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좀 잘하는 게 있수다
누군가 나를 위해 달콤한 말들로 나를 포장해서 글을 써주면 좋겠다. 내입으로 직접 말해야 하는 이시간, 곤욕스럽다.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이웃이고, 동료고, 친구이고, 동생이고 언니야. 그런 다음에 조금 뜸을 들이고, 괜찮은 배우자이고 엄마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나 스스로의 나는, 관계안에서 더 의미를 갖는다. 그렇기에 소중한 사람들에게 할수 있는한 최선을 다하게 되고, 그것이 내 기쁨이 된다. 인터넷 용어이기도 한, "connect 연결"이 나의 소중한 미션이 된지 오래 되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연결고리로 살아가는 것이고, 나도 그 한부분을 담당하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자의식 과잉으로 나는 특별히 "더"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포장하고 있는 중이다.
동네의 수지 언니가 의논을 해왔다. 작년에 바깥 선생님이 작고하신 분이시다. (그 언니의 인생이야기 조금 훔쳐 들었는데 그안으로 내가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언젠가 그 언니의 이야기를 허락을 받고 이곳에 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수지 언니는 80이 되셨지만, 내게는 귀여운 언니로 보인다. 보청기를 낀지 오래되어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흘려들으며 사신 분이다. 요즘 새로 맞춘 보청기는 성능이 좋은지, 꽤 대화에 참여하시는 모습을 뵈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음성을 글로 보여주는 앱도 켜서 사용하셨다. 올봄 동네분들이 만나는 자리가 있었다. 남편을 떠나보낸 수지 언니를 위로하는 모임이었는데, 가장 젊은(?) 내가 연락책이 되었다. 수지 언니는 그날 식사값을 내고 싶어하셨는데, 다른 분이 꼭 대접하고 싶다고 하셔서 기회를 놓치셨다.
수지 언니는 다시 한번 모여서 이번에는 당신이 밥값을 내고 싶다고 하신다. 그때보다 몇명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작년과 올해 작고하신 분이 3명이 된다. 수지 언니는 자신도 그렇지만, 배우자를 잃은 분들께 위로를 전하고자 하신다.
수지 언니가 직접 할 수도 있으나, 나를 중간에 세워주어서 내가 무슨 자격을 부여받은 것처럼 마음이 뿌듯하다. 외교관이 이런 심정일까? 수지 언니의 진심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시간을 조절하고, 약간의 기대를 넣고, 좋은 모임이 되도록 돕는 일은 내가 잘하고, 또 하고싶은 일이다.
오늘 일터에선 이랬다. 매니저가 내 뒤로 슬쩍 와서, 내일 일요일 아침에 일해줄 수 있어? 물었다. 요즘 예배가 없으므로, 온라인으로 드리는데 그래선지 일요일 이용빈도(?)가 늘어간다. 그럴께 라고 대답했다. 누군가 오지 못한다고 한것 같다. 오늘은 정말 바빴다. 얼마 있다가 카니카가 내게 할말이 있는 사람처럼 다가온다. 왜 그래? 그랬더니, "네가 내일 아침에 일하게 된 것을 안다, 나는 오후에 일해야 하는데 시간을 바꿔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아침이면 가볍게 일하고 나면 수월할 텐데 오후에 일할수 있느냐고 하니, 잠시 거절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생각해보고 대답해달라는 카니카의 부탁을 받고 일하면서 생각한다. 무언가 피치 못할 일이 있는 게지. 나는 특별한 일이 없으니까 바꿔주지 뭐. 이렇게 해서 오후에 일하겠다고 말해줬다. 그녀의 얼굴이 확 핀다.
썸머타임이 끊긴 요즘은 특별히 밤에 손님이 없다. 바쁜 때는 뭐라도 하는 것같고, 시간이 잘 가는데 한가할 때 있는 것은 힘들어서 좀 망설였다. 그런 다음에 조금 후에 매니저에게 또 사내전화가 왔다. 오늘 너무 바쁜데, 1시간 더 일해 줄 수 있어? 묻는다. 물론 내 대답은 예쓰다.
맞다. 어느 정도는 "예쓰 우먼"이다, 나라는 사람은. 일터에서는 예쓰가 주로 내 시간을 주고, 돈을 더 받으니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매니저 입장에서는 나같은 사람과 일하기 좋을 것같다. 정해진 시간 전에 나와달라고 하면 큰 일이 없는한 나가준다. 어제는 저녁 9시까지 일하는데, 슈퍼바이저 하는 샘이 15분만 더 있어줄수 있느냐고 해서, 그러마 했다.
