 월마트는 매장안에 일정수만 들여보낸다. 한사람이 나오면 다음 사람이 입장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은 명품점에서 한다고 들었던 것 같다. 뭐 가본적이 없으니 모르지만. 셀프 계산대도 하나 걸러 하나씩 열어놓고, 한사람이 계산하고 나가면, 전체를 소독약으로 닦고, 다음 사람이 사용하게 한다.


예전에는 야채등 무게를 재야 하는 것이나, 무언가 도움이 필요하면 바로 달려와서 도와줬는데, 지난번에는 도움을 요청했더니 계산대 주변으로 바닥에 테이프로 금을 그어놓고, 자신이 설명하는 동안 나는 밖으로 나가 대기하라고 했다. 그런 다음 말로 설명해주고, 자신이 밖으로 나간 다음, 다시 내가 그 안에 들어가 알려준 대로 해야했다. 그야말로 물건사는 것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누군가를 도와줄 수도 도움을 받기도 힘든  상황이 된 것이다. 누군가 잘못해서 넘어진다 해도 일으켜 줄 사람은 없을 수도 있다. 그런 도움을 받아서도 안된다.


어쨋든 남편이 프레임을 사온 그날, 가게에는 단골손님 짐이 무언가를 가지고 왔다. 방패막이를 설치할 지지대를 자신이 만들어왔다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우리가 쉴드를 칠줄 알고 그걸 만들어왔는지 깜짝 놀랐다. 나중에 자신이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고 남편과 통화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쨋든 짐의 도움으로 우리도 계산대 앞에 차단막을 쳐놓았다. 마스크를 쓰고, 장갑을 끼고 일하지만, 마스크를 쓰지 않은 고객도 많아서 서로간에 안전해진 느낌이다. 차단막 지지대를 만들어다준 짐에게 감사하다. 우리가 사는 곳은 캐나다 온타리오 한 시골인데, 토론토에서 3시간쯤 걸리는 곳에 산다. 에센셜( essencial)로  편의점(Convenience)이 분류되어 있어서 우리 가정의 일상은 예전과 많이 다르지 않다. 소독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건강을 지키려 노력한다. 감기라도 걸리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뜬 "마스크쓴 인형"을 스크린막에 세워놓았다. 인형이 기대고 있는 그 지지대를 짐이 만들어왔다.


코로나로 일선에 선 많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다. 그런데, 좀 계면쩍지만 헬렌이 우리에게 준 카드는 꽤나 감동을 줬다.


Dear David, and Family

Thank You for being open and on the  "front line" for us.

Take care,

Paul, Helen Crysler


장사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보다 우리들은 얼마나 행운인가? 그런데 과한 이런 "알아줌"에 몸둘 바를 모르겠다. "프론트 라인"이라는 과분한 용어는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님을 안다. 그저 두루두루 신경쓰는 이 동네 유지의 격려인사다. 처음으로 편의점 하는 것에 대한 어떤 자부심이 들기도 했다. "보람있는 일이 아니잖아" 이렇게 스스로를 비하했었다. 어떻게 이 편의점에서 헤어나오나, 그런 생각들도 했던 게 사실이다. 식당, 미용실, 헬쓰클럽 등이 문을 닫았다. 작은 마을이지만 마을을 생기있게 만들던 그런 비지니스들이다. 편의점마저 문을 닫는다면, 사실 사람들이 느끼는 코로나 현실은 더 암담해질 것이다. 코로나는 가치에 대한 재조명의 역할을 하게 해준 셈이다. 우리도 꽤 쓸만한 필수아이템을 구비하고 있지 않은가?


오웬사운드 조앤언니는 재봉으로 수제 마스크를 많이 만들었다. 교회 가족들, 한인들에게 직접 배달을 해주러 다니는 중에 우리 가게에도 들러서 마스크만 떨어뜨리고 달아나버렸다.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잠시도 머물러서는 안된다면서 말이다. 나는 산타할머니가 4월에 다녀갔다며 감사함을 표했다.


