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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y Jan 14. 2021

깡패처럼 발목을 부여잡는 그것들

제니퍼 이건 "깡패단의 방문" 리뷰

"형은 뭐가 그렇게 두려워?"

오래전에 들었던 이 말이 가끔 귓속을 쟁쟁거린다. 나는 그 시절 무엇을 두려워했을까?

서해의 작은 섬으로 M.T.를 떠났었다. 남녀학생이 모여 섬으로 떠났으니, 표면적으로 나는 남학생들을 두려워했던 것 같다. 그래서 잘때가 되면 민박집 문고리를 단단히 잠갔다. 그런 내 모양을 물끄러미 보던 여자 후배가 내 등뒤에 꽂은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남학생이라기 보다는 내가 주워들은,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남자들의 늑대본능"에 대한 두려움이었던 것 같다. 


내게 일갈했던 여자후배는, 모양만 후배지... 사실상 나보다 나이가 많고 조숙해서 어려운 후배였다. 그녀의 대학입학전 2년간의 공백이 그 당시로는 꽤 높은 훈장을 그녀에게 부여했다. 세상을 다 아는 것 같은 그녀의 눈매 앞에 "천진하고 어리숙한" 나는 선배로서 어떻게 폼을 잡아야 할지 매번 허둥대곤 했다.


여자든 남자든 선배에게 불렀던 "형"이란 호칭은 사회와 캠퍼스를 구분짓는 신분나눔의 상징이기도 했고, 우리들은 그 방식을 나름대로 즐기기도 했다. 한편 나이많은 여자후배가, 선배같지 않은 같잖은 여자선배를 "형"이라 부르며 조롱하기에도 좋은 도구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때 그녀는 대담했고, 그녀의 방식으로 마음에 품은 남자에게 사랑을 고백해서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사랑고백이 너무 심해, 밤새 바닷가를 헤매며 그녀를 찾아야 했었던 우리들과  물에 빠진 그녀를 구해냈던 기억까지. 두려움을 모르던 여자후배는 거의 온몸을 던져 사랑을 쟁취했었다. 물론 술의 힘이 컸었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아찔했던 기억이다. 


"사랑이 아니면 죽음을" 식으로 행동했던 그 후배는 강렬함과 무모함의 상징처럼 내게 남아있다. 이런 젊은날의 방황과 도전이 남은 삶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잘 그려낸 책이 있다. 그 책을 살펴보려고 한다.



"깡패단의 방문"이다.


내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조금 더 읊어보자. 내게 "깡패"는 "도덕과 윤리"였다. 여자후배가 비아냥거린 것처럼 "하지말라는 것을 하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그것"이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비난을 받는것, 무언가 심하게 잘못되는 것, 제자리로 돌릴 수 없게 될 어떤 것들.. 우리가 흔히 도덕 혹은 법이라고 부르는 것. 그것이 내 평생을 지배해왔던 것 같다. 이렇게 재미없는 사람이 된 이유도, 새로운 세상으로 조금 발을 뻗어볼수 있었는데, 이쯤에서 가라앉은 것도, 혹은 이 만큼이나마 사는 것도 "도덕"의 힘이었다. 곁에 둬도 괜찮은 깡패가 있다면, 아마도 "도덕과 윤리"라고 독자들은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을 어겼을 경우, 그 후유증이 오래간다. 때문에 내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람이라고 자랑하려고 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자괴감을 참기 힘들었던 괴로왔던 사건들도 있었다. 그건 생각해보면, 타인이 주입해준 기준을 내가 어겼기 때문이었다. 


제니퍼 이건이 쓴 "깡패단의 방문"에서 깡패는 "시간"을 의미한다. 누구에게나 "깡패"로 밀려오는 그것을 그녀는 소설을 통해 보여줬다. 이러저리 얽힌 관계들에게서, 1970년대에서 2020년대까지 어우르는 시간의 흐름속에서.. 인물들의 변화에서 시간이 어떻게 관계를 변화시키고, 사람들을 맥을 못추게 하는지, 그야말로 전지적인 시점에서 인생의 파노라마를 보여줬다. 또한번 느끼는 것이지만, 소설가들은 대단하다. 인간들의 삶위에 놓여있는 것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모든 사람들위에 군림하던 돈많고, 인간성이 멋있는 프로듀서도, 병들어 비참히 죽어가고, 총명하고 사려깊었던 어린 소년은 자살을 하기도 하고. 세상을 떠돌면서 창녀짓까지 했던 여자는 현실의 생활로 돌아오고, 뉴욕에서의 성공적인 일상을 회복하지만, 도벽이라는 병에 걸리기도 하고.


소설을 보면, 참으로 수많은 사람들은 수많은 내용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특별히 내가 눈여겨 봤던 것은 미국의 10대들의 행적. 10대와 20대는 가장 많은 경우의 수를 몰고올수 있는 그런때다. 가파른 벼랑에 서있는 그들을 꼼꼼하게 그려냈다. 마약은 일상적이고, 동성애와 가출까지... 미국 젊은이들이 처해있는 첨예한 부분을 볼수 있었다. 


