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달만에 집에 온 아이들

1주일간 먹고 놀기 (1)

by mindy

나도 따로 사는 아이들이 집에 오기를 기다리는 부모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 엄마만큼은 아니다. 아이들이 와주면 좋고, 그렇지 못한대도 조바심내지 않고 기다릴 자신이 있다. 아이들이 오고싶어 하는 마음과, 아이들이 와줬으면 하는 마음과 어떤 것이 클까? 가끔 생각해본다. 그래도 아이들이 온다면 그야말로 없던 힘이 나긴 한다. 무엇을 만들어 먹일지 고민하는것 그 자체가 즐거움이긴 하다. 이번 방문에도 나의 담당은 음식이다. 아이들과 먹은 이야기를 쓰고 이어서 논 이야기를 쓸까 한다. 누구집이나 비슷할 것 같기도 하고, 아닐 것 같기도 하다. 넉달만의 방문이라 기록에 남겨도 좋을 것 같다.


매일 저녁 만찬이 차려진다.

세프는 민디다.

나도 세프가 되다니. 세상 오래 살고 볼일이다.

수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다.

코로나 이후에 집에 오지 못했던 토론토 딸부부가 통크게 1주일 묵고 갔다. 오는 날부터 우리는 메뉴를 의논했다. 내가 할수 있는 것, 집에 재료가 있는 것 등으로 한정적이지만, 폭넓게 메뉴를 생각했다. 애들이 오기전 토론토에 가서 엄마 만나고 장보고 왔다. 엄마는 내가 하룻밤 자고 가길 원하는 눈치셨지만, 생선, 고기등 여러 음식이 차에 있고, 아직은 코로나 방문 자제로 눈치가 뵈는 때라 담에 와서 엄마랑 놀다갈께요, 하고 아쉽게 돌아왔다. 애들이 온다고 해서 음식준비할 생각에 엄마집에 머물지 못했던 것같다. (말하자면, 엄마보다 자식이 먼저이다.)


애들이 기르는 두마리 토끼와 함께 도착했다. 재택근무를 하면 되고, 마침내 온타리오 코로나 확진자수가 조금씩 줄어들어 소규모 단위로(10명 미만) 모이는 것을 허락했다. 아직 최소한의 여행을 권고하곤 있긴 하지만. 매번 시간이 없어서 길게는 이틀 정도 묵는 게 최대한이었는데, 코로나로 인해서 시간은 엄청 많은데 움직일 수 없어서 답답해했었다. 킹스턴 시댁(이라 하니 웬지 어색)에서 1주일 보내고, 다시 토끼를 데리고 5시간 운전해서 우리집에 도착한 것이 지난주 토요일이었다. 시댁에 처음 갔을 때는 조금 더 염려가 되어서 가족간 식사할 때도 떨어져 앉고, 서로 안아주지도 못했었다고 한다. 떠나올 때 쯤 10명 이내 모일 수 있다고 해서, 마침내 서로 안아주고 마음놓고 음식도 먹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바탕 웃었다. 딸은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를 지칭할때 이름을 부른다. 그것이 한국 시댁과 가장 큰 차이일 것같다. 우리도 그들을 부를때, 그들의 이름을 부른다. 물론 사돈들도 우리 이름을 부를 것이다. 하나만 더 사위도 내 이름을 부른다. 부를 경우가 많지 않지만.


딸부부가 키우는 토끼 부부. 회색이 남편, 왼쪽이 아내. 오랜 여행에 별로 해피한 얼굴이 아니다


2월 가족의 날에 마지막 왔었으니 넉달이 지났다.


내 음식의 방향은 복잡하지 않고, 재료의 맛을 최대한 살리는 그런쪽이다. 말하자면, 실력이 별 필요없는 음식들인데, 아이들이 좋아해주면, 되니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


첫날에 내가 준비한 것은 육개장과 잡채였다. 독일계 아빠와 영국계 엄마에게서 태어난 사위는 한국음식을 엄청 잘 먹는다. 그가 잡채를 좋아하니, 그 음식은 꼭 끼어넣어야 한다. 그리고 사이드로 오이무침과 무말랭이 무침을 했다. 무말랭이 무침은 물에 어느 정도 불리냐가 관건인 것 같은데, 이번 무침은 70점쯤 된다. 다시 재정비(make over)해서 내놓기로 한다. 때깔도 그리 곱지 못하다.


