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dy Mar 20. 2020

세상의 크기가 달라졌다

라식수술 12일째

여자들은 "큰" 수술을 앞두고 무슨 일을 할까?


아마도 냉장고 청소를 하지 않을까? 

오래되어 못먹는 음식이 든 용기를 끄집어내고, 군데군데 얼룩진 것을 닦아내고, 야채칸도 청소할 것이다. 담아놓은 짱아찌, 다시한번 간장물을 끓여 식혀서 부어 놓기도 할것이다. 그런 다음에 거실에 한무더기로 쌓여있는 빨개를 개고, 대충은 청소를 할 것이다. 빨래감은 빨래통으로 집어넣고, 시간이 남는다면 속옷장도 한번쯤 정리하고 싶을 것 같다.


그런 다음에 책상에 앉아 한잔의 차를 마시며, 노트를 한다.  어쩌면 마지막 글이 될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착잡한 마음을 달랠 것이다.


내가 그랬다. 나는 아주 작은 "수술"을 앞두고,  위와 같은 행동을 했다.

눈이 멀수도 있고, 그것 때문에 죽을수도 있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수술전날 몇시간 동안 우울모드였다. 


그리고... 

..... 괜찮은가?라는 글을 썼다. 남편과는 아이들과는 이렇게 끝내도 괜찮은가?

그리고 하나님과는 또한 괜찮은가?


그 다음날 아침, 결론이 왔다.

..... 괜찮지 않다. 누구하고도 괜찮지 않다. 그래서 나는 죽을 수(혹은 눈이 멀수) 없다고.


이렇게 과대엄살을 떨다가 수술을 무사히 마쳤다. 이른바 모노비전 라식수술을.


수술후 12일째.


아직 완전하지 않다. 평면이 아니다. 두눈의 시력이 차이가 많이나서, 혼란이 있다. 글자가 보이지만, 깨끗하게 보이지 않는다. 세 자매중 가장 늦게 수술해서 동생과 언니에게 수술 상태를 의논하니, 약 2주는 지나야, 안정이 된다고 하니 기다려봐야 한다. 어쨋든 눈이 멀거나, 죽진 않았다. 


나보다 먼저 수술하는 언니 곁에 있어주었다. 눈에 항생제를 몇차례씩 넣고,  눈 마취약도 넣는다. 레이저 수술시간은 15분 정도지만, 수술 전과정은 2시간쯤 걸린다. 워털루 안과대학내에 위치한 TLC Laser Eye Centre에서는 본 수술까지도 관찰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수술실 창문에 비친 모니터를 통해서, 눈수술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볼 수 있었다.


내가 이해한 라식수술 방법을 보면 이렇다. 눈에 항생제와 스테로이드 약을 몇차례 집어넣은후, 눈주위에 마취를 한다. 첫번째 수술실에 가서 눈에 레이저를 쏘여 각막안에 기포를 생기게 한후, 약 15분후에 본 수술에 들어간다. 본 수술에서는 눈을 기구를 사용하여 벌려놓고 레이저로 각막을 얇게 절단하여 윗부분을 걷어낸다. 이 (각막)껍질을 살짝 걷어내놓고 레이저로 각막의 모양을 수정한다. 레이저 불빛이 나오면서 약간의 타는 냄새가 나는데, 그것이 불필요한 각막의 일부를 태워 모양을 가다듬는 것 같다. 그런 다음 벗겨놓았던 각막껍질을 다시 덮어서 평평하게 만든다. 양쪽 눈을 이와같이 하면 수술끝이다.


수술할때 약간의 압박통증이 있지만, 못참을 정도는 아니다. 언니의 수술과정을 지켜보았기 때문에 어떤 과정중에 있는지, 수술중에도 약간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각막껍질을 벗겨내면, 눈은 뜨고 있지만, 잠자기전에 감은 눈안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광경같은... 약간의 광선이 있는 회색하늘이 눈앞에 나타난다. 실제로 각막껍질을 벗겨낸것이 수술 모니터에 떴을때 초롱초롱하던 눈빛이 없어지고, 회색 둥근달이 화면을 채웠었다. 그리고 각막껍질은 콘택트렌즈같이 밑으로 살짝 벗겨져 있다. 이때의 모양이 가장 오싹했던 것 같다.


라식수술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우리가 선택했던 수술방법은,  IntraLase 방법과 Custom LASIK이었고 나는 이것에 더해서, 한쪽 눈은 가까운 곳을 보고 다른쪽은 먼데것을 보는 Mono Vision 으로 수술했다. 



