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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y Dec 02. 2020

ZOOM이 마련해준 관계의 장

장소, 시간을 넘나들어 엮어주는 통신기술에 반함

"ZOOM"은 내겐 상관이 없는 단어였다. 줌렌즈라고 할 때 그 줌을 말함인가 하는 정도였다.

재택근무가 일상이 된다는 소식이 들리고, 화상회의 이야기도 들려올 때면 ZOOM이 단골로 등장하곤 했다.  화상회의니, 콘퍼런스 콜이니 그런 고급진 단어는 남의 얘기일 뿐이었다.


지난 9월 안부전화를 준 동생에게서 전해 듣게 된 소식에 내가 혹한 이유 중에 하나는 "줌으로 하는 모임"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동생은 그간 북클럽을 해오고 있는데, 반응이 좋아 3번째 모임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북클럽"과 "줌"이 만나니, 호기심이 발동해서 조금 자세히 물어봤더니, 언니도 관심이 있으면 함께 조인해도 된다며 손짓했다. 약간의 문제가 있었는데, 미국 메릴랜드에 사는 사람들, 즉 동생 남편이 영어권 목회자로 있는 교회 교인들 위주여서 영어로 진행된다는 점이었다.


참여하는 사람들은 모두 여자들이며,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들로 모두 13명쯤 될 것 같다고 하였다. 영어라는 말에 내가 멈칫거리자, 언제나 "이쁘고 따뜻한 언어를 쓰는 언어 마술사"인 동생은 언니가 참여하면 아마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권유하였다.


"용감"이란 무기만 장착하고 한번 해보기로 했다. 그 첫 모임이 9월 중순에 있었는데 그날 소식 없이 언니가 방문해서 언니까지 앉혀놓고, 참석자들에게 인사 소개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아마존에 주문한 책이 제때 도착하지 않아 마음을 졸였다. 주문 후 약 2주간쯤 걸려 도착해서 깡촌에 사는 맛을 톡톡히 봐야 했고, 두 번째 모임 때는 읽을 양이 늘어나 있었던 기억이 새롭다.


매주 토요일 아침 10시면 책상 앞에 앉아서 줌을 켠다. 하나둘씩 참여자들이 들어온다. 영상의 밝기가 제각각이고, 화면의 얼굴크기, 선명도, 말소리도 조금씩 다르다. 나는 처음에는 연결 상태가 안 좋아서 "프로즌" 상태를 맞게 되기도 했다.


모임 두 번째 날이었던가? 머리도 매만지고, 화장도 했다. 화면으로 만나는 데도 좋은 인상을 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외출할 때도 잘하지 않던 화장을 하면서 나도 혼자 웃었다.



11월 셋째 주에 마지막 만남이 있었다. 처음 13명이 모였었는데, 마지막 날 9명이 참여했다. 그동안 2명인가가 사정이 생겨서 중도하차를 했던 것 같다. 이 모임을 하면서 알게 된 귀한 경험 중 하나가 모두가 엎치락뒤치락 치열한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과, 그런 와중에 조금이라도 시간과 정성을 들여, 타인과의 소통, 관계에 힘을 쏟고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가 함께 토의했던 책조차도 관계에 주안점을 둔 "LOVE, as a way of life"였다. (Gary Chapman 저)

관계,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나는 오랫동안 "관계"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만 같다. "관계"라고 하면 아마도 소설을 많이 읽은 탓인지, "남녀 사이의 관계"를 많이 떠올렸기에,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관계"에 대해서 다른 단어를 찾으려 했던 것도 같다. 말하자면, 소통이라든가, 마음 나누기, 대화 등 대체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믿어왔다. 이제는 "성적인 뉘앙스"가 풍기는 그 "관계"가 아니라 넓은 뜻, 사람 사이의 관계로 머릿속 단어장을 다시 정비한다.


책은 사랑을 기반으로 해서 관계를 맺어나가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명제에 그 사랑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담고 있다. "친절, 인내, 용서, 호감, 겸손, 관용, 정직"이란 7가지 요소에 대해 세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요소들을 삶에서 어떻게 적용할지, 어떤 부분이 내게 미약한지, 그런 것들을 점검해 나간다.


매주 1시간 30분 동안 만나는데, 첫 15분간은 모두 모여 인사를 나누고, 지난 1주일간 생활에 대해서 나눌 일이 있으면 함께 나눈 후 분반으로 이동한다. 대체로 한 반당 4~5명이 모여 책의 내용을 토의한다. 이 시간을 이끌 리더는 전주에 자원으로 모집한다. 모두 한 번쯤은 리더가 되어야 하기에, 나도 어렵사리 손을 들어 자원하기도 했다. 분반 토의가 끝나면 다시 모두 모여 분반 토의 내용을 서로 나누고, 다음 주 리더 자원자를 뽑고 기도로 마친다. 이 모임을 주관하는 동생은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잘 운영한다.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게, 누군가 말하고 싶지만, 용기를 내지 못할 때 북돋아주는 재주도 있다.


동생과 동생의 딸(조카)만 빼고는 모두 처음 보는 사람이다. 20대부터 70대까지, 한인도 있고, 한인과 결혼한 다른 민족 사람들이 많았다. 내 나이쯤 되어 보이는 한인 여성 두 명이 있었는데, 모두 유창한 영어 사용에 내가 많이 주늑들었다. 이민 오고 영어교육을 등한히 한 덕에, 이민 살이 30여 년이 되었어도 의사소통을 확실하게 하지 못하는 이민 1세가 되어있음을 확연히 깨달으니, 무척 부끄러웠다.



