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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국경에서 막혔던 길

시카고 보타닉 가든에서 화보촬영도

by mindy

시카고 보타닉 가든에서 셀프 화보촬영(?)을 했다. 아름다운 정원을 돌다, 만난 다리위에서 우리는 떠나지를 못하고, 이렇게 저렇게 사진촬영을 시도했다. 마음이 맞는 자매들이라 눈도 비슷했는지, 서로의 가장 좋은 모습을 발견할 때까지 사진을 찍어주면서 즐겼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폐가 안되게 챙겨야 했으므로, 우리들은 그 다리위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아래로는 강이 흐르고, 버드나무가 흐드러지게 최고의 성장을 한때였고, 청명한 날이었는데, 직사광선이 아니어선지 묘하게 빛이 좋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4명이 함께 찍기도 했다. 미미는 그날 일해서 함께 하지 못했다.


바니는 우리가 오기전부터 이 정원을 예약해 놓고 있었다. 가끔씩 무료입장의 날이 있다는 것이다. 바니는 1년 회원권을 사서, 때마다 와보면 다른 종류의 꽃들이 피어있고 다른 느낌이라며, 산책겸 이곳을 거니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조앤언니를 위해 휠체어를 빌려서 우리는 어디든 갈수 있었다.


미니 기차길을 만들어놓고, 그곳에 각종 모양의 기차가 운행이 되고 있었다. 미국의 유명 관광지가 그곳에 축소되어 조성되어 있었다. 어린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곳이었다. 또한 385에이커에 달하는 정원을 전체적으로 볼수 있는 기차를 탈수도 있었다. 기차에서는 정원에 대한 설명이 있었는데, 제패니스 가든 선전이 많았다. 보타닉 가든은 일본 정부의 많은 지원을 받았나 싶을 정도였다. 라이벌이 승승장구하는 느낌이었달까. 일본과 많은 연관을 맺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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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과 연잎이 눈길을 끌었다. 마치 타고 앉아도 될것 같은 풀잎 배가 되어 떠있는 연잎을 보라.


정원안에는 연못과 강이 흐르고, 작은 섬도 흩어져 있었고, 자연적인 살림안에 사람이 가꾼 화원들이 흩어져있었다. 나무를 키우고 살리는 식물원도 있고, 수많은 볼런티어들과 정원사들이 일하는 모습이 정겨웠다. 카페와 기념품 가게등도 있어서 피크닉 준비를 해오면, 하루종일 보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우리도 서두를 일이 없었으므로, 이리저리 휘돌아 다니다가 위에서 말한 다리위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그곳이 제패니스 가든 입구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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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가 늘어진 다리위에서 화보촬영중인 아주머니들


그날 저녁이었던가. 시카고에서 유명하다는 피자를 시켰다. 딥 디쉬 피자였는데, 피자의 가장자리가 높이 솟아, 마치 큰 둥근 그릇처럼 생긴 피자였다. 샐러드도 아주 맛있었다. 피자 가게 이름이 외우기가 어려웠다. 루 말나티스(Lou Malnati's)라고 했다. 두판의 피자로 그날 저녁 포식했고, 그 다음날 동생은 일터에 가져가서 나머지를 먹었다고 했다. 그날의 피자는 내가 결제했다.


