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페이슬리는 강가 마을이다. 카누 카약 등 물에서 노는 것들이 발달했다면 발달했다. 그러나 이 마을이 그리 넓게 알려지지 못하는 나름의 까닭을 며칠 전 깨달았다.
아이들이 집에 오기 전, 카누를 타자고 함께 작당들을 했다. 자리만 차지했던 카누가 오랜만에 먼지를 벗는 날이다. 날씨도 괜찮았던 지난주 수요일 세 명이서 카누를 탔다. 페이슬리에서 출발, 총 11.5km에 달하는 강을 노를 저어 갔고, 도착지로 가서 남편이 데려왔다. 강에서 타야 하는 카누는 이게 문제다. 키를 돌려 돌아오는 게 안된다. 모두들 어떻게 카누를 즐기는지. 카누 고수라면 강을 거슬러 노를 저어갔다가 다시 떠내려오는 방법을 쓴다고 한다. 강을 거슬러 노를 저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마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두대의 차를 가지고 목적지에 한대를 주차해 놓고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와서 카누잉을 하는 방식으로 해야 하는 듯싶다. 택시를 부르던지,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면 그 수밖에 없다.
다음날, 이번엔 우리가 타자, 하는 남편의 말에 귀가 번쩍한다. 애들이 발동을 걸어서 나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니 말이다. 카누를 들고 배를 탈 수 있는 곳까지 떠메고 가야 한다. 가게를 봐줘야 하고, 또 카누를 들어 날라야 하고, 우리를 픽업해야 하니, 아이들이 있기에 가능하다. 카누를 탈 수 있는 뗏목으로 가니, 갑자기 개 짖는 소리가 우렁차다. 세 마리의 덩치 큰 개들이 주인 부부와 물에서 놀고 있다가 컹컹거리며 곁으로 온다. 사위가 살살 달래니, 꼬리를 흔들기는 하지만, 세 마리가 반항(?)하면 주인들이 어떻게 그들을 제압할지 모르겠다. 나는 개에 물렸던 기억이 있어서, 개를 무서워한다.
개가 다가올까 봐 걱정하면서 배에 올랐고, 물살에 따라 빠르게 개들의 사정권에서 벗어나자마자, 배가 출렁하면서 옆으로 비틀했다. 수심이 낮아지고, 돌이 이곳저곳에 포진한, 썩 좋지 않은 구간을 지나면서, 사진 가방을 꽉 잡는다.
그 고비를 지나 조금씩 나아가니, 새벽 산책 때마다 보는 그 강의 안쪽에 있다는 실감이 난다. 뿌리가 드러난 나무들이 마지막 생명을 유지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쪽은 비가 올 때마다 깎여 내리는지, 모래산이 되어 새들의 아파트가 지어져 있다. 강폭이 넓어지고, 잔잔해지면서 비로소 마음이 가라앉는다.
강에는 안개처럼 흩날리면서 화분이 떨어져 강가 쪽으로 밀려내려 간다. "두둥실 두리둥실 배 떠나간다. 이 배는 달맞으러 강릉 가는 배, 어기어 기어라차, 노를 저어라" 처음엔 흥얼거리다 목청높여 불러본다. 이날만큼은 데이트로 생각하기로 했다. 군데군데 RV들이 주차되어 있고, 캠핑사이트가 눈에 띄었다. 노년에 RV에서 살면서 방문자들에게 카누 놀이를 시켜주면서 사는 것은 어떨까, 대화를 나눠본다. 우리들의 이야기도 나무에서 흩날려 떨어지는 꽃가루, 분가루처럼 강으로 떨어져 내린다. 여름 한철 사는 것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물을 좋아하지만, 물에서 노는 것에는 젬병인 내가 꿈꿀만한 노년의 삶은 아니다.
벌써 이 동네로 이사온지 20여 년이 넘어서 이제야 배 타고 노 저어 강물을 따라 흘러내려가 봤으니, 무엇이든 밖에서 바라보다가 결국 그걸 해보기까지 참으로 긴 세월이 흐른다. 이사 오고 나서 이 동네가 카누마을인 것을 알게 되어, 어린 딸과 함께 잠시 카누를 타본 적은 있지만, 그 후로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 시도해보지 않았다. 이번에 남편과 단둘이 타보니, 세월 낚는 사람처럼 느린 마음이 되었다가 물살이 급하거나, 돌이 솟아있거나 하면, 긴장되었다.
페이슬리를 따라 흐르는 서긴 강은 물이 탁류에 가깝다. 탁한 푸른빛이다. 쉬지 않고 흐르기 때문에 수질이 나쁠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침전물이나, 주변에서 흘러들어오는 진흙 같은 것들이 물의 색을 더럽히는 것 같다. 수심이 얕은 곳에 가면 물 바닥이 보이면서 꽤 깨끗해 보이기도 한다. 수심이 깊을수록 색은 진해진다. 흑탕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수영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으니, 이것도 물과 이 마을의 운명이라 할 수 있겠다. 그다지 끄는 매력이 없으니, 이 동네는 20여 년의 세월이 지나도록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들고나며, 이 동네의 조용함이 유지되고 있으니, 이 또한 나쁘지 않다. 두 손을 모으고 물을 떠보면, 깨끗하고 투명한 물인데 안타깝다. 물은 물색이 생명이지 않은가 말이다.
