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픽처.. 더글러스 케네디
소설 빅 픽처(The Big Picture)의 내용은 간략히설명될 수 있다. 자신의 삶에 긍지를 느끼지 못하던 한 남자가,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후, 자신의 삶을 모두 잃어버리게 된 후에 겪게 된 이야기. 자신의 범죄를 감추고자, 자신이 죽인 남자의 이름으로 다시 살아나기까지, 그래서 그렇게 꿈꾸던 예술가로서의 성공을 이루기까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한번 더 죽고, 제3의 인물로 살아가는 기막힌 남자의 이야기다.
소설이니까,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또 개연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 위해선 수많은 사건과 생각과 인물과 환경이 날줄 씨줄로 엮인다. 이중에서 내 마음속에 깊이 박힌 것부터 풀어내기로 하자.
불륜
벤의 부인 베스는 이웃집 남자 게리와 불륜관계다. 게리는 부모의 신탁자금으로 생활하는 잘난척하는 3류 사진작가다. 벤과 베스가 함께 손가락질했던 그런 치졸한 남자. 자신의 아내가 이런 별볼일없는 남자와 눈이 맞았다는 게 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 게리의 집을 방문해 함께 술을 마시다, 자신의 아내를 갖고 놀고, 벤에게는 "자기혐오증"에 걸린 인간이라고 비아냥대는 그를 우발적으로 살해한다.
부부가 애정이 식어갈때 한곳을 치면서 들어오는 "병"같은 것이다. 이에 빠지면, 막장으로 치닫는다. 벤은 살인까지도 불사하게 되었다.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바로바로 해결해야 한다. 미움이 깊어져, 더 큰 죄악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나의 의문은 불륜을 저지른 사람은 그의 아내인데, 왜 벤이 끔찍한 살인범이 되었느냐 하는 점이다. 그녀의 불륜은 침묵속으로 떨어지고, 그후에도 새로운 애인을 만나 결혼하는 것으로 나온다. 사태를 이성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벤에게 문제가 있지만, 불륜을 알고나서도 아내에게 한번도 따지지 않는 벤에게 의아한 생각이 든다. 이것이 미국식 불륜목격 방식인가? 아내의 불륜은 자신의 치부라고 생각하는. 자신이 무능력자이고, 무시당했다고 생각해서. 벤에게도 동정이 가지 않지만, 모든 죄의 원인인 그의 아내 베스가 너무 무사하다는 것이 이성적으로 이해가 안간다.
맨해튼 월가의 변호사라는 직업
벤은 자신의 꿈이었던 사진가의 길을 버리고 아버지의 소원대로 변호사가 된다. 안정된 수입, 좋은 집, 아름다운 아내와 두 자녀.. 세상에서 부럽게 생각하는 모든 것을 가진 남자다. 그러나 그 자신은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내 역시 그렇다. 다른 것을 꿈꾸던 사람들이, 안정을 찾아들었지만, 그것은 무언가 빠진 생기없는 그것이었다. 연봉 30만불로 맨해튼에 전망좋은 빌딩에서 자신의 사무실이 있고, 변호사보다 더 변호사같은 비서를 거느린 삶이 어떨까 책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물론 짐작하겠지만, 그다지 긍정적이진 않다.
물질적인 것, 가령 고가의 사진장비를 사모으는 것, 아내에게 일하지 말고, 집에서 글을 쓰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것, 아이 보는 보모를 고용할 수 있는 것, 수준높은 사람들과의 친분, 맥도널드에 가는 것에 목숨거는 아들내미.. 왜냐하면 맥도널드같은 "불량식품"을 그의 아내는 절대로 사주지 않으니. 자신의 몸치장에 돈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 그건 수준높은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기본태도이기도 하다.
벤과 베스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비싼 옷을 입고 값비싼 쇼핑을 하지만, 물질세계에 빠진 걸 자괴하는 자기모멸감이 있다. 벤은 가족을 위해서, 아내도 가족을 위해서 자신의 꿈을 희생한다고 생각하는 그런 것들이 상대방에 대한 고마움보다 앞서고, 그것이 그들을 괴롭힌다.
변호사의 삶을 보여주는 소설속 문장들
나는 검토할 서류에 집중했다. 이런 쓰레기같은 서류를 읽는 대가로 1년에 31만5천 달러를 받다니.
163센티미터의 단신 유대인이 백인 위주의 법률회사에서 고참 변호사로 살아남으려면 옷을 잘 차려입는 것이 최고의 방어라고 생각하는 멋쟁이였다.
의기소침, 우울, 낙담, 이런 단어들은 그들의 사전에 없어. 그런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조차 몰라. 여기는 일터니까 그런 감정 따위는 버려야 한다고 믿고 있지. 법률회사의 불문율이야.
사진작가
두 사진작가가 나온다. 벤에 의해 살해된 게리 서머즈, 그리고 사진가가 되고 싶었지만,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벤. 벤은 게리를 죽이고, 그의 살인을 감추기 위해 게리로 위장해서 살아간다. 그리고 도망자로 동부에서 멀리 떨어진 몬태나주로 도망친다. 그곳에서 사진에만 전념하는데. 몬태나 사람들을 찍은 사진과 불타는 공원에서 위험을 무릎쓰고 찍은 사진이 세상에 공개된다. 그래서 사진작가로 유명해진다. 말하자면, 자신이 꿈꿔왔던 사진작가의 꿈을 게리의 이름으로 실현하게 된다. 그는 유명해지고 나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찾는 유명세에 시달린다. 신분을 드러낼 수 없는 상황인데. 이때 두번째 사건이 일어난다. 유명사진사 게리는 다시 자동차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된다. 우연이 겹쳐서 소설로서는 품격이 떨어진다. 게리를 대신해 죽은 우디 워렌 칼럼니스트만 안됐다.