우리가 시카고를 방문하기 전부터 바니는 어디를 가고싶은지 몇번을 물었다. 그런데도 굳이 가고 싶은 곳은 말하지도 않았고, 형편이 되는대로 하자고 밀어두었다. 시카고하면, 다운타운 관광인데 우리들은 그앞에서 의견이 분분했다. 투어버스를 타고 도는 방법도 있지만, 차안에서만 보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고, 한곳에 내려서 보려면 걸어야 하는데, 조앤언니가 문제였다. 휠체어를 빌리고, 그것을 버스에 태울 수 있을지, 아니면 차를 가져간다면, 주차하고 구경하는 데까지 가야 하는데 그것도 힘들고 여러가지 쉽지 않게 느껴졌다. 어디든 다운타운은 복잡한 생각이 들어 엄두가 안난다. 밀레니엄 공원을 봐야, 시카고를 갔다왔다고 할 수 있다는 말에 꼭 정복하고도 싶었지만, 포기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하루를 벌어서 밀린 쇼핑도 하고, 나는 한가지 숙원사업을 풀 수 있었다. 시카고에서 돌아가면 둘째 부부가 오기로 되어있었고, 그 다음날 온타리오 북쪽으로 여행가기로 되어있기에, 머리 다듬을 시간이 없었다. 동생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염두에 두었는지, 미용실에 예약을 해줬다. 막내에게 내 머리를 맡겼다가 머리칼을 거의 태울뻔한 경험이 있는지라, 막내에게는 더이상 머리손질을 맡기지 않는다. 너무 잘하려고 두번을 하다가 그리되어서 1년여간 고생했었다. 막내도 시카고 미용실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보고싶다고 나와 동행했다. 지금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구불구불한 일반파머가 처음에는 마음에 들었다. 여행지에서 파머를 하면, 또 새로운 기분이 들기도 한다.


마지막날 밤에는 모두 함께 모여서 포도주를 나누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여행이었는지, 그런 주제였을 것이다. 조앤언니는 "매순간, 일분일초가 즐거웠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 아닐까, 매우 위트있고, 즐거운 분, 그런 분이 이런 자리를 만들어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동생들이 사는 곳은 시카고 미드타운쯤 되는 것 같다. 높은 빌딩이 없고, 번잡하지 않고, 나무도 많았다. 30여년전 처음 왔던 시카고는 흑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었는데, 철장 가게등 살벌하게 느껴졌는데 이번에는 중후한 느낌으로 많이 달랐다. 아직도 흑인동네는 그런지 모르겠지만, 도시도 여러모양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 돌아오는 길, 첫 운전자는 케이였다. 운전대만 잡으면 졸리다는 케이는 아침나절이면 괜찮다면서 자신이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은 괜찮았다. 점심을 먹고 내가 운전을 맡았는데, 한참을 가다보니 모두 잠에 빠지고, 운전자인 나도 졸리기 시작했다. 운전자를 너무 믿었던 탓이었겠지. 눈을 비벼 뜨면서 간신히 운전을 했다. GPS를 동생집인 워터루로 찍고 오니, 차가 디트로이트 국경 근처로 오는데도, 국경으로 인도하지 않는다. 하이웨이 표시판은 캐나다 국경가는 길을 알려주는데 말이다. 나는 잠에서 깬 케이에게 사인대로 국경쪽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했더니 GPS를 따라가자고 한다. 그렇게 해서 디트로이트를 지나서 한참을 시골길을 달리다보니, GPS가 인도한 그길은 Perry(여객선)를 타고 캐나다로 가는 곳이었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바니가 이리저리로 가라고 그렇게 이야기해 줬는데도, 경험자의 말보다는 GPS를 믿었다가 생긴 참사였다. 할수 없이 이번에는 사니아(Sania) 국경쪽으로 경로를 이동했다. 이제는 운전을 조엔언니에게 맡기고, 나는 좀 쉬기로 하면서 뒷좌석에 앉았다.


Sania 국경쪽으로 왔는데, 우리차 앞으로 트럭들이 늘어서 있었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옆으로 뒤로 앞으로 300여대는 넘어보인다. 트럭 장벽이 되어있다. 한참을 줄서서 기다리다가 이 길에 있다가는 캐나다 들어가기는 어렵게 생각되었다. 다른 승용차들도 옆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우리도 빠져서 동네길을 돌다가 주유소와 편의점이 있는 곳에서 숨을 돌리기로 했다.