그 다음날 저녁은 동네에 새로 생긴 타이 레스토랑에서 배달시켜 먹기로 했다. 교회갔다 오는날, 음식만들 시간이 빠듯한 날을 정해 식당음식을 주일 저녁 메뉴에 넣었다. 동네에 새로 생긴 타이음식점은 테이크아웃만 된다. 벌써 세번째 시켜먹는 중이다.(두번은 막내가 쐈다. 막내는 엄마 음식보다 타이 음식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이웃동네 아줌마도 그집 음식이 맛있다며, 새로운 음식점이 생겨서 다행이라 말한다. 한국음식보다는 덜하지만, 우리 입맛에 맞는 음식이 더러 있다. 팟 타이가 그중 하나이다. 이집 음식은 볶음밥이 괜찮았다. 새우, 파인애플 볶음밥. 그리고 매콤한 국물음식도 맛있게 먹었다.


그 다음날은 만두를 먹기로 했다. 만두속은 미리 만들어 놓았다. 돼지고기 만두속과, 김치만두속을 냉동실에서 꺼냈다. 얼음이 녹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척하면, 척인 요리사는 아닌 것을 이런 걸 보면서 느낀다. 할수없이 전자렌즈에서 녹힌다.


그날 아이들은 늦게까지 식탁의자에 앉아서 일을 했다. 딸은 대학원을 사위는 대학을 다니고 있다. 모두 1년 더 공부해야 한다. 사위는 고맙게도 여름잡을 잡았는데, 그 잡이 내년 대학을 졸업하고도 계속되는 꽤 괜찮은 회사라고 한다. 코로나로 인해서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딸은 대학교수를 도와주는 파트타임잡을 잡았다. 교수가 코로나 관련 난민에 대한 글을 쓰는데, 함께 공저자로 이름을 넣기로 했다고 한다. 저널이라 하니, 저에게 도움을 될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침이면 간단히 식사를 하고(주로 사위가 준비한다), 엉덩이가 무겁게 앉아서 일들을 한다. 사위는 가끔씩 전화도 하고, 화상통화도 하고 그러는가 싶다. 둘째는 이번 방문에서 이모와 우리도 도와주고 갔다. 우선 이모는 현재 65세가 다가오면서 노인연금(Old age Security, OAS)과 소득보장 보조금(Guaranteed Income Supplement, GIS)을 신청중인데, 걸림돌이 생긴것이다. 캐나다에 입국한 증빙서류가 있어야 하는데, 벌써 30여전의 일이라 언니는 시민권을 받으면서 영주권 서류를 없애버렸다.(혹 이 글을 읽는 캐나다 이민자가 있다면, 모든 서류를 꼭 보관하시길 부탁드린다) 정부에서 온 서류를 들고 언니가 방문왔다. 둘째는 법과 2년을 끝내고 마지막 1년을 남겨둬서, 이런 일에 적격이기도 하지만, 굳이 법 공부를 하지 않았어도 하자면 할 수 있는 일일 수도 있다. 언니가 가져온 서류를 보고 전화를 했는데, 필요한 서류를 신청하라고 해서 정부사이트로 들어가보니, 공문서(영주권 사본이든지, 그 비슷한 무엇이든지)를 하나 만들어주는데 6개월이 걸린다는 것이다. 연금 관련 정부편지에서는 1달안에 필요한 서류를 보내라고 나와있고. 둘째는 관련기관에 전화해서, 올 10월부터는 이모가 받는 장애연금이 끊기고, 노인연금으로 가야하는데,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면 곤란하다고 다른 방법이 없느냐고 물어봤다.


어쨋든 결론은 우선 신청서를 다 작성하고, 모든 증빙서류를 제출해서 보내고, 그 사정을 관련자에게 보내놓겠으니, 15일후에 전화해서 물어보라는 대답을 받았다.


