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dy May 26. 2020

그놈의 "나물 타령"

육개장,  고사리 아니고 고비

내가 사는 동네는 두강이 만난다. 티즈워터(Teeswater) 강과 서긴(Saugeen) 강이 만나, 서긴 강으로 합쳐져서 휴론 호수를 향해 흐른다.  티즈워터 강이 흐르는 그 옆에는 오래된 방앗간이 세워져 있다. 1874년에 이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는데 그 당시에 많은 곡식들이 이 방앗간을 통해서 마을 사람들에게 식량을 제공했을 것이다. 그 방앗간이 있는 곳 뒤쪽으로는 울창한 수풀이 있는데 강가 쪽으로 고비 밭이 있는 것을 우리가 이 동네에 이사 오고 나서 알게 됐다. 방앗간은 비어있었고, 청정지역에 오랜 세월 사람 손탄 적 없는 그 나물 밭의 발견으로 엄마는 "어찌 이런 일이" 하면서 즐거워했다.


그런데 그 방앗간에 새 주인이 들어오게 된다. 벌써 오래전 일이다. 수십 년간 야생동물들의 쉼터가 되어있던 그 건물을 사서 들어온 그들은 방앗간을 고쳐서 사람 살만 하게 만들어놓고, 기념품 가게와 갤러리를 꾸몄다. 은퇴 후 꿈꾸었던 새 삶을 살게 되었다고 좋아하던 그 모습이 선하다.


우리가 이 마을에 이사 온 지도 20년이 넘었고, 그들도 몇 년 후에 들어왔으니 이제 은퇴 후에서 다시 2번째 은퇴 시즌이 다가오고 있다.


이렇게 긴 역사를 끄집어내는 이유는 "나물"에 관해 말하고 싶어서이다. 30여 년 전 이민 왔을 때 새 문물에 놀랐던 것은 거의 당연했지만, 더 이질적으로 느껴진 일이 있었으니, 교민들이 봄만 되면 "나물 열병"에 휩싸이는 것을 목도한 일이다. 나는 젊기도 했지만, 산으로 들로 나물을 캐러 돌아다니는 그들이 참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나도 언니 형부와 함께 고사리를 따러 갔던 적은 있었지만, 그 일에서 어떤 즐거움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엄마와 언니는 아무리 먼 곳일지라도 도시락을 싸들고 봄이면 떠났고, 때로는 엄청난 양의 나물을 해오기도 하고, 때로는 나물은 못 뜯고 모기에 뜯기기만 했다는 푸념도 들어야 했다.


왜 그런 걸 뜯으러 다니냐고, 구박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큰언니는 한국서 결혼하고 나서 첫애를 낳고 그 애가 돌이 될 즈음에 캐나다로 왔다. 형부의 가족들이 캐나다에 정착해 있었고, 형부 가족을 초청했던 것이다. 그것이 40여 년 전이다. 친정 부치가 하나도 없는 캐나다 땅에서 살아나가야 했던 언니가  삭막한 이민의 땅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이 이것이었을까?  어릴 때 산으로 들로 다니며 채취하던 나물을 캐나다 땅에서 뜯으며 외로움을 달랬단 말인가. 나는 아직도 언니의 나물병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는 모른다.


봄이면 우리 집에 모여 고비를 뜯고 삶고 하는 큰 축제가 벌어졌다. 그러다가 방앗간에 새 주인이 이사 오고 나서는 강가 그 지역의 땅이 방앗간에 속해있음을 알게 된다. 어느 날 자기 집 뒤 수풀에 동양인들이 와서 나물을 채취해 갔는데, 자신들에게 알려주면 좋았을 것을, 그렇게 말하는  헬렌과 폴(방앗간 주인)을 보게 된다. 아마도 우리 가족 중 누군가로부터 정보를 제공받은 사람이 다녀갔던 것 같다. 그때부터 우리는 매년 나물이 나왔는지 그들에게 물어보고, 우리가 가는 시간을 알려주곤 했다. 사실 입장을 바꿔 내 집 뒤뜰에 낯선 사람들이 장화 신고 이리저리 거닌다면, 별로 반가운 일은 아닐 것이다. 몇 년간은 방앗간 주인의 심중을 알지 못해, 미안하기도 했고, 소리 소문 없이 몰래 뜯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의견들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들이 나물이 나기 시작했다고 알려주며 환영 모드이다.


언니 형부는 나물이 나올 때마다 연락이 와서 언니가 오는 날이면 나도 한바탕 나물 수확을 하게 되었다. 방앗간 뒤 나물은 참으로 통통하게 잘생겼다. 이건 매년 언니가 와서 하는 이야기다. 30대에 와서 70이 넘어버린 큰언니는 내년에는 못 올지도 몰라, 매번 이렇게 말한다. 사실 그도 그런 것이 나물 뜯는 걸 좋아해서 누구보다 지지 않았던 엄마도 우리 동네에 못 오신 지 벌써 몇 해째나 되지 않았는가?



엄마나 큰언니를 보면, 캐나다 정부도 "먹을거리(나물)"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채취할 수 있게 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유지는 안된다고 하면, 공유지라도 말이다. 여러 가지 안전에 관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하지 말라는 데도 꾸준히 나물을 하러 가는 한인들이 있는 마당이니, 아예 자유화를 하고, 채취비용을 조금씩 내게 한다면 좋을 것 같다. 고비, 고사리, 취나물, 달래, 참나물(이건 너무 많아서 굳이 멀리 갈 것도 없지만), 버섯 그리고 모두가 좋아하는 산마늘 등 캐나다 산천에 건강한 먹거리가 많은데 막고만 있으니 안타깝기도 하다.