어쨋거나 제3의 인물 앤드류가 된 그는 다시 사진을 찍는다. 유명사진가였던 그를 세상은 다시 못알아본다. 온세상이 자신을 찾았었는데, 이제는 다시 무명의 신출사진작가로 떨어지고 만다. 결국 작가와 작품은 우연히 만들어진다는 말과도 같을 것이다. 어떻게 유명인의 손에 들어가, 그 작품성을 인정받아, 어떻게 세상에 흩뿌려졌느냐가 중요한 세상...
남는 이야기들
전체적으로 추리물같은 경향을 띤다. 그러나 범인을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독자는 범인을 따라다닌다. 그가 우발적으로 살인을 하게되기까지는 그와 동조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머리좋은 그가" 자신이 범인으로 잡혔을때 벌어질 상황을 머리속에 그려보고는 다시 마음을 바꿔 범죄를 은폐하기로 할때부터 독자는 범죄자를 지켜보는 관객이 된다. 정당방위, 우발범죄 이런 것들이 형량이 가볍다는 데 동의하게 된다. 변호사답게 치밀하게 증거를 인멸하기 시작한다. 특별히 죽은 게리의 시신을 냉동고에 처넣기 위해 그가 벌인 행각은 으시시한 공포영화를 방불케 한다. 세세한 묘사, 망치와 톱까지 사용해서 그의 시체를 훼손하는 장면 등등은 끔찍하기만 하다.
범죄에 빠지기 전까지 벤은 자신을 구석으로 계속해서 밀어넣었다. 아내와 행복하지 못한 삶, 전 여자친구의 출세(자신이 꿈꾸던 사진작가)를 질투하고, 돈벌이를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한 것등에 열등감이 있었다. 이때 아내의 불륜목격은 그의 화를 자초하게 된다. 다 잃게 되고나서야 자신이 누렸던 것이 얼마나 소중했음을 알게 된다.
3장 마지막에 주인공과 사랑을 하게 된 앤은 그의 고백에도 불구하고 그를 받아준다. 이런 사랑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한명은 죽이고, 한명은 사고사로 죽고, 그런 다음 새로운 이름으로 살고있는 남편을 위해 자신까지도 도피생활을 하게 되는. 그들의 삶도 이제 우여곡절을 겪게 될 것같다. 세상은 모든 비밀을 영원히 감출수 있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하기도 하니까.
어쩌면 가보지 않은 길도 결국 별다른 것이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같다. 세명의 다른 인생을 살게 된 벤은 많은 순간 불행했다. 행복한 때가 있었다면 다 지나간뒤, 그 이전의 시간들이 행복했었다라고 그것을 기억하는 머리뿐. 현재를 살아내지 못하면, 그 어느때도 행복이란 것을 잡아낼 수 없는 인간의 한계성을 이야기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매순간 선택에 최선을 다하고, 선택했으면 그것에 복종하는 삶의 태도가 필요하다고. 다만 게리로 살면서 앤과 사랑이 싹틀때 그래서 사랑을 나눌때 게리는 행복해 보였다는 걸 덧붙이긴 해야겠다. .
미국문화를 알아야, 혹은 원문으로 봤다면 더 이해가 쉬웠을 것 같은 문장들이 있었다.
형사1은 흑인이고 벽돌 변소같은 몸매의 소유자였다.(138쪽)
-이건 어떤 뜻? 단단하고 근육질이란 말인지..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이 심장을 가져가게 내버려두자야.
-유대인 수석변호사 잭이 벤에게 이야기했던 것. 자존심을 버리라는 말인가?
벤이 게리가 되기 위해 신분위장을 했던 이야기가 장황하게 묘사된다. 사실, 다른 한사람의 인생을 살아낸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의 컴퓨터 파일을 뒤적여 그와 관계된 인물들을 파악하고, 신탁기금이 입금된 통장번호를 찾아내고, 자신에게 배달될 우편물을 기묘한 방법으로 수신하는 작업등, 그 모든 것을 "변호사"의 실력을 과감히 발휘하여 쟁취한다.
주변에 도망자가 있나 나도 모르게 돌아보게 된다. 벤을 통해 살펴보면, 한적한 소도시가 도망자가 숨기에 적당하다. 그러나 인간은 어쨋거나 혼자 살지 못한다. 그가 철저하게 외따로 지내고자 했으나, 사람들에게 걸려넘어지게 되는 상황들을 잘 묘사했다. 내가 내 이름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벤)와 비교하면, 호사다. 책은 언제나 일반인들에게 러브레터를 제공한다. 다른 사람과 비슷한 여러분들이여, 행복한 줄 알라, 하는 메시지다. 어느 낯선 고장에서 앤드류라는 3살때 죽은 아이의 이름을 이용, 새 출생신고서를 받아 살고 있는 그를 생각한다면, 오늘의 나의 일상에 감사해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몇개의 소설이 한권으로 이뤄진 듯한 스토리 라인도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더글라스 케네디라는 맨해튼 출신의 작가이다. 그는 미국에 비판적이며 파리에서 더욱 인기있는 작가라 한다. 맨해튼의 생리가 싫어서 도피한 작가일 수도 있겠다. 세상적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 월가같은 돈이 모여있는 곳의 전문직 종사자들도 있겠지만, 수많은 예술가들도 모여들지 않을까. 그 성공이 어려울테고, 그 어려운 성공뒤에는 또다른 암울한 구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작가가 널리 알리려는 것같다. 묘하다. 변호사든 사진작가든, 그게 거기서 거기라고 느껴진다. "꿈" 때문에 실패한 벤의 인생을 엿보아서 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