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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y May 15. 2020

엄마의 인터넷 세상

82세 컴퓨터 배우기 좌절에서 92세 동영상톡 하기까지

10년전 그때를 기억한다.

이글을 준비하면서 옛 기록을 찾아보니, 2010년 4월이었다.

엄마와 가족 모두 시카고 가족을 찾아 긴 여행에 나섰었다. 꽉차게 7명을 태운 밴에 어른들을 싣고 달리던 길에 엄마와 나눴던 대화였다.

그즈음 엄마는 교회에서 운영하던 노인학교에 다니셨다. 가끔씩 "친절한 그 선생님"에 대해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 이야기를 이어서 하셨다.


"그 선생님이 도와주실 수 있다고 그러더라. 컴퓨터 선생님이셔. 그분도 휠체어에 탄 장애자이신데, 얼마나 컴퓨터를 잘 알려주시는지. 나는 하나도 모르지만, 그분께 배우면 할 수 있을 것도 같어. 직접 집에 와서 가르쳐 주신다고 했어."


나는 단박에 엄마말에 관심을 표했다. 가르쳐 주신다는 분이 있다는데, 한번 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엄마의 컴퓨터 지식은 마이너스에 가깝지만, 새로운 것을 흥미를 갖고 배우고 싶어하시는 마음은 그 누구보다도 큰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자리엔 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 원래 배우는 것을 고통스럽게 생각하는 언니들도 있고, 엄마의 연세에 그런 일을 하다가 스트레스가 더 쌓이면 어떻게 하냐, 하면서 설왕설래했다. 엄마는 그때 나이, 만 82세셨고, 학력은 스스로 깨친 한글이 유일하신 분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다. 그동안 교회 노인학교를 10년 이상 다녔으니 그곳에서 많은 공부를 하셨을 것이다. 이 교회학교 부분은 글 발행 이후 추가 수정했다. 엄마의 학력을 무시한 것 같아서. 특별히 컴퓨터를 모르는 큰언니는 더 심한 반대를 했다. 컴퓨터 선생이 해준다고 그 일을 맡기는 것은 그분에게 큰 짐을 지워드리는 것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큰언니는 자신도 하기 힘든 일을 엄마가 하려고 하니, 우선 말도 안되는 일을 엄마가 벌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가만 보면 큰언니와 엄마는 겨우 20살 차이에, 장녀와 엄마 사이 있을 수 있는 묘한 심리전을 치르는 것을 보게 된다. 나도 딸 셋을 키우다보니, 큰딸과 친해지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자식키우기는 처음이라, 양육에 서툴고, 자녀 입장에선 본인에게만 기울어지던 관심이 동생들을 보면서 멀어지는 사랑 때문에 결핍의 심리가 형성되는지도 모른다.  심리학을 공부하지 않았으나, 주변 엄마들 중 큰딸, 혹은 큰 아들과 관계를 잘 형성하지 못해 고민인 엄마들을 꽤 많이 만나보게 된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시카고 언니네에 도착했는데, 다시 엄마의 컴퓨터 공부 이야기가 수면에 올랐다. 이번에는 시카고 세째언니까지 가세했다. 큰언니가 "불가능해 보이는 엄마의 도전"에 대해 세째언니에게 미리 말해놓았는지, 더 조근조근하게 엄마 입장에 서서, 컴퓨터 배우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엄마가 오히려 더 스트레스 받을 수 있는 일이라는 식으로 의견을 말하니, 엄마는 호기롭게 꺼냈던 의욕이 꺽이기 시작했다.


그때는 그랬다. 엄마가 "살만큼 살았고, 배워서 그걸 써먹을 기회는 없을 것"이라는 마음들이 속에 있었다. 물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강변하고 싶긴 하지만 말이다.


언젠가 엄마집을 방문하니, 엄마가 좋아하는 가수가 있는데, 그 사람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고, 누군지도 모르겠다고 하셨다. 그 사람을 최근에 가요무대에서 한번 봤고, 그래서 또 볼수 있나 매번 가요무대를 빼놓지 않고  보는데 찾아볼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엄마가 말하는 "진술"에 맞추어, 그 당시 그가 출연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찾아, 그 사람이 "장사익"이라는 걸 컴퓨터 검색을 통해 알아냈다. 그리고는 엄마에게 장사익 노래가 들어간 유튜브를 찾아 그 음악을 들려주니, 신세계를 만난듯 감격스런 표정을 지으셨다.


또하나 생각나는 일은, 오래전에 담아놓은 된장이 색이 너무 진해서, 좀 손을 보려고 하는데 아무런 된장을 넣을 수는 없고, 제대로 발효된 된장을 사다 넣어야 하는데, 그 제대로 발효된 된장임을 알려주는 표식이 된장 제품에 쓰여있다고 말씀하신다. 그것도 텔레비전 어느 프로그램에서 하던 말을 들었는데, 무엇이라 쓰인 제품을 사야 하는지 잃어버렸다며 "굉장히 쉬운 단어였는데" 하며 끙끙대셨다. 그래서 나와 함께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그리곤 "한식된장"이라고 쓴 제품이 제대로 발효된 된장이라고 소개한 글을 읽게 됐다. 나도 모르던 것을 엄마를 통해 알게 됐다.


3년전 엄마가 90세 생신을 맞이할 때쯤엔 엄마집으로 한국에서 언니들이 방문오고, 미국 가족들도 엄마집에 머물게 되면서, 엄마집에 인터넷을 설치하기도 했었다.  그런 다음 모두가 떠나가고, 가끔씩 엄마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엄마집 와이파이를 이용했다. 내가 제안해서, 내가 사용료를 내겠다고 했는데, 엄마는 본인이 부담하신다고 극구 우기셨었다. 엄마는 그만큼 인터넷이 젊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소통의 소구가 된다는 것을 알고 계신다. 그후로 와이파이 계약을 해지했는데, 최근에는 엄마집에 와이파이가 작동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아파트내에서 운영하는 와이파이인가 짐작할 뿐이다.


