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별을 한 그녀
케이를 말할때 "이별"을 떼어놓고 말할 수 없다. 이혼이라고 말하던가. "움직이는 라디오"같았던 명랑했던 그애가 결혼이라는 바다에 빠진 뒤로, 이해못할 처신을 하는 사람으로 변하기 시작했었다. 우리집의 막내였기에 사랑을 많이 받았던 그애가 지천꾸러기가 되어갔다. 나중에 알고보니, 남편과 어울림을 잘하지 못했었고, 남편은 알콜 중독자가 되어 있었다. "그저 술을 좋아하는 사람" 정도로 가족들은 알고 있었기에, 막내의 이상한 행동이 가정불화에서 비롯된 것임을 잘 알지 못했었다.
바니가 선교지에서 돌아오고, 동생과 오랫동안 교류하면서, 집안에서 움직이지 않고 생활하는 그애의 남편의 이상한 점은 결국 중독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파악해내기 시작했다. 우리들과도 친했던 제부였기에 그의 진면목을 들여다보는데 시간이 걸렸다.
집안에서 별거를 시작하고, 그것을 문서로 만들어놓았다. 이혼이라는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다. 살고있는 집에서 서로 반목하며 보내다가, 결국 남편이 나가게 되고, 그후로도 오랜 시간을 별거 상태로 보내다가 작년에 최종 이혼이 되었다. 이혼이 된후 케이가 우리들에게 보냈던 메세지는 이러했다.
오늘 아침 Superior Court of Justice(대법원)에서 서류가 접수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지난주에 보냈던 신청서에는 빠진 부분이 있어서 reject(거부)가 되어 돌아와서, 며칠전 빠진 문항을 보충해서 신청서를 다시 보냈는데, 다시 보낸 서류가 무사히 법원에 접수 되었다는 컨펌(확인)이다.
이제 판사의 결정을 기다리는 절차가 남았다. 육아와 재산에 대한 이견이 없는 합의 이혼이라서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한 4개월쯤후에는 이혼 선고를 받을수 있을듯하다.
남들은 이혼의 과정이 그리도 어렵다는데, 우리는 변호사의 개입도 없이 이렇게 쉽게 가고 있다. 이것은 전적으로 그사람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조금이라도, 나의 짐을 덜어주고 싶은 그 사람의 마음 임을 안다. 이제서야, 여기까지 와서야, 마지막 앞에서야, 서로를 향한 배려의 마음이..
그 사람의 배려에 마음이 아프다. 그 사람을 배려하지 못했던 시간들이 아프다. 아프지만 내 힘으로는 도저히 안되는 사람, 어쩔 도리가 없는, 불쌍하기만 한 사람, 멈추었던 눈물이 또 다시..
당신에게 감사..
나와줘서,
제 시간에 나와 줘서,
수염과 머리를 깍고 나와 줘서,
검사관 앞에서 예스라고 대답해 줘서,
이혼 금액의 절반을 부담하겠다고 말해 줘서,
커피 사주고 같이 마셔 줘서,
아이들 소식을 궁금해 해 줘서,
아이들이 보고 싶다고 말해 줘서,
큰애 취직 소식을 뛸듯 기뻐해 줘서,
애들 키우느라 수고했다고 진심으로 말해 줘서,
당신에게 감사..
정신이 있어보여서,
아직 걸을수 있어서,
아직 밖을 돌아다닐 건강이 있어 줘서,
술을 끊었다고 말해 줘서,
약을 잘 먹고 있다고 말해 줘서,
정신과 의사를 보고 있다고 말해 줘서,
교회를 가고 싶다고 말해 줘서,
나와 아이들에게 짐이 되지 않고 싶은 마음을 표현해 줘서,
당신에게 감사..
나에게 깨끗한 모습을 보여줘서,
당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을수 있는 마음을 다시 갖게 해 줘서,
아이들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게 해 줘서,
순하고 착한 사람이라서 감사,
아이들을 셋이나 낳아 줘서 감사,
사랑했던 기억을 갖게 해줘서 감사,
나에게 매달리지 않아 줘서 감사,
나를 놓아 줘서 감사,
나를 미워하지 않아 줘서 감사,
아직도 나를 사랑해 줘서 감사,
당신의 아픈 마지막 선물..감사..