우리 동네 사람들도 이제는 마스크를 조금씩 쓰기 시작했다. 마스크는 본인의 감염위험을 감소시키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는 착용해주는 것이 낫다는 발표가 며칠전에 있었다. 무증상자나 보균자들이 지역사회 전파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말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마도 N-95등 의료진이 쓰는 마스크가 아니라는 그런 발상에서 나온 이야기인것 같다.   그래도 "쓸 필요 없다"에서 한걸음 나아간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리나 한국사회를 보듯, N95를 쓰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나와 이웃을 같이 보호해주는 것이 마스크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이제는 각자가 만들어 쓰고 있고 대중화되어 가고 있다. 처음에 우리가 쓰기 시작했을때, 약간은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혹시 아프냐고 묻던 사람들도 이제는 그러지는 않는다. 우리는 가게를 경영하는 친구에게서 한인 세일즈맨에게 구입한 10개들이 마스크 10봉지를 구입할 수 있었다. 아마도 하루이틀이면 다 팔리지 않을까싶다.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예외인 한지붕내 식구들과 찐한 시간들을 보내야 한다. 그것이 그나마, 이 시국에 얻을 수 있는 혜택이다. 막내가 화투를 치잔다. 내가 심심해 할 거라 생각했나. 고스톱은 너무 어려우니, 민화투로 몇판 대결을 했다. 어리벙벙한 그애에게 2불 10센트를 땄다. 엄마가 사기치는 것같다고 소리치는 그애에게 언제든 도전하라고 말했다. 이스터 디너는 월요일 저녁에 하기로 했다. 샤브샤브 꺼리가 냉동고에 있어서 다행이다. 한끼 한끼 가족과 함께 먹는 시간도 예사로운 것은 아니다.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캐나다 수상 트뤼도는 매일아침 브리핑을 한다. 코로나로 직업을 잃은 사람이나, 수입이 끊긴 자영업자등은 코로나 긴급재난보조금을 신청할 수 있다. 한달에 2,000불을 준다고 한다. 나는 가끔 브리핑을 시청하는데, 어느날 눈길을 끈  것중에 하나는 트뤼도가 국민들에게 여러 사안들에 대해서 이야기한 다음,  아이들에게 따로 당부를 한다는 사실이었다. "여러분 모두 얼마나 힘든가요? 학교도 가지 못하고, 집에서 있어야 하니 참을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국가적 위기상황이에요. 여러분들의 부모님과 함께 이 어려움을 같이 이겨내기 바래요. 여러분들이 도와줘야 이 일을 빨리 끝낼 수 있어요. 캐나다 정부는 여러분을 응원합니다"며 협조를 부탁했다. 그런 부분은 아이들도 책임있는 인격체로 대우해주는 것같아, 이럴때 "오우 캐나다~~" 하게 된다.


캐나다 정부가 가장 역점을 두는 코로나 방역이 "사회적 거리두기"이다. "Go Home, Stay Home" 정책은 손씻기와 함께 확산방지책이다. "마스크"에 대해 뒤늦게 "강력정책"을 내놓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을 빼고는 거의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동적인 연설문을 적어 매일 발표하고, 각당 대표들의 연설도 가끔은 집어넣고,  장관들과 수상이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등, 진정을 다해 국민들을 지키려 노력하는 게 보인다.


국민들은 "따로 떨어져 있어야 나라를 지킨다"는 요상한 시국에 동의하고 있으며, 국가정책을 믿고 잘 지켜나가는 중이라고 봐야한다. 예민해 있는 이때, 튀는 행동이나, 부주의함으로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키면 안되겠다. 종전과 같지 않은 불편함을 겪어야 하는 쇼핑객들 중에 참지못해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말이다. 남편말에 의하면, 순서를 기다릴 수없는 어떤 사람은 "40달러"를 줄테니, 첫번째 줄선 사람에게 양보하라는 사람도 있었다니, 그가 진심으로 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사람들과 엮여서 다툼이라도 일어나면 큰일이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전연 고려치 않아도 되는 한사람과 조금더 친해지면 어떨까 한다. 바로 그 한사람이란 "내자신"을 말한다. 나와 친해지면 심심할 사이없이 이 시간들을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나를 격려하고, 놀려주고, 사랑해주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코로나 대응책이 아닐까싶다. 그러고도 힘이 남는다면, 이웃에게 어떤 도움이 되어야 하는지,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려보면 좋을 것 같다. 나도 골똘히 생각중이다. 내 인형들을 가게 한쪽에 전시해 보나? 그게 즐거운 일이 될까? 그런 생각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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