일하면서 오늘은 앞으로 뒤로 한참을 뛰어다녔다. 주류를 취급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누군가 주류를 사면 내가 가서 해결해줘야 한다. 학생들은 나이가 안되어서 그런 일을 할 수 없지만, 나이가 든 사람들은 몇시간 공부하면 자격을 갖출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다른 그로서리 스토아와 가격을 맞춰주는 "프라이스 매치" 할 때도 가격 차이가 두배가 되면 "오버 라이드"를 해줘야 한다. 나를 불러젖히는 캐쉬어들이 많은 듯 느껴지는 건 나만의 착각인지 모르겠다. 나의 고객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른 캐쉬대로 달음질쳐 갔다가, 다시 돌아온다. 사실, 웬만하면 최소한도로 고객과 대화하는 편인데, 이런 일에는 양해를 구해야만 하기 때문에,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저쪽 도와주고 올게요"를 연발했다.
왜 꼭 내가 가야해, 다른 캐쉬어들을 부르지 않는 거지? 나름 불평할만 하지만, 나는 그런편이 아니다. 작은 일이라도 도와줄 수 있으면 즐겁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기꺼이 간다"가 내 모토일 수 있다.
시카고 동생이 왔을때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이 나도 좋아하는 일이라 즐거웠다. 오후에 일하는 날은 함께 산행도 하고, 동굴도 탐험하고, 쇼핑도 했다. 파트타임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서 노는데 진심을 다한다. 시간을 비워야 하면, 1주일 전에 신청하면 되어서 또 초겨울 캠핑까지 함께 할 수 있었다.
어떻게 잘 놀까, 무엇을 더 볼까 그런 일들을 좀 잘한다고 볼수 있으려나. 겨울에도 문을 여는 캠핑장이 있었다. 곁에 있는 사람들은 겨울에 차박하다가 죽은 사람들 기사도 보내고, 입이 돌아갈 수도 있다는 등, 동태가 될 것이라는 둥 위협을 했지만, 동생이 가고싶어해서 한번 질러보기로 했다. 내가 가고싶었던 Grand bend Pinery 주립공원을 함께 갔다. 둘째날 저녁 공원내 비치를 찾아나섰다. 공원 전체를 연 것이 아니고, 한 군데만 열었기 때문에 차길이 막혀있었다. 공원내에도 좋은 비치가 많다고 들었지만, 동서남북 방향을 잘 몰라서 일수도 있고, 차길을 막아놔서 일수도 있지만 강가만 만났다. 그래서 차를 공원밖으로 몰아 동네 비치를 찾아나섰다. 20여년 전에 이 동네에 와서 집을 얻어서 가족들이 모였었던 곳이기도 했기에 비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곳에 갔더니 방파제 저 뒤로 등대가 보이고, 휘어진 휴론 호수의 너른 물이 우리를 맞았다. 서편으로 해가 져서 붉게 물들어가고, 오른쪽 바람부는 비치에서 한 여인이 물가를 거닐고 있었다. 정자 근방으로 차 몇대가 주차되어 있었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석양을 배경으로 동생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며, 여행이 어땠는지 물어봤다. 우리들 모두 그 물을 보지 못했다면, 캠핑장에서의 여운이 그리 깊게 남지 않았을 것이다. 비치를 찾다가 포기하고 캠핑장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었으련만, 그러지 않았던 것이 얼마나 스스로 대견한지.
그 캠핑은 테슬라 차의 히터 작동 능력과, 침낭, 슬리핑 패드, 부분 히터, 전기장판등의 성능을 실험하고 확인하는 캠핑이었다. 하룻밤 우리와 함께 했던 막내동생이 가져온 야전침대까지, 무엇이 쓸만하고, 어떻게 자야하는지 그런 것들 말이다. 첫날밤과 둘째밤을 겪고 나서 우리들의 결론은, 배터리 걱정을 해야 하는 차 히터는 켤 필요가 없다. 차 트렁크를 열고 첫날은 잤기에 텐트와 차안까지 데우느라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니, 둘째날에는 차 트렁크와 연결된 텐트의 지퍼를 닫고, 전기 히터와 전기장판, 담요를 사용했더니 충분히 아늑하고 모두 잘잤다. 우선 튼튼한 텐트 때문이야, 하다가 전기장판이 없으면 어쩔뻔 했어, 아니 담요도 한몫 했어, 우리는 하나하나 점수를 줬다. 결국 그 모든 것들이 서로 조력하여 우리가 잘 잘 수 있었다. 우리들의 온기까지 더해서 말이다. 그곳은 미국 사니아 (Sania) 국경 근처여서 동생은 캠핑을 한후 집으로 향했다.