이 시절은 내가 빠져나온 불구멍이기도 하고, 우리 아이들이 발을 담그고 있는 부분이어서, 머리가 쭈빗선다. 부지불식간에, 깡패에게 당하는 것처럼 속절없이 무너질수도 있으리라는 그것이, 우리 아이들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 참으로 난감하다. 우리 아이들은 그런다. 엄마가 알고있는 세계는 얼마나 작은지. 마약은 기본이고, 또다른 수많은 일들이 자신들의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나도 좀 알게 됐다. 굳이 멀리서 찾지않아도 내곁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속에, 혹은 희열속에 망가져가고 있는 것을. 개인사는 도덕적이냐, 아니냐로 구분지어서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복잡다단하며, 그렇게 망가져가다가도 다시 일어서서 세상에서 필요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는 것을.


소설속 인물들은 사실상 심리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베니 살러자르는 완벽주의자로서 세상적으로는 성공한 사람이지만, 수치스러운 어떤 사건들이 그를 때때로 괴롭힌다. 험난한 십대를 빠져나와 뒤늦게 대학교육을 마친 사샤는 도벽이란 치명적인 병이 있다. 가정들은 균열이 있고, 불균형하다. 책의 내용을 훑는 것은 쉽지 않다. 길어질수 있다. 


많은 등장인물중 하나였던 부자 루의 여자친구였던 대학원생 민디.. 20대를 살고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다루는 끝에 그녀의 지난하고 고통스런 30대와 40대에 이르러서 학문적 성과를 거두기까지.. 미래를 슬쩍 보여주기도 한다. 분석적이고 매력적인 외모의 20대의 그녀를 보다가, 화면은 미래의 그녀까지 촤르륵 필름을 돌린다. 미래의 그녀는 현재와 겹치기도 하고, 엇갈리기도 하면서, 독자들은 시간의 흐름에 넋을 잃는다. 


줄거리를 정리하는 데 한계를 느낀다. 방대한 여러 사람의 인생이 들어있다. 장소도 세월도 각각의 독특한 인간성과 환경도 모두, 천차만별이다. 딱히 스토리라고 할수 없기도 하다. 유체이탈장에서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또다른 자신을 내세워 소설을 쓰기도 했다. 연약한 마음의 소유자가 급류에 휘말려 죽게되는 사건.. 살아남은 자들에게 영원히 영향을 끼치게 되는 그런 일들. 동성애자였던 그의 죽음 이후로 헤어지게 되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다시 만나게 되는 과정들... 


현대사회에서 홍보라는 부분이 어떻게 정교하게 운영되고 움직이는지, 수많은 사람을 학살한 장군과 스타였던 한 여자와의 조우를 통해서 기막히게 보여준다. 한편한편이 거대한 장편이 될 것 같은 그런 내용들이 깡패단의 방문에는 빼곡히 차있다. 한 인생을 몇줄로 축약시켜 놓기를 좋아하는 우리들에게 작가는 인간이 갖고있는 복잡미묘한 삶의 내용과 형식을 깊이 바라봐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여주인공이라 말할 수 있는 사샤는 "마약복용, 절도로 인한 끊임없는 체포. 록 뮤지션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성향. 네 명의 상담의, 가족치료, 그룹 치료, 세번의 자살 기도 등 일련의 문제들로 점철된 사춘기를 정신없이 보냈고,"(p311) 그런 과정을 거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도벽은 끊이지 않아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그렇다고 그녀가 성격파탄자로 사람들에게 보이지는 않는다는 사실, 현재의 그녀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운동으로 몸을 단련하고, 자신의 보스에겐 완벽한 비서로서 다정한 커리어우먼일 뿐이라는 것. 사샤가 거쳐온 과정이 이 소설의 장황함을 일단 설명해주는 듯하다. 어쩌면 사샤가 집을 떠나 2년 동안 겪은 인생고는 교수인 그녀의 삼촌 테드가 말한바대로 자신이 20년간 겪은 것보다 더 많은 세상견문을 얻은 것이 된다. 어떤 인간은 테드처럼, 어떤 인간은 사샤처럼 그렇게 삶을 영위한다.


디지털 세상의 소설임을 알것 같은 표현들. 고전과 구별되는 차가운 금속같은 문장들이 돋보인다.