강가 풍경, 모래숲 아래 점점이 박힌 까만 점들은 새들이 집이다. 이런 새집이 곳곳에 있다.
물살의 모양이 달라지는 곳이 있다. 물이 역류하듯 흐르는 곳은 반드시 물살을 가로막는 큰 돌이 있다. 물밑에 돌이 있어 안보일지라도 물의 흐름이 달라지면 그 부분을 피해서 조심히 배를 저어야 한다. 돌에 부딪치거나 하면, 배가 넘어질 위험도 있다. 이런 모양들은 삶에 빗대어 말할만하다. 삶 처처에 도사리고 있는 돌덩이들을 잘 피하면서, 속도를 줄이고 관찰하면 잘 피해나갈 수 있지 않은가? 잔잔한 곳은 조용히 갈 수 있지만, 풍랑에 엎어지면 헤어나기 어려운 수심이 깊은 곳이다. 돌이 많이 있고, 새들이 앉아있는 곳은 불편하긴 하지만, 좌초될 위험은 없는 안전한 곳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어떨땐 배에서 내려, 그 배를 밀고 끌고 해야 할 때도 있다. 삶은 이런저런 강줄기를 따라 흐르는 끊임없는 움직임이랄 수 있으니.
이런 돌이 곳곳에 있었다
우리가 카누로 오르기 전, 사위는 세세한 부분에 대한 조언을 해줬다. 어디쯤 가면 돌이 있으니 속도를 늦추고 잘 피해가야 한다기에 그 말에 잘 따랐다. 그래서 배가 뒤집히는 일없이 무사히 안전항해(?)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날 두 딸들의 말은 흘려들어서 대참사가 발생했다. 바로 선크림을 바르라는 그들의 외침을 말이다. 막판에 선크림을 갖고 타긴 했으나, "골고루"라는 말을 흘려들어서, 반바지를 입었던 남편의 다리는 거의 화상 수준으로 탔고, 나도 물에 빠져도 될만한 옷을 안에 입고 원피스를 입었었는데, 무릎 근방을 새빨갛게 익혀 돌아왔다.
30도 땡볕에서 3시간 노 젓다 돌아오니, 이런 꼴이 되었다. 남편의 다리^^
가는 길에 작은 섬에 들려 싸간 음료수와 초콜릿으로 간식타임을 가졌다. 관광자의 입장으로 본다면, 그다지 특출 날 것 없는 풍경이다. 그러나 사람 없는 곳에서 유유히 즐기기에는 맞춤하지 않을까 싶다.
잠시 쉬면서 스낵타임을 가졌던 작은 섬
돌에 부딪치면서는 삶에서 일어나게 되는 크고 작은 암초들을 떠올리게 했고, 잔잔한 곳에서는 마음 놓고 풍경 감상에 빠져도 될 만큼 안정적인 마음이 들었다. 11.5km를 3시간 만에 왔다. 우리는 엄청 슬렁슬렁 노를 저었다. 앞에 앉았던 나는 가끔은 맥 놓고 앉아있기도 하고. 왼쪽 오른쪽 말로 키질을 했다. 엎어질 뻔했던 적이 한번, 뒤에서 밀었던 두어 번을 빼고는 큰 문제가 없었다. 수심이 얕은 곳이 더 요란한 물소리를 내고, 물살이 빨라진다. 마치 속이 깊지 않은 자가 소리가 요란하고, 무언가 있는 듯이 주변을 불안하게 하듯이. 반면, 수심이 깊은 곳은 물이 잔잔하여, 큰 동요가 없었다.
만약 배가 뒤집히면, 라이프 재킷을 입었으니 되도록이면 하늘을 보고 누워서 팔을 옆으로 벌리라는 남편의 조언이다. 헤엄치려고 허우적대다가 물을 먹으면 안 된다고. 두 팔을 벌리고 누우면 물에 떠있게 되니, 큰 문제가 없을 것이란다. 그렇게 한가하게 누워있게 되려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전화서비스가 안된다며, 만날 시간을 정하자 하였다. 설마 했는데, 강물 위에서는 전화가 터지지 않는다. 스마트폰이 작동하지 않는 곳이라니. 오지가 따로 없다. 아이들의 선경험이 우리들에게 많은 도움이 됐다.
카테지도 보였다. 그 집 전용 수상 뗏목인 듯.