그 와중에 로딩이 된 케이의 전화기 문제가 발생했다. 1%가 남았다고 뜨고, 더이상 충전이 안된다. 동생은 그 전화기를 붙잡고 씨름을 한다. GPS도 켜야 하고, 급하면 전화도 해야하는데 말이다. 나는 아무래도 편의점에 들어가서 무슨 일인지 물어봐야겠다고 말하고 차에서 나왔다. 편의점의 여인은 세관에서 문제가 있는 것같다며, 승용차만 보내주는 곳이 있다고 들었다며 "Duty Free"쪽으로 가라고 알려준다. 나는 차에 와서 기쁜 표정으로 "Duty Free" 쪽으로 가라고 한다. 그쪽으로 가자, 이야기했다. 케이는 화장실갔다 온다며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그런 다음 나오더니, 안에서 들었다며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한다. 그래 그쪽으로 가자, 해서 갔다.


간신히 찾아갔는데, "To Canada Closed(캐나다방향, 금지)"라는 사인이 있고, 막아놨다. 얼굴색이 모두 더 흑빛으로 변해간다. 그런데 조앤언니가 듀티 프리 사인을 우리가 지난것 같다. 그쪽으로 다시 가보자고 했다. 바로 전에 건물이 하나 보이기는 했었다. 차를 돌려서 조금 나오니, 듀티 프리 건물이 뒤쪽으로 보이고, 앞에는 진입차단막이 있다. 차를 그쪽으로 몰고 갔다. 그앞에서 앉아있는 사람이 "캐나다 가느냐?" 물어서 그렇다고 했더니 차단막을 올려준다. 그러고 나니, 바로 캐나다로 빠져나오는 게이트가 나온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 작은 길을 놓쳤으면, 그날 캐나다에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나중에 들은 소식으로는 캐나다 세관의 컴퓨터 문제였다고 하는데, 지금도 국경에는 트럭이 장사진이라는 소식을 들으니, 화물을 실은 트럭의 캐나다 미국 국경의 문제는 관세등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싶다.


캐나다에 잘 들어오고, 룰루랄라 이야기하면서 오는데, 케이가 그런다. 자신이 딸과 여행할때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자신은 사람들에게 묻자고 하고, 딸은 전화기에서 모든 정보를 얻고 그곳에서 답을 찾으려고 해서 부딪칠 때가 많다고 말한다. "내가 묻자고 했잖아"라고 거들었다. 그랬더니 케이가 "언니, 무슨 말이야? 내가 가서 물어봤잖아" 하는 것이 아닌가. 두 의견이 쨍하고 마주쳤다. 케이는 내 이야기를 전혀 듣지 않았던 것을 알았다. 조앤언니가 "야, 민디가 먼저 묻고 왔잖아"라고 해주지 않았으면, 어쩔뻔 했나. 그래도 케이는 한동안 자신이 먼저 묻고왔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왔다. 조앤언니에 따르면, 나는 의견을 내세우지 않고, 목소리도 크지 않아서 무시될 때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화는 나지 않았지만, 케이의 고약한 처사에 예전의 일들도 끄집어내면서 말했다. 케이에게 당한 기억들이 몇번이고 있었기에 말이다. 요즘엔 구글이 있어서 잘못 말한 사람이 누군지 금방 가려낼 수 있지만, 예전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던 때였으니.


나는 친구들에게 나의 의견이 무시당한 이야기까지 끌어내었더니, 조앤언니가 으르렁거린다. 동생에게 그렇게 대했다면서.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니기에 큰 상처로 남지는 않았지만, 그런 사람들과는 결국 관계를 끝내게 된다. 그런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케이 동생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렇게 열띤 토론을 하면서 오다보니, 케이 집에 도착했다. 우리는 그집에서 간단한 저녁식사를 하고, 오웬사운드로 돌아오니 밤 12시가 되었다. 아침 7시에 떠났는데, 국경에서 헤매다가 이렇게 시간이 길어진 것이다. 꽉찬 7박8일 여행이었다.


미미 동생네서 하룻밤을 자고, 바니 동생네서 4박, 캠핑에서 2박 그렇게 됐던 것 같다. 바니 동생은 때마다 식사를 챙겨주었다. 케이는 와중에 파김치도 담아주고 오고. 이번에는 나도 대접(?)받는 축에 들어서 입과 귀와 눈은 즐겁고, 몸은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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