책에서 주장하는 대로 모두 "사랑"을 실천할 의지들이 있는 여인들이라서, 내게 용기를 주고, 마음을 나눠주었다. 특별히 ADHD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젊은 여성이 있어서 나는 내 딸의 이야기를 하며,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또 한분, 50여 년 전에 한인 목사와 결혼한 한분은 은퇴 후 잘 지내고 있는 그 점이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자신이 편안한 노후를 보내는 것에 대해 마음의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힘껏 힘을 쏟지 못하고 있다고 자책한다. 50여 년 전 자신의 가족이 반대한 결혼을 한 그분의 삶을 살짝살짝 들여다보면서, 어떻게 나이 들어가야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분은 마지막 만남에서 약간의 눈물을 비쳤다. "추수감사절이 돌안오니 마음이 이상하다"며 울먹였는데, 추수감사절 즈음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동생 때문이라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모임 참가자들은 어머니 같고, 할머니 같은 그분을 위해 추수감사절 카드와 선물을 바구니에 담아서  보내드리기도 했다.


우리 엄마가 아플 때도 모여서 함께 기도해주고, 한 멤버는 하나밖에 없는 오빠가 심장수술을 받아야 한다며 기도 요청이 해서 함께 기도하기도 했다. 공부 중에 자주 나왔던 "authentic(어센틱)"이란 단어가 마음에 박혔다. "진정한 사랑, 진정한 인내, 진정한 친절..." 등등. "그냥 말로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을 하려면 어떠해야 하는지, 이 책을 통해, 사람들을 통해 많이 배운 것 같다.


이제 3기가 끝났고, 4기를 내년 1월에 연다고 하는데, 그때 또다시 합류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모르는 단어도 많고,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서 몇 번씩 읽어야 하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럴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게 될지 모르겠다.


마치 "전쟁"과 같은 시간들을 지나는 중이라 며칠 앞도 못 내다보는 삶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번에는 딸이 사는 콘도 앞에서 그 애가 급하다면서 부탁한  "birth certificate"를 전해주기 위해 만났는데, 마침 그날 두통이 있어서 만나는 마음이 무거웠다. "바이러스"가 침투했으면 어떻게 하는가 말이다. 사위와 함께 내려온 그 애에게 "바짝 다가오지 마"라며 카드를 내밀었고, 그 애는 받아 들었다. 모두 멀리 서서, 서로 껴안을 수 없음에 동의하며 각자의 어깨를 팔을 꼬아 스스로 부여잡는 방식으로 포옹을 했다. 그러고 나서, "어서 올라가"라며 겨우 1분 안에 끝나는 만남을 마치고 차를 몰고 나오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전쟁 중이라도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 아니었나 싶었고, 내 뒷머리가 당기는 느낌이었다.


엄마를 돕기 위해 엄마 집에 가서도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하나, 고민됐다. 머리가 아프면 나오지 말았어야 했나, 하는 생각도 했지만 엄마는 "Long Term Care" 인터뷰를 앞둔 터라 원래 막냇동생이 있기로 했는데, 나도 있기를 은근히 바라셔서 갈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그 뒤로 코로나 검사를 했고, 다행히 음성으로 나와서 모든 걱정들을 왜 했나 싶었지만, 그 당시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낑낑대는 강아지 신세가 바로 나였다.



어쩌다 이렇게 삼천포로 샜나 모르겠지만, 이런 시간들이 나에게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작금의 현실인 것 같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묶어주는 최첨단 "ZOOM"이라는 도구가 반갑다. 안전한 곳에서 얼굴을 맞대고 깊이 있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창구가 되고 있지 않느냐 하는 점이다. 그전에도 여러 소통의 도구들이 있긴 했다. 다른 회의 화상 도구를 사용해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ZOOM은 설치와 이용이 간단한 것 같다. 호스트가 초청하면 그 링크를 따라가면 된다. 스마트폰으로 링크를 보내도 되고, 이메일로 보내주기도 한다. 미팅 아이디를 처넣거나(주로 번호로 되어있다), 폰으로 열 때면 그냥 링크를 오픈하면 된다. 무료 버전은 40분 제한이라고 나와있는데, 지난번에 친구들과 함께 사용해봤는데, 40분이 지나도 상관이 없었다. 40분 제한이 풀렸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더 실험해봐야 할 것 같다.


페이스 타임이나, 카톡 동영상 통화 같은 경우에는 전화기의 상위 버전으로 인식이 되는데, 줌은 약간 다른 느낌이다. 모두 같은 시간에 같은 주제로 함께 모임으로 해서 회의 분위기가 잡힌다. 일관된 주제로 발언하게 되고,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친구들과 찻집에서 만나 대화를 나눌 때면, 중구난방 대화가 흩어지는 느낌이 많은데, 내가 경험한 줌 미팅은 한결 차분하게 상대방의 의견에 집중하게 해 준다. 4명 미만으로 모이면 스마트폰을 이용해도 큰 상관은 없지만, 노트북 이상의 화면을 가진 디바이스로 연결을 하면 갤러리처럼 모두가 한 화면에 모일 수 있어, 유용했다. 인터넷에 문제만 없다면, 음성도 끊김 없이 잘 들렸다. 가끔 기계음