나물들은 일단 "말려서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말리면 영양소가 농축돼 칼슘과 철 , 미네랄이 풍부해진다고 알려져 있다. 올해 나는 언니가 오기 전에 남편과 한바탕 수확을 했다. 언니네가 코로나 때문에 못 올 것이라 생각했기에 연락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틀 후 연락이 와서 우리가 먼저 뜯어왔다고 하자, 그다음 날 온다고 하더니, 다시 연락이 오더니 바로 그날 오겠다고 했다. 토론토에서 이곳까지는 3시간 걸리는 거리인데도 말이다.





언니는 올 때마다 방앗간 주인에게 줄 선물을 가져온다. 작년에는 화장지 한 세트였는데, 올해는 견과류 믹스 한 병을 가져왔다. 헬렌과 폴은 자신들은 한 것이 없는데, 매번 고맙다고 말한다. 말할 것도 없이 고마운 건 우리들이다. 때를 못 맞추면 고비가 확 펴버리니, 제때 수확하려면 부부싸움도 잠시 미뤄야 하고 호흡을 맞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1년 농사를 망칠 수 있다. 남자들은 이때 협조하지 않으면, 1년간 고달플 것을 염려해 나물을 좋아하기로 마음을 바꿔먹었는지도 모른다. 나물만큼은 혼자 할 수가 없다. 산속에 있으니 누군가 함께 가줘야 한다.


코로나로 한국식품 가기가 어려워져, 오래전에 사두었던 시래기를 물불리고, 무말랭이도 그렇게 했다. 그리고 작년에 말려놓은 고비도 불리고, 토란대도 함께 더했다. 시래기는 멸치를 넣고, 들깨가루를 넣어 시래기 나물만들고, 무말랭이는 김치 담그듯이 양념을 하여 무쳤다.


우리 집 막내는 이모의 육개장을 좋아한다. 올해는 나도 맛있게 만들어야지, 하면서 야심 차게 시도한다.


1) 양파, 다시마, 후추, 파를 넣고 육수를 만든다.

2) 건더기를  걸러낸 소고기를 넣고 끓여놓는다.

3) 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마늘 파를 넣고 볶다가 불을 끄고 고춧가루를 넣어 고추기름을  만들다.

4) 육수에서 건져낸 소고기와 데쳐놓은 고비, 토란대를 넣고 고춧가루, 마늘, 국간장을 넣고 무쳐놓는다.

5) 큰 냄비에 모든 걸 넣고 끓이다가 숙주와 야생 마늘 이파리를 넣고 끓인다.

6) 고추기름을 넣고 끓여 마무리한다.


조상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마른 음식들이다. 시래기는 된장을 넣고, 자작하게 졸이는데 들깨 정도만 있어도 푸근한 맛을 낸다. 멸치도 가운데 똥을 떼어내고 시래기 속에 넣는다. 우리 집은 얼마 전부터 국에 있는 멸치도 건져내지 않고 먹는다. 맛을 방해한다고 생각했는데, 씹는 느낌이 좋을 때도 많다.

마른반찬에는 미역도 황태도 있고, 도라지도 있다. 한국식품에 가면 농협 로고가 찍힌 마른 나물도 많이 만날 수 있다. 요즘 같이 한국식품 가기 어려운 때에는 그런 음식들을 먹으면서 고향의 맛을 이어나가야겠다. 또 한가지 보태자면, 이런 음식들은 두고 먹어도 맛이 변하지 않는다. 육개장 같은 것은 오히려 국물 맛이 진해지고 감칠맛이 난다. 몇 시간만 지나도 먹기 힘들어지는 다른 반찬들에 비하면, 품격 있는 음식들이다. 몇 가지 마른 나물들을 넣고 비벼먹는 음식들은 어떤가? "그놈의 나물 타령"을 할 수밖에 없다.




사진 위로부터 무말랭이 무침, 시래기 나물, 육개장


언니의 행복한 전화 목소리가 전화 저편에서 들려온다. 동생 덕분에 마음 편하게(허락받은 곳에서) 고비를 채취한 것이 그리 뿌듯한 가 본다. 아웅다웅하는 언니 형부가 나물에서만큼은 형부가 성심껏 도와준다는 말에 미소가 나온다. 나도 이번에 남편의 협조를 기대했다가, 구두약속을 허술히 취급하여 마음에 상처를 받을 뻔했다.


"나물 하러 가는 것 싫어?" 단도직입으로 물어보는 내게 그 문제 때문은 아니라고 그는 입장을 밝혔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토라졌던 마음이 나물을 삶는 내내, 뒷 거지를 해준 남편 때문에 풀어졌다. 나는 잠시 "나물"을 그만둔다고 선전포고를 해야 하나 고민했었더랬다. 까짓 거 안 먹으면 되지 하면서...



올해 많이 만들어진 농산물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한인 친구들에게 나눠주려고 한다. 나 혼자 다 먹을 수가 없다. 제대로 말린 적이 없어서, 주기가 애매했는데, 올해 것은 마음 놓고 줄 수 있을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의 인터넷 세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