도벽이 발각될뻔한 상황, "사샤의 마음속에서 공포의 현이 팅 하고 퉁겼다"(p21) "자신이 손쓸 수 없는 방식으로 지갑이 불쑥 모습을 드러내는 건 아닐까 두려워지면서 공포감이 폭포수처럼 쏟아져내렸다. 체포, 굴욕, 가난, 죽음."(p23) "거짓말을 뱉고나자 자낙스로 진정시켜놓은 두개골에 좁쌀같은 땅방울이 맺혔다."(p26) 


소설은 음악과 많이 관련되어 있다. 음악에 문외한이 읽기에 좀 부담스럽다. 그런데 잠시 뜻을 생각해봤던 부분. 백비트의 음악... 밑에 각주로 두번째 네번째 박자를 강조하는 록음악의 비트라고 설명되어 있다. 말하자면 낯선 음악이라고 부를 수 있나. 대부분의 전통적 음악이 크게 약하게 중간크게 약하게.. 이렇게 구성되지 않나. 음악시간에 강약중간약을 외치던 교사의 깽깽거리는 목소리가 백비트라는 음악에서 그 의미가 새삼스레 드러난다. 주목을 받지 못했던 둘째, 네번째 박자를 강조하는 것, 현대예술은 고전을 비비트는 것이라는 것, 그 강하고 짧은 교훈이 머리를 스친다.. 소설이 이렇게 여러가지 기법을 시도하는 동안 음악세계에서도 발빠르게 변화하고 있었겠다.


젊은시절의 사랑... 과녘은 쌍방으로 향해야 하는데, 일방적으로 서로 다른 사람을 향하고 있다. A는 B를 B는 C를 C는 또 그 누구를. 소설속 인물들이 그랬다. 그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희극과 비극이 싹튼다. 미래를 보여줌으로서 우리가 기대했던 결과와는 엉뚱한 곳으로 삶이 흐른다는 것 발견하기도 한다. 


소설의 클라이막스에 해당하는 마지막 장은 베니의 친구 스코티의 회귀무대이다. 음악적 천재였던 스코티는 아내와의 이혼이후 노숙자가 된다. 그의 친구였던 베니는 음악을 발굴해내는 천재적인 프로듀서.. 스코티의 마지막 공연을 기획한다. 노숙자가 그렇듯이 이빨이 다 빠지고, 세상적으로 재기불가능한 그를 무대에 세우는 것을 베니는 그동안 자신이 세상에 퍼뜨려왔던 쓰레기 음악들을 치유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삼는다. 대중앞에 나설 수 없는 그가, 여러가지 홍보를 통해, 마지막엔 그의 딸일수도 있는 잊어졌던 여인의 딸을 통해 무대에 서게 된다. 공짜공연은 이 시대 최고의 소통방법인 SNS를 통해서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말하자면, 노숙자라는 아날로그의 대표주자와, 무대공연과 관객형성이라는 디지털의 첨단방법이 만나, 마지막으로 그 공연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스코티와의 우정과, 음악을 보는 베니의 식견과 중요한 사람, 사건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홍보자가 만남으로 현실화됐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이어주는 것은 인간적인 우정과 신념에 대한 확고한 열정 등등이라고 할까? 고전적인 수법을 거부하던 소설이 마침내 감동의 경우에선 그 방법을 이용했다. 흥미롭다. 


"홈페이지도 프로필도 닉네임도 휴대전화도 가져본 적이 없는, 다른 사람의 데이터의 일부가 된 적이 없는 남자. 오랜 세월 틈새 속에서 살며 잊힌 채 분기탱천했으나 어쩐 일인지 이제는 순수로 기명된 사나이, 그 훼손되지 않는 한 남자의 가슴에서 뜯겨져 나온 망상과 단절의 발라드였다."(p456) 이것이 그날 공연의 감동을 전해준다.


변해가는 시대에 대한 상세한 그림이다. 시간앞에서 여전히 사람들은 사랑하고 미워하고 헤어지고 만나고 죽어간다. 그것을 넘어설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 깡패를 할퀴는 것이다. 세월에 주저앉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스코티의 마지막 무대에서 보여줬고, 그 공연은 많은 사람들을 디지털에서 아날로그로 바뀌게 했다. 참으로 재미있는 세상인 것이다.


내가 주목하고 싶었던 것은 누구에게나 깡패가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세월을 지적했지만, 그밖에도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그것들에 우리는 점령당한다. 그 깡패에게 한점 흠집을 내보려고 하는 것이 삶의 몸부림이면서, 살아가는 의미가 될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봤자, 깡패는 언제고 그 폭력성을 휘두를테지만. 


뉴욕이라는 곳을 몇번 밟아본 것이 소설을 끝까지 붙잡는데 도움을 주었다. 미로같은 그곳을 상상하면서, 소설을 따라나가는 것이 나름대로 스릴도 있었다. 센트럴 파크는 자주 소설의 무대로 등장했고, 로우 맨하턴등의 단어가 나오면, 맨하턴의 모양을 머리속으로 그리기도 했다. 뉴욕을 무대로 삼은 소설들은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도 같다. 복잡다단한 인간성과, 심리치료가 필요한 인간들, 무슨 일인가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역동성도 뉴욕의 모습중 하나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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