연결이 언제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주도적인 마음이 안들고 끌려들어갔을 때 그랬던 경험들이 있다. 그러므로 연결이 될 때, 함께 주도적인 마음들이 되어야 하는 것같다. 안에 있는 마음이 나올 때, 그 마음을 무시하지 말고, 주변에 전하고 비슷한 느낌의 마음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을 한자리에 묶는 것이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물론 모두의 마음의 무게가 같을 수는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나의 남편을 봐도 말이다. 그는 거의 기꺼이 참여하는 정도이다.
내가 괜찮은 이웃인 것 같은데, 괜찮은 배우자인지는 모르겠다. 자꾸 그를 뒷전에 놓게 될 때가 있다. 얼마전 남편이 백내장 수술을 했다. 동생과 함께 병원에 갔는데, 수술실로 그를 들여보내고 대합실같은 대기실에 동생과 앉아있었다. 조금 있다가 동생이 언니 밖에 나갔다 올까? 묻는다. 나는 잠시 기다려 봐, 하면서 접수받는 여인에게 가서 물어봤다. 언제 끝나느냐고. 그 여인은 1시간에서 2시간 걸린다고 했다. 그래서 동생과 밖에 나와서 차로 들어갔다. 남편은 수술 때문에 아침도 못먹었는데, 우리는 배가 고팠다. 집에서 싸온 티와 참깨 찹쌀빵을 조금 먹자고 했다. 그렇게 먹으며 시시닥거리다 대기실로 갔다. 남편은 그때까지 소식이 없었다. 그랬는데 조금 있다가, 남편이 수술실 밖으로 나왔다. 어디있다가 이제 왔느냐며 우리의 부재를 안다. 다행히도 눈수술이 잘되어 잘 보였기에 그의 기분이 나쁘지는 않아 보였다. 수술은 20여분 걸렸다고 했다. 보호자를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보호자와 함께 들어야 할 주의사항을 혼자 들었다고. 자신은 방치되었다고 해서 무마하느라 혼났다. 나는 "처제"가 나가자고 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책임을 돌렸다. 사실 말이지만, 혼자 왔었다면 단연코 나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집에 와서도 하루에 세번씩 눈약을 넣아야 하는데, 내가 자주 잊어버린다. 내가 없으면 혼자 잘 넣으면서 잠시 삐지기도 한다. 남편과의 커넥트는 YMCA 운동을 함께 하는 것으로 요즘 한가지 요소를 첨가했다. 드라마를 보는 것은 좀 줄였다. 파트타임 일을 한다는 핑계로 식사 준비를 남편이 많이 한다. 어쩌다 내가 한번 음식을 하려고 하면, 정성을 들이지 않아 태우거나, 실패를 한다. 남편은 잘하다가도 가끔씩 심술보를 터뜨린다. 특히 교회일로 바쁠 때는 더 그런 것 같다. 그리고 눈 수술한 사람을 홀로 두고 여자들만 캠핑을 떠나기도 했으니, 우리집 딸들은 아빠가 괜찮은지 걱정이 심했다.
아이들에게 나는 좋은 엄마이고 싶지만 잘은 모르겠다. 이 부분은 차차 더 말하기로 하고, 여기선 줄이자.
누군가의 선의를 받으려고 노력한다. 그 마음이 밖으로 나오기까지 많은 머뭇거림과 생각이 오고갔을 것을 짐작하기에.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에게(준 사람일 필요는 없다) 받은 선의를 돌려주는 것이다. 그런 마음들이 오고갈 때, 파동이 일어나 삶이 따뜻해진다고 본다.
때로는 받기만 하기도, 때로는 주기만 하기도 하지만, 그의 총량은 언젠가는 같아지는 것이 아닐까. 받아야 될 때는 받기만 해도 된다. 주는 것이 더 기쁘다고 했으니, 주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꼭 되갚아야 할 부채같은 것은 없다. 때가 되면 분명히 갚게 되니, 그걸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