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의 서재 가입
한동안 뜸들이다 드디어 결정한 일이 있다. 바로 밀리의 서재 멤버십을 샀다. 새해들어서 한가지 새롭게 시작한 일이다. 그것이 며칠전이던가? 어제로서 5권의 책을 읽었다. 무언가 뿌듯함이 밀려온다. 5권 다 가독성이 좋은 책이었기에 가능했다. 앞으로 이런 속도로라면, 올해 책읽기는 남부럽지 않을 것 같긴하다.
이북 리더기를 먼저 구매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해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꽤 망설였다. 해외라는 특성상 어떤 기기를 살지, 어떤 플랫폼을 이용할지가 관건이었다. 이북 리더기는 많은 종류가 있고, 가격도 만만하지 않아서 제대로 골라야 할것 같았다.
우선 예스 24에서 전자책을 구매하려 해보았다. 해외에서 결제할 수가 없었다. 필요한 책 한권씩 사서 읽을까 했던 데서, 잠시 벽에 부딪쳤다. 며칠째 전자책 관련 동영상을 보면서 고민하다가 해외결제가 가능한 밀리의 서재로 가는 수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년 구독료가 애플 앱스토어로 하면 더 비싸진다는 것을 이글을 쓰면서 알게 됐다. 149,000원이라고 나와있는데, 캐나다화 결제된 금액을 보니 169.49달러이다. 꽤 비싼 요금이 아닐수 없다. 그런데 이 돈을 쓰기 위해 고민한 시간들을 생각하니, 그다지 아깝지 않다. 생각은 투자를 낳는다. 그 투자를 잘 활용하는 건 투자자의 열심이겠지.
전화기에 앱을 깔고나니, 읽고싶은 이북을 바로 볼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첫 책은 정연희님의 "나는 내 딸이 이기적으로 살기를 바란다"였다. 정루시아로 활동하는 브런치 작가님의 연재소설을 재미있게 읽던 중이었는데, 그 작가님이 출간한 책이 있어서 보고싶었다. 밀리의 서재에 마침 그책이 있었다.
제목이 도전적이다. 작가가 환경에 굴하지 않고 헤쳐나온 삶의 용기에 많은 자극도 받았다. 여자에게 바라는 사회의 시선에 안주하지 않고, 치열하게 살아왔기에 딸에게 해주는 말들이 모두 진정한 인생 선배의 뼈아픈 충고로 느껴졌다. 엄마라는 이름과 딸, 혹은 며느리라는 이름으로만 살지 말고 자신의 이름으로 살라는 그녀의 글에는 밑줄 칠 내용들이 많았다. 전자책의 밑줄은 하이라이트 하면 되었고, 책에서 하이라이트(밑줄)만 칠 수 있으면 그것이 전자책이든 종이책이든 책 읽는 맛이 난다.
"결혼하여 정작 힘든 일은 자식을 낳아 키우며, 아니 엄밀히 말하면 자식의 성장을 바라보며 내가 현명한 엄마인가? 아이들이 제대로 된 사랑을 받으며 잘 지내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과 함께, 직장 여성으로서 지속된 죄책감에 시달린 것이다."
"아버지 생각해봐요. 내 남편이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저를 이리 핍박하면 제가 참고 살아야 돼요? 제가 일이 있어 나가야 된다고 하는데, 남편이란 사람이 내밥 차려야 하니 못 나간다 하면 옳다구나 하고 제가 그러고 살아야 돼요? 그런 소릴 듣고 제가 살고 있다면 아버지 마음이 좋겠어요? 평생 순종한 엄마도 남의 집 귀한 딸이었어요. 그렇게 아빠 편한 대로 하시면 안되죠. 그러지 마세요. 엄마가 아버지를 너무 사랑하니까 이제까지 참고 산 거예요. 너무 사랑해서. 그걸 몰라요?"
"재산 그거 딱 반은 엄마 거예요. 거기에 종교적 핍박으로 위자료도 받아낼 수 있어요. 그러지 말아요. 왜 늙어서 엄마를 하느님 믿는 순한 엄마를 핍박해요. 이젠 편하게 기도하게 해줘요."
친정 아버지에게 이렇게 쓴소리를 해줄 수 있는 딸이 그리 많겠는가? 작가는 순한 여성들의 삶이 결국 이런 남성중심주의 사회를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무수한 딸들의 하루가 모여, 딸들의 양보와 선의가 모여 조상들은 남성 중심 문화를 형성했다. 여성들이 하루의 양보를 허락하지 않고 살았다면, 지금의 문화는 달랐을 것이다. 별거 아닌데, 이것 하나는 그냥 내가 하자, 하는 수많은 양보들이 쌓여 남성에게 기득권을 안겨주었음을 잊지말아야 한다."