우리가 도착한 곳으로 사위와 딸이 차를 가지고 데리러 왔다. 카누를 빌려주기도 하고 픽업도 하는 카누 샵이 하나씩 문을 닫아 그야말로 올해는 한 군데도 남지 않았다. 마지막 카누 샵이 시장에 매물로 나와있다. 카누 마을로 유명했던 페이슬리도 차차 그 운명이 다해가는 것인지. 카누를 싣고 다니는 사람들이 띄엄띄엄 있고, 동네 사람들은 꽤 많이 자신의 보트들을 갖고 있으니, 이 사업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나 보다. 더구나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차가 두대가 오지 않으면 즐기기 쉽지 않으니, 카누 레저가 성행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
페이슬리에 하나남은 카누 샵, 매물로 나와있다.
우리 동네를 상징하는 두 개 페이슬리와 카누... paisley 문양이 칠해진, 카누.
둘째와 사위는 평일에는 식탁에 앉아서 일하고, 저녁에는 함께 영화를 보면서 놀았다. 모두가 좋아하는 영화를 고르는 일이 그리 쉽지 않다.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막내의 취향을 따라줬는데, 두 영화 모두 줄거리를 쓸 만큼 기억나지 않는다. 마지막에 보았던 영화는 "애완동물 공동묘지(pet sematary, 공포의 묘지로 번역되었다)"라는 영화였다. 눈치 있는 독자들은 알겠지만, 원래 cemetery여야 하는데, 영화 이름이 오자로 만들어졌다. 영화 속 아이들이 만든 사인이 영화 제목이 되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괴기스럽고, 끝까지 그렇게 끝난다. 스토리는 빈약하지만, 마지막까지 시청자를 잡아매는 흡입력은 있다. 왜 이런 영화를 좋아하는지, 막내는 끝까지 보지 않고 퇴장해서, 남은 우리들만 벌을 섰다. 스티븐 킹의 소설로 만든 영화라 한다. 한 번은 막내가 외출하기 전 옷을 입고 어떠냐고 물어보는데, 나는 영 아니어서 좋다고 말해줄 수가 없었다. 미안하게도 나중에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나가긴 했다. 이와 같이 영화 보는 취미 등 아이들은 저들만의 취향을 가지고 있다. 부모는 끝까지 이해하지 못할 그런 취향들을. 서로 다름을 매번 확인한다.
마지막 날 저녁에는 넷플릭스에서 하는 한국 드라마를 같이 봤다. "사이코지만 괜찮아" 영어 제목은 It's okay to Not Be Okay로 직역하면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정도일까? 이 드라마는 함께 시청하지 않은 막내를 빼고는 모두 좋아했다. 사위는 김수현의 친구 "재수"가 마음에 든다고 한다. 닭튀김 가게를 하는 그는 의리 넘치는 허당끼 있는 주인공 지킴이쯤 되는 것 같다. 현실에 있을 법한, 그러나 있기 힘든, 빛나는 조연 역할을 잘 해내길 바란다. 서예지는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있었는데, 배우 수애의 목소리톤을 닮은 것 같다. 엄청 이쁘게 생겼고,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독을 품은 여자,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그 독을 쏘아대는 그녀를 정화시킬 사람은 착하면서 다부진 남자 주인공밖에 없겠지.
이렇게 아이들과의 1주일이 후딱 지나갔다. 매일 밤 축제를 벌이듯이 함께 음식을 나눴다. 맛있다는 그 말보다 더 듣기 좋은 말은 없을 것 같다. 상이 다 차려질 즈음이면, 내 마음이 조금 뛰었다. "오늘도 무사히..."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지. 아, 돌아가는 날은 마침 아버지 날이었다. 그날은 돼지고기 김치찌개와 미역국을 끓였다. 아이들이 먹고 싶다던 음식 중 하나였기에 이 둘을 한꺼번에 배치했다. 아이들과 남편이 함께 점심을 먹고, 나는 가게를 봤다. 음식을 먹은 후 가게 뒤쪽 오피스에서 아이들이 사 온 케이크로 아버지 날 갈음을 했다. 카누 탈 때 필요한, water shoes와 수영복이 그 애들이 아빠를 위해 준비한 선물. 카누 배를 밀어야 할 때 워터 슈즈는 꼭 필요했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에게 없는 것 그런 것들을 어떻게 잘 골라내, 선물을 해준다. 그 마음이 언제나 고맙다. 한 가지 계획했었는데 하지 못한 일이 있다면 함께 고스톱 치는 일. 내가 그 애들 돈을 다 딸 수 있었는데. 아 그리고 이번 아이들의 방문이 더욱 의미 있었던 것은 모두가 일하면서, 휴가를 즐겼다는 점이었다. 원래 휴가는 돈 쓰면서 해야 하는데, 돈 벌면서 함께 여행한 알짜배기 기분, 그건 나만 느낀 것일까?
코로나 시즌에 이 정도의 호사를 누린 것만도 감사하다. 10명 이내에서 만남을 허용한다고 해서, 이렇게 조금씩 만날 사람 만나고 있다. 아직 잦아들지는 않았지만, 위생관념을 철저히 하면서 이렇게 하루하루 건강한 삶을 영위하다 보면, 조금 더 나은 내일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