"아름다운 이별"을 한 케이는 이제는 단단히 여물어간다. "시간이 없어"를 입에 달고 사는데, 사실 그렇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애는 올해 데이 어웨이(Day away) 중창단 시작을 알리면서, 곡 선정부터 일정까지 카톡에 올리면서 연습을 단단히 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데이 어웨이" 중창단은 1년에 한번 공연을 위해 모인다. 올해로 3번째인가? 조엔 언니가 봉사자로 있는 데이 어웨이(Day away)는 요양원에 가기전에 집에 있는 노인분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치매 노인들도 많이 온다고 한다. 언니는 매주 월요일 그분들을 돕는 일을 하는데, 식사하는 것도 돕고, 말동무도 해드리고, 특별히 음악시간이 있어서 피아노도 치고, 노래도 부르고 하는데, 1년에 한번 크리스마스 즈음해서 우리들이 가서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꼭 해야하는 일도 아니니, 나는 소극적 참여자인데, 케이의 지휘 감독이 없다면, 이뤄지지 않을 모임이다.
단원들은 키치너(오웬사운드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케이와 안장로님(여자 장로님), 그리고 나와 남편인데, 남편은 올해 자진 하차했고, 동네 소월언니가 함께하기로 했다.
그 첫연습이 며칠전 있었다. 김장으로 키치너에 모이기로 한 전날, 케이네 집에서 함께 연습을 했다. 문제는 영어로 해야하는지라, 입이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 케이는 율동까지 넣자고 해서 즉석에서 율동도 만들면서 연습했다.
홀로 피아노를 연습해서 꽤나 치는 것으로 알고있고, 이번에 보니 기타실력도 는 것 같다. 일찍 재능과 하고싶은 일을 찾았다면, 음악쪽으로 나가야 했을 것같다. 밥벌이로 잡은 미용사 직업으로 세 아이를 홀로 키워냈다. 불안해보이던 가정이, 오순도순 삶을 꾸려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겁다. 큰딸은 고등학교 선생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니, 얼마나 대견한지.
케이는 음악쪽으로뿐 아니라, 가끔씩 올리는 글을 보면 깜짝 놀란다. 깊이있는 생각들, 뛰어난 관찰력등 글쓴이에게 필요한 모든 자질을 가지고 있는 것같다. 고난일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이, 이제는 열매로 맺어지는 것같다.
케이네 집에 가면, 제대로 얻어먹기 힘들다는 것이 우리들의 중론이었다. 삶에 바쁘니, 손님을 위해 음식준비등이 쉽지 않으니, 손님들이 주방을 들락거리며 차려내야했다. 그런데 얼마전부터는 그집에 가면 거하게 얻어먹게 된다. 이번에 미국서 온 동생과 오웬사운드 가족(우리집 2명과 언니)이 가서 하룻밤 자고 왔는데, 잡채, 꼴뚜기 찌개, 겉절이 등이 올라와 있었다. 그 메뉴는 내가 미미 동생이 우리집에 온날 차렸던 메뉴와 같아서 깜짝 놀랐다. 특별히 꼴뚜기 찌개는 미국동생이 큰언니집에서 먹었던 그 맛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었는데, 나도 그 생각에 그 음식을 준비했는데, 케이도 같은 음식을 장만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의 시그니춰 메뉴 잡채까지 포식을 했다. 우리들은 비슷한 입맛과 손맛을 가진 엄마의 딸들이 확실하다.
이왕 나온김에 김장 이야기를 마저 하자. 키치너에는 엄마의 사랑하는 막내동생 이모의 아들 가족이 산다. 그집은 3대가 모여사는 대가족이다. 사촌오빠는 오빠가 없는, 아들이 없는 우리집의 아들 노릇을 하려는 것같이 우리들에게 "심하게" 잘해준다. 오빠의 제안으로 김장을 하기로 했다. 작년에는 오빠네 식품점에서 김치를 버무리는 것만 했는데도 힘이 들었다. 올해는 케이네 집에서 하기로 했다.
오빠가 배추를 다 절여오고, 배추속을 만들어 왔다. 우리들에겐 배추속을 넣으라고 하더니, 오빠는 석박지 무우를 가져와서 자르기 시작한다. 배추 50포기 김장과 석박지, 깍두기를 담았다. 일꾼은 7명, 오빠와 올케언니까지 하루 반나절 김장에 매달렸다. 처음부터 했다면 노동의 강도는 몇배는 더했겠지. 그뿐인가. 오빠네가 가져온 감자탕으로 점심을 먹고, 저녁은 돼지고기 보쌈으로 배를 두드리며 먹었다.
아무리 한국식품을 한다고 이런 일이 일어날까? 오빠네가 아니었으면, 또 시간을 내서 함께 참여한 우리들이 아니었으면, 이렇게 사랑으로 버무린 양식을 얻을 수 있을까. 이런 자리는 엄마 세대의 우애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자각이 든다. 이씨네 딸들은 한씨(엄마성)네 이종사촌으로 하여 갑절로 행복할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