가족간 카톡방이 있다. 캐나다 가족을 포함하여 미국, 한국 가족들이 모인다. 우리 가족이 가장 많지만, 둘째, 막내 이모네 오빠 언니까지 대가족 카톡방이다. 나는 엄마네 집에 갈때면 그동안 올라온 카톡 내용을 읽고, 사진, 동영상까지 보여드린다. 엄마는 누워있다가 벌떡 일어나 앉기도 하고, 걔는 왜 그런다니, 토를 달기도 하는 둥 그동안 우리들이 나누었던 대화에 관심을 가지신다. 이 정도가 엄마의 인터넷 세상이었다.


엄마의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10일(5월 두번째 일요일)  캐나다 어머니날에 있었던 일이다. 동생네 아이들이 "엄마에게 주는 선물"로 "할머니 스마트폰 작전"을 시도했더랬다. 엄마 아빠가 미국 메릴랜드에 살고, 코로나 때문에 할머니에게 접근이 용이하지 않으니, 할머니에게 스마트폰을 드려 페이스 톡을 부모 그리고 이모들과 할 수 있게 해야겠다는 갸륵한 효심에서 비롯된 일이다.


동생은 아이들이 자신에게도 알리지 않고, 이 일을 했다면서 자신도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당사자인 할머니는 불보듯 뻔하게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가져온다 하니, 강력하게 반대의사를 표현하셨다. 사용하지 못한다는 말씀이시다. 쓸데없는 일 하지 말라고 손사래를 치셨다. 그런데, 막내동생이 엄마를 설득했다. "안되는 걸 되게 하는 일"에 적격인 막내는 엄마에게 "손자, 손녀가 할머니와 엄마를 생각해서 선물을 준비했는데, 잘 사용해볼 생각도 하지 않고, 못한다고만 하면 되겠냐"고 엄마를 혼구녕을 내곤, 아주 간단한 사용법만 가르쳐 드렸다. 동생네 부부가 인터넷 통신료를 부담한다고 하니, 고마울 뿐이다.


요양병원에서 잠시 일하는 손녀딸의 무장(?)한 얼굴을 보고 놀라시는 엄마의 동영상 통화장면


현재 캐나다는 노인아파트 방문이 금지되어 있다. 바이러스에 취약한 노인들을 지키기 위함이라는 정부정책이니 안따를 수도 없다. 가까운 데서 일하는 큰손녀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필요한 것을 사다주고, 큰언니 형부가 식료품을 문밖에 갖다놓으면 엄마는 그걸 갖고 들여가신다. 평생을 "정부"에서 하라는 대로 하며 사신 엄마시라, 이번에도 "나는 잘 지내고 있으니, 내 걱정은 하지말라. 모두 살아남아야 한다"고 오히려 우리를 걱정하신다.


엄마의 스마트폰은 동영상 통화용으로만 작동한다. 스마트폰에 긴 코드를 빼지 말고 사용하고, 저녁에 충전하는 방식으로 막내가 알려드렸다 했다. 막내는 다리미 쓸때 코드 꽂듯이 "저녁에 잘때 코드만 꽂아놓으면 된다"고 말해줬고, 다른 사람들은 동영상 전화만 엄마에게 하고, 먼저 끊어줘야 한다. 먼저 안 끊으면 엄마는 왜 안 끊어지지? 하면서 전화기를 붙잡고 계신다. 엄마의 그런 표정, 그런 웃음은 처음 봤다. 동영상으로 보는 엄마는 새로운 문물에 기뻐하는 소녀처럼 보인다.


오늘은 엄마의 가르침으로 배운 녹두고물을 묻힌 찹쌀떡을 하기전, 엄마에게 동영상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는 재료를 보여준다. 엄마는 찹쌀떡안에 대추를 넣는데, 내가 준비한 대추가 맛이 없는 것같다며, 엄마가 추천하는 대추를 쓰라 하신다. 나는 찹쌀떡을 다 만들고나서도 동영상 전화를 해서, 엄마에게 보여드렸다. 엄마가 하라는 대로 녹두고물을 만들어야 하는데, 좀더 쉬운 방법으로 하려고 인스턴 팟을 이용했다가 죽이 되어, 물기를 날려버리려 다시 불에 올려놓았다가 조금 눌러붙어서 녹두색이 곱지않게 되었다. 대추도 엄마가 사라는 것을 사지않고, 봉투에 많이 든, 퀘벡산 제품을 이용했다. 떡을 찌고 나면, 엄마표떡이 아니다. 그래도 우리 가족중에 나홀로 엄마떡을 전수받아서 쪄내고 있다. 실력은 더 하다보면 늘것이다. 엄마의 얌전하고, 부드러운 찹쌀떡은 언제나 생각나는 맛이다.


시카고 형부는 "어머니가 딸들에게 동영상 통화가 오니, 옷을 이쁘게 입고, 스카프 매고 계신다며, 한참을 웃으셨다"고 언니가 전한다.


엄마의 세상이 더욱 넓어졌다. 10년전 컴퓨터 배우기를 시도했더라면, 동영상 통화를 친구들에게 가르쳐주는 수준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텐데. 어쨋거나, 늦은 때는 없는 법이다. 엄마가 하시고 싶어하는 동영상 예배드리기와, 장사익 노래찾기 등을 알려드려야 한다. 일단은 스마트폰과 친해져야 해서, 그이상의 교습은 코로나로부터 해방된 다음에나 시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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