둘째는 이민, 난민 관련해서 관심이 있어했으나 그간 그쪽 분야에서 일해본 결과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 시스템이라 일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어쨋든 나도 캐나다 정부, 한국 정부등 나래 한국에 갈때 뜨거운 맛을 봐서, 우리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정부의 느린 대응에 울분을 토했다.


둘째는 이모의 법적인 헬퍼가 되주겠다고 했고, 그 서류까지 보냈다. 그것이 둘째가 이모를 도와준 내용이다. 또 우리는 어떤 일이 있었나? 편의점을 운영해온지 20여년만에 잡지를 대주던 회사가 부도에 즉면하게 되었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끝까지 그 잡지회사에서 공급받고 있었고, 다른 잡지사에 운영권을 넘기니 반품을 모두 해주면 대금을 보내주겠노라 하여서 마지막 정리를 해서 모두 반품했다. 그러고 기다리기를 몇개월, 거래하던 잡지회사에서 부도신청을 했고, 지금 법적 절차중이라는 소식이다. 대금을 받지못한 사람들은 개별적으로 "신탁회사"에 연락하라는 내용이 온주 실업인협회 잡지에 실렸다. 실협은 도와줄 수 없으니 모두 개별적으로 알아서 대금을 받아내라는 말이었다. 우리는 꽤 많이 걸려있는데, 한방에 당하는 중이다. 둘째가 신탁회사에 편지를 보냈고, 9월쯤에 조정이 끝나면, 개별적으로 대금반환을 하겠다는 답장을 받았다. 이제 그 돈은 받게 될지, 못받게 될지, 잘 모르게 됐지만, 어쨋든 둘째가 "법적인 용어"를 섞어 담당자에게 편지를 보냈으니, 잘 해결되길 바랄수밖에.


둘째는 자신의 일을 하면서, 이런 일들을 찡그리지 않고 도와줬다. 외국살이에서 아이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지 않고 있는 것을 나름 자랑스럽게 생각해왔는데, 마침 아이가 있을때 이런 일이 일어났고, 그애가 도와주니, 많은 힘이 된다.


월요일 점심은 된장국을 끓여서 줬다. 황태와 조개를 넣고 끓였는데, 딸은 자신이 한번 시도했는데, 인터넷에서하란대로 했는데 국물이 다 없어지고, 별맛이 없었다며 맛있게 먹는다. 사실 된장찌개는 내게도 어려운 음식이었는데, 해산물을 넣으면서 대충 맛을 잡기 시작한 것 같다. 이제는 먹을만한 된장찌개가 되어간다.


만두이야기를 마저 하자. 딸과 사위, 그리고 막내가 모여서 만두를 빗었다. 음식에 대해 개인적 취향이 강한 막내가 김치만두속이 영, 아니올씨다로 보였는지, 몇번이나 고개를 젓는다. 그래서 파김치를 씻어서 넣었다고 했더니, 김치맛이 나지않을 것 같다는 거다. 다시 속을 만들까? 했더니 김치를 이곳에다 더 넣으면 어떻겠느냐의 아이들의 조언에, 김치를 꽉 쥐여짜내고, 종종 썰어서 더 넣었다. 이번 김치는 고춧가루가 덜 들어갔고, 소금에 너무 절여져서 약간 쓴맛이 난다. 김치만두가 맛있을까 걱정이 된다.


