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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y Mar 19. 2020

모노비전이 된 까닭은

라식수술을 하다

나는 모노비전이다.

짝짝이눈이다. 이렇게 말하면 조금 더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 모노비전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브런치에 매가진을 만들고자 한다.

브런치 초보로서 매가진이 무엇인지 잘 감이 오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주제로 그것을 풀어나가는 일종의 글쓰기 틀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선 짝짝이눈이 된 때 글을 찾아봤다. 지난 2008년에 모노비전 라식수술을 받았다. 벌써 1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한쪽눈은 가까운 데를 잘 보게 하고, 한쪽눈은 먼데를 잘보게 수술하는 것이다. 나는 책과 스마트폰을 보는데 문제가 없다. 왼쪽눈은 운전용, 오른쪽눈은 독서용이다. 아주 만족하며 살고있다. 내가 결정한 일중, 꽤 만족스런 결정에 속한다.


모노비전 때 적었던 글을 가져와보자.




"인생 60살이면 아직도 청춘"이라는 말도 있는데, 왜 그 "노안"은 40살 즈음해서 오는지 "노안"이란 말을 없애든지, "60은 청춘"이란 말을 없애든지, 그래야지 않을까?

60살이 청춘이면 40살이면 영계라 불린만한데, 눈은 노인의 눈이라니...  노안은 열서너살에 오는 초경처럼 그렇게 갑자기 왔다. 다른 게 있다면 사전교육을 전연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날을 기억한다.

동네 합창부에 속해있었다. 연습날 악보를 보려니 초점이 맞지 않는다. 마침 그때 새 안경을 맞췄기 때문에, 안경이 내눈에 안 맞는다고 생각했었다. 안경을 벗으면, 악보를 너무 바짝 들이대고 봐야 했으니, 지휘자와 악보를 재주껏 교대로 봐야하는 합창단원에겐 치명적인 일이었다.  어려운 과정을 거치고 연주회를 한후 합창부를 탈퇴 했다.  


그리고 노안은 점차로 진행되었다. 책을 읽는 것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안경을 벗으면 된다지만, 그러면 책과 눈 사이가 아주 가까와야 하니, 책을 보려면 어깨가 아파온다.

신문보기는 어떤가. 바닥에 펴놓고 읽을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아예 엎드려서 몸이 신문을 쫓아다녀야 한다.

 아니면 아주작게 접어서 눈앞에 바싹 들이대고 보던지. 이런 과정을 거쳐서 리딩 글라스(reading glasses)를 맞추게 된다. "돋보기"라고 하지 말라. 글자가 크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제 크기로 바르게 보인다. 바로 "노안교정안경"인 것이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 발생했다. 책 읽을 때 쓰는 이 안경이 내게는 집에서, 그리고 운전할때 등 다용도로 가능했다.  책도 보이고, 도로의 사인판도 보이니 이 아니 좋은가? 내 경우만 갖고 나는 교정안경이 만병 눈통치약인 것으로 알고, 사람들에게 권하기도 했다. 그래서 맞춘 사람들도 있었는데, 반신반의하던 사람들에게 노안안경은 그냥 책읽기용일 뿐이었다.


어쩌면 내가 허풍을 떤다고 생각했거나, 제대로 보이지 않는 걸 보인다고 착각하는 게 아닐까 라고 짐작들했겠다. 어쨋거나 이런 사건들을 뒤이어 눈 정밀검사를 받게 되었다. 그 유명하고 무서운 라식(Lasik) 수술을 고려키로 한 것이다.  라식 수술은 시력을 높여주지만 노안은 교정할수 없으니, 리딩 글라스를 써야할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었다. 나도 물론 그럴 각오를 했다.

그러나... 검사 결과 리딩 글라스를 낀 내 눈의 상황이 나왔는데, 왼쪽눈은 가까운 것을 잘 볼수 있고, 오른눈은 먼데 것을 잘볼수 있다는 것이다.

짝짝이 눈


오랫동안 그 사실을 몰랐다. 두 눈이 서로 다른 것을 보고 있다는 것을. 어떤 연유로 내가 그런 리딩 글라스를 갖게 됐는지는, 아직 밝혀진 바가없다. 나는 근거리, 원거리를 따로 보는 안경이 있다는 소리도 못들었거니와 단순한 리딩 글라스를 주문했었다. 그때 내눈을 검사했던 그 검안의와 조근조근 따져본다면 단서가 잡힐지는 모르겠다.  이것이 내가 짝짝이 눈으로 살았던 지난 날들에 대한 설명이다.


언젠가 큰애가 엄마가 화낼 때는 한쪽눈이 커지고, 한쪽눈은 작아진다고 하더니만, 그것도 내눈이 짝짝이여서 그랬을까?   눈이 사물을 인식할때 처음 보는 것을 뇌에 전달해서 그 물체를 인식할수가 있다고 하는데, 그동안 나의 뇌도 내눈에 맞추느라 체제개편이 일어났었을 수도 있었겠다.


눈이 두짝인 이유를 비로소 안듯싶다. 필요하다면 두 눈의 용도를 달리해, 각각 따로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주인이 눈치못하게 나의 두 눈이 이런 일들을 해치우고 있었다는 것이 괘씸하면서 신기하다. 놀라운 것은 이런 방법으로 라식수술도 받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양쪽 눈을 이용하는 이런 수술 방법을 모노비전(mono vision) 라식수술이라 한단다. 그렇다고 해서 노안이 영원히 교정되는 것은 아니고, 몇년간(이게 확실치 않다) 지연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담당의는 나의 모노비전 수술을 원하는게 확실한지 몇번을 되집어 물어본다.

이 모노비전을 원하는 사람들은 일단 두 눈의 협력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초점이 다른 두 렌즈착용을 해서 시험해 봐야 한다고 했다. 나는 지난 1년 이상 훈련을 받았으니 적합한 후보라고 볼 수 있겠다.


어쨋든 나는 모노비전 라식수술의 대장정에 오를 예정이다. 그간 두려움과, 경제성의 이유로 쳐다보지도 않았던 것을, 충동구매처럼 세 자매가 어느날 의기가 투합해 일을 벌이기로 했다. 혼자 하기는 어려운일, 이럴때 아니면 용기를 내기 쉽지 않겠지.


노안이 온 언니에게 모노비전을 설명했지만, 관심이 가지 않는단다. 어차피 노안안경을 써야 한다면 몇년이라는 세월에 위험을 무릎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겠지.  모노비전으로 수술했을때 밤거리 운전에 어려움을 느낄 수 있고 거리감각이 둔해질 수 있다. 때문에 운동을 많이하는 사람이거나, 비행사등에게는 권하지 않는단다.


그리고 일반인들에게도 일부러 권하지는 않는 것같다. 임상결과가 충분치 않은 것이 그 이유일듯.. 라식 수술을 하더라도 노안안경을 수시로 써야 할텐데, 단 몇년이라도 그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된다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게 될 것 같다. 짝짝이눈으로 사는 게 큰 탈이 없다는 것을 경험했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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