이밖에도 밑줄친 글들은 많이 있다. 작가도 친정아버지에게는 이렇게 바른 소리를 하지만, 시댁 어른들에게는 제대로 말을 못하고 그들의 기대 안에서 살아내려고 발버둥친 이야기들을 갖고 있었다. 딸의 결혼앞에서 사랑이란 이름으로 자신을 죽이고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남편과 자식들에게 매몰되어 살아온 이땅의 착한 여성들에게 그것이 다가 아님을 알려주며, 자신의 삶을 끈질기게 개척하는, 조금은 이기적으로 살라는 작가의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소리내지 않던 여성이 목소리를 내니 사회가 시끄럽다 한다. 이타심이 없는 여자, 이기적인 딸, 자식보다 자기 인생만 생각하는 아내, 대를 잇지 않고 효를 모르는 며느리라고 말이다. 수백년간 숨죽여 살았던 여자들이 이제야 자기 목소리를 조금이나마 내니 사방에서 이기적이라 말한다. 이런 것이 이기적이라면 천만번이라도 우리의 소중한 딸들이 이기적이길 바란다."
이 책 다음으로 읽었던 책은 일본 작가 가와무라 겐키의 "8번 출구"였다. 일본 작가와 친해지기가 쉽지 않다. 혹시나 이 책은 그런 길로 이끌어주지 않을까 했지만, 도통 헤맨 기억밖에는 없다. 게임을 모르는 아줌마가 게임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자꾸 반복되는 상황, 영화 "대홍수"를 보면서 느꼈던 이건 뭐지 하는 느낌과 비슷했다. 미로속에서 출구를 찾아나가는 게임같은 책이다. 원래 있는 게임을 기반으로 작가가 글을 썼다는 설명을 읽은 것도 같다. 영화도 나왔다고 하니 유명한 작품같긴 한데,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홍학의 자리"라는 정해연의 추리소설을 읽었다. 한 고등학생의 죽음에서 비롯되는 사건이다. 이 책은 추리소설의 여러가지 흥미를 잘 배치하여 형사와 함께 살인자를 추적하는 재미가 있었다. 마지막까지 범인을 잘 감춘 작가의 실력이 놀랍다. "낙하 혈흔" "동반 혈흔"등 수사의 전문 용어를 배울 수도 있었다. 뭐 금방 잊게 되겠지만 말이다.
그 다음에 읽은 책은 "정리의 힘"이었다. 작가는 곤도 마리에로 미니멀니즘의 돌풍을 몰고온 일본 여성이다. 굳이 이책을 읽어야 하나, 하면서 시작했는데 이 책도 하루만에 끝냈다. 작가는 정리 컨설턴트로 일하게 되면서 사람들의 인생이 바뀌는 것을 많이 보았다고 했다. 그녀가 말한 원칙, 정리는 단 한번만 하면 된다. 그 다음엔 그안에서 꿈꾸는 인생을 살아라 였다. 어떻게 정리가 한번에 된다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녀가 전하는 세세한 정리방법, 마음등을 전수받으면 큰 삶의 기술을 깨치는 것이 될법하다. 노년으로 들어가기 전에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 책을 계기로 조금 더 화끈하게 정리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건에게 다정하게 인사하라는 그녀를 따라서 할수는 없을 것 같기만 서도 말이다.
그리고 어제 끝낸 소설이 "장미의 이름은 장미"라는 은희경의 연작소설이다. 장편소설 위주로 쓰는 작가인데 단편소설이지만, 내용이 조금은 연관되는, 그런 네편의 소설이 들어있었다. 뉴욕이라는 장소여서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이 생각났다. 은희경의 이 소설 속 인물들은 뉴욕이라는 난해하다면 난해한 곳에 오면서 색다른 문화와 정체성의 혼란에 직면한다 . 그녀는 "이곳은 모두에게 열려있는 듯하지만 문이 하도 많아서 좀처럼 안쪽으로 들어갈 수 없는 도시"라고 설명하고 있다. 모두가 조금씩 다른 종류의 이방인으로 살고 있는 도시라고 해야할까. 이런저런 등장인물중에 나같은 인물이 있었다. 현주라는 인물 "현주는 질문을 던져 정면 돌파를 하기보다는 혼자의 짐작으로 그럭저럭 문제를 풀어나가는 쪽이었다" 라든가 말이다. 나지만 나이지않은 순간들도 많다는 것을 뉴욕에 있는 영어를 잘못하는 인물을 내세워 알려주기도 한다. 은희경의 "장미의 이름은 장미"라는 연작소설을 읽음으로 뉴욕이라는 동네는 더욱 알기어려운 미로의 도시가 되어간다.
이렇게 해서 열흘이 못되어 5권의 책을 읽고나니, 폴랫폼의 대단한 기능에 잠시 멍해진다. 앞으로도 이런 독서가 유지되려는지는 알수 없지만, 새해들어 책읽기로 시작하게 된 건 다행이다. 그동안 책을 읽지 않았으므로 부지런히 따라간다면, 밀린 숙제를 하게 될 것 같다. 이제 어떤 디바이스(책 리더기)를 사느냐 하는 문제가 남았지만, 핸드폰으로도 읽기에 문제가 없었기에 화면 크기를 조금 어둡게 해서 계속 사용하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일하다가 15분 쉴 때, 주로 카톡과 뉴스를 체크하는데 보내곤 했는데, 이것을 책읽는데 사용하니 그 15분이 생각보다 꽤 길었다. 크게 제한을 두지 않고, 눈에 띄는 책, 나를 붙잡는 제목들에 열중해보기로 한다. 그러다 보면, 어떤 질서가 생길 것 같다. 아무래도 소설과 에세이에 치중하게 될 것 같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