나까지 포함, 네명이 만드니 만두빗기가 쉽게 끝이 났다. 찜과 군만두를 하기로 한다. 만두는 성공이었다. 돼지고기 만두와 김치만두 모두 맛있었다. 초간장을 찍어서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 다음날 저녁에는 코스트코에서 사온 연어회를 실컷 먹었다. 연어 스시를 만들고, 사시미로 썰어서.. 스시초밥 도전도 사실 처음 해봤다. 그날 때마침 중국의 시장에서 연어를 썰던 도마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검출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더랬다. 노르웨이 연어 수입금지령을 내린다는둥, 중국이 분주해지는 와중이라 연어를 먹는다는게 조금 꺼려지기는 했지만, 수많은 "네티즌 수사대"들이 중국의 꼼수를 비웃고 있었다. 네티즌 수사대의 말이 맞을 때가 많다. 우리 아이들도, 음식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있다는 가설은 믿기 어렵다고 해서, 용감하게 연어사냥을 끝냈다. 이 음식도 만두처럼 함께 모여 밥을 둥글리고, 스시를 올리며 같이 만들수 있어서 좋았다. 모두 배불리 먹고도 꽤 남아, 그 다음날 점심, 회덮밥으로 또 한끼를 해결했다. 아참 저녁에 연어회로만 서운하여 우동을 끓여냈다. 이것도 인기가 있었다. 이날 저녁부터 설겆이는 둘째부부가 담당했다. 아이들이 집에 오는날, 비로소 식기세척기가 제 몫을 한다. 우리는 일년가야 서너번 쓸까말까 하는데.. 그릇을 어느 찬장에 보관할지를 묻는 애들에게 싱크대 옆에 엎어놓으면 나중에 내가 하겠다고 했더니, 사위 왈 지금 가르쳐주면, 나중에라도 우리가 할 수 있다고 말해, 한방맞은 느낌이 들었다. 그릇 종류가 여러가지라(한세트가 가지런하게 있어야 하는데) 나도 이곳저곳에 넣을 때가 많지만, 사위의 말이 백번 맞아서 알려주었다. 내가 잘하지 못했던 일인 것 같다. 딸은 "공주"처럼 자란게 아니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그건 자랑이 아니란 말이지. 반성한다.


수요일 저녁의 삼겹살 파티는 또 훌륭했다. 그동안 데크에 테이블과 의자를 내놓지 않았었는데, 아이들이 오면서 밖에 펼쳐놨더니 그럴싸했다. 구이용 팬에 삼겹살을 올려놓고 콩나물, 김치, 새송이버섯, 그리고 마늘쫑과 마늘을 구웠다. 콩나물과 김치를 구워 삼겹살과 같이 먹는 것을 어쩌면 브런치에서 아니면 동영상에서 봤는데 성공이었다.(알려준 이름모르는 그분, 감사합니다) 눈과 귀를 열어놓으면 음식실력이 일취월장한다. 예전부터 파무침은 내가 꽤 잘 만든다. 그리고 미나리도 무쳐놓았다. 혹시나 하고 구이용으로 소고기 스테이크 부위를 잘라놓아서 소고기도 구워먹었다.


그날은 세 아이가 함께 카누를 탔다. 그래서 특별히 이날 저녁, 삼겹살을 메뉴에 배치했다.(카누 이야기는 따로 뺐다 다음편으로)


둘째부부를 보니, 참으로 깨가 쏟아진다. 그야말로 예쁘게 새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마음이 아픈 동생을 배려한다. 언니부부가 야외활동에 적극적이지 않은 동생을 데리고 카누여행을 하고왔다. 처음에는 "지루"하다고 했다는데. 나중에 노를 젓기 시작하면서, 힘을 내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둘째에게 막내일을 의논한다. 아직 갈길이 멀지만, 예전보다는 훨 나아졌다는 데 희망을 갖고 서로 돕기로 한다.


점심에는 남은 소고기를 잘게 잘라 볶고, 나물을 준비해서 비빔밥을 해먹었다. 비빔밥은 거의 언제나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계란 하나 부쳐서 올려놓으면, 고소한 맛이 온몸을 자극한다. 목요일 저녁에는 "나의 최애 음식" 떡볶이를 먹기로 한다. Everybody loves Raymond의 작가중 한명인 필립 로젠탈이 한국을 방문한 영상을 아이들의 추천으로 함께 시청했다. 그는 60년대생의 얼굴에서 나올 수 없는 풍부한 표정으로 한국의 음식과 문화를 소개했다. 특히 신당동 즉석떡볶이집에 방문한 그를 보니, 한국갔을 때 왜 그곳을 가지 않았을까 후회가 됐다. 사실 떡볶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나 혼자라서, 대대적으로 해먹지는 않는데, 아이들이 왔으니 이 음식을 도전해보기로 한다. 흠 결론은... 그저 그랬던 것 같다. 꿈꾸던 만큼 맛있는 음식으로 탄생하지 않았다. 즉석떡볶이 도전은 처음이라, 양념장과 재료들이 잘 어우러지지 못했던 것같다. 양념장의 비율이 안맞았었을 수도 있고. 사실 미리 생각해뒀던 순두부찌개를 했으면 실패는 면할 수 있었을텐데. 조금 아쉽다.