인터넷에서 찾은 웨이브 프론트 방식의 수술설명서 


인트라 라식과 카스텀 라식은  각막절편을 생성할때 칼을 사용하지 않으며 각 개인의 각막의 생김새에 맞는 맞춤형 수술방법으로 웨이브 프론트 방식(Wave Front Analyzer)으로 불린다. 어쨋든 최고의 기술과 기계에 의한 수술방법이며 수술후 (조건적) 평생책임을 진다는 TLC Lifetime Commitment의 자동회원이 된다. 그러나, 수술전에 사인한 계약서에는 "위험이 있음을 알고있으며, 어떤 보장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고 썼고, "수술후 안경을 써야 할 경우도 있다는 것"에도 사인을 했다.


수술후 빠져나갈 구멍은 다 만든후, 그래도 불안해하는 환자들을 위해 평생보장제를 제시하는 이들의 속셈이 괘씸해도 불구덩이에 들어가는 마음으로 수술을 선택했고, 좋은 결과를 얻게 됐으니 다행이다. 워털루 TLC 지부는 다른 종류의 라식수술은 제공하지 않았다. 이 수술방법만을 고집하니, 아마도 현재까지는 제일 안전한 방법이 아닌가 싶다.


어쨋든 목요일 수술해서 4일후인 월요일에는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고안됐는데, 실제로 나는 수술 바로후부터 잘 보였다. 24시간 동안 하지 말라는 것중에, 책, 텔레비전, 컴퓨터 보지 말라는 규칙이 들어있었는데, 나를 위해 위문차 함께 했던 일행들이 옆에 환자를 놔두고 의리없게 텔레비전을 보는데, 그걸 보지 않고 참느라 애썼던 기억이 난다.


각막의 상처가 다 아물기까지는 최소 2주부터 약2달까지 걸리고,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오기까지는 넉넉하게 잡아서 2달-6달 걸린다고 하니, 참을성있게 기다리는 일이 남았다. 현재, 어떤 것을 집중해서 보려면 피곤하고, 글씨가 아직 깨끗하게 정리되어 보이지 않지만, 대체적으로 만족이다.


우선 안경을 써서 작게 보였던 사물들이 제 크기를 회복해서, 모든 물체가 얼마나 뻥튀기하듯 커졌는지, 한동안 적응하느라 애썼다. 식품점에 있는 과일들이 어쩌면 그렇게 크고, 먹음직스러운지 놀라왔다. 밥을 풀때 너무 많은 듯싶어 아주 조금씩 밥을 담게되니, 다이어트가 저절로 되고 있는 것도 눈수술의 결과이기도 하다. 


약간 비현실적인 세상을 사는 기분이다. 사물의 크기와 모양이 현격히 달라보이고, 사람들의 얼굴까지 예전에 보던 그 모습이 아니니,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고 해야하나. 그동안 한 80% 정도의 사물밖에는 보지 않고 살았던 것만 같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시원하게 모든 풍경이 들어오니 희안하다.  

또한 안경다리가 눈옆 관절을 눌러댔는데, 그것이 없어져서 홀가분하다. 압박이 없는 세상, 그것이 그렇게 좋다. 





모노비전 수술을 받은지 1년후 정기검진에서 먼데를 보는 왼쪽눈의 시력이 약하다고 하여, 한번 더 수술을 받았다. 각막의 두께를 먼저 조사한후, 합격하면 해준다. 라식 수술을 받기전 각막의 두께를 검사하는데, 가끔씩 각막이 너무 얇아 수술할 수 없다는 판정을 받기도 한다. 


한동안 왼눈과 오른눈 사이 어디쯤에 검은 구름이 있는듯, 답답했다. 두눈의 시력이 동일하지 않음으로 해서 오는, 부작용이 아니었을까 싶다. 담당의는 그걸 해결해줄 수 없는지, 주의깊게 듣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감으로 그런 착시현상도 자리를 잡아갔다.


모노비전 수술후 12년이 흐른 오늘날까지 노안안경이 필요없다. 그러나 약병이라든지, 음식깡통에 붙은 작은  글자들을 읽을때 어려움을 겪는다. 그럴때야말로 돋보기가 필요하다. 노안이 평생 가지는 않을 것이라 했는데 10년 이상 사용했으니, 본전은 뽑았다싶다.


내가 존경하는 어떤분은 "책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나빠진 눈"을 한탄하셨다. 나는 그때 그분을 정말 안타깝게 생각했다. 책을 볼수 없게 된다면 어떤 마음이 들지, 상상하기도 싫었기 때문이다. 내가 독서광이어서가 아니다. 읽지 않는 것과, 읽을 수 없게 되는 것은 엄연한 차이가 있으니 말이다.


육체적인 눈은 원거리, 근거리를 다 보기 위해 수술이라는 방법까지 동원하여, 복구해 놓았는데 나의 삶은 어떻게 굴러왔을까? 크게 특별할 것 없지만, 모노비전이란 주제로 한번 더 들어가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모노비전이 된 까닭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