즉석떡볶이 도전, 실패하다


필립 로젠탈은 단순한 먹방이 아니라, 출연자의 "소울푸드"까지 함께 먹으며, 문화와 역사속으로 깊이 들어간다. 레이몬드에 나오는 피터 할아버지 에피소드는 아마도 필립 아버지가 모델인듯싶다. 필립 아버지가 한국참전 용사인 것을 그 아버지와의 영상통화를 통해 알게된다. 하나 덧붙이자면, 나도 "레이몬드.." 팬이었다. 영어가 짧을때(지금도 그렇지만) 그 드라마를 보고, 주로 웃고, 가끔은 찡한 감동이 있었다. 잘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은 시트콤이었던 것 같다.


이날 이모가 왔던 날이라 기억난다. 점심으로 냉면을 해먹었다. 고기 고명을 만들어 얹어서. 8인분을 했는데 5명이 다 먹었다. 조금 했으면 어쩔뻔 했노. 나는 봉투에 쓰인 대로 믿는 편이라, 딱 5인분만 할뻔했다. 인스턴트 냉면이었지만, 모두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왔다. 금요일 저녁엔 딸부부가 친구집으로 원정을 갔다. 그래서 그날은 아마도 조용히 보냈던 것 같은데.. 남은 음식먹고. 뭘 먹었는지도 생각나지 않는다. 다음날 토요일 점심 넘어 도착한 아이들과 닭칼국수를 끓여먹었다. 바지락, 멸치 칼국수는 자주 해주었지만, 닭칼국수는 처음이었던 것같다. 둘째가 특별히 수제비, 칼국수를 좋아하는데 사위도 맛있게 먹었다. 그날 저녁 예전에 만들어놓은 돈까스를 튀겨주었다. 버터와 밀가루, 식초, 설탕, 케찹등으로 그레이비도 만들었다. 이것 역시 처음 해본다. 카누여행때 먹으라고 싸주었던 김밥남은 것도 같이 튀겨 맛있게 먹었지만 나중에 돈까스를 만들게 되면, 조금 더 얇게 저며서, 많이 두드려서 잘 익을 수 있게 해야겠다. 두번 튀겼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는 핑크색이었다. 아스파라가스를 데치고, 한국식 감자, 사과 샐러드를 만들었더니 그것도 아주 좋아한다.


아이들이 1주일쯤 머물다 가니, 하고싶은 음식들을 마음껏 해먹일 수 있었다. 그동안은 또 꽤 제한이 많기도 했다. 우선 첫째와 둘째가 비건이었을 때는 상에 고기, 생선 음식을 올리면 안되니, 만들수 있는 반찬이 몇가지 되지 않았다. 막내가 그 와중에 많은 피해를 봤다. 사위가 오면 닭을 잡아준다는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나도 둘째의 남자친구(현재 남편)가 왔을때 삼계탕을 끓여주었는데, 그때 둘째의 표정 때문에 내가 상처를 받기도 했었다. 그랬던 둘째가 이제는 비건에서 "해방"되어서 무엇이나 잘먹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큰애는 아직도 비건을 고집하고 있어서 그애가 오면 식탁의 모양은 완전히 달라진다. 올해는 바이러스 때문에 집에 오지 못하게 되었다.


음식을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주눅들었던 때도 많았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있었기에 조금씩 발전하게 된 것 같다. 나의 강점을 말한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 이랄까? 말하자면 즉석떡볶이 같이. 누군들 실패하고 싶을까. 그 마음을 알아준다면, 때때로 맛없는 음식을 먹어주는 것이 그 상을 차린 사람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그러다 보면, 절반의 성공을 하게 되고, 찬사를 받게 되기도 한다. 이번 일주일간 음식을 스스로 평가하자면 8.5점쯤 된다. 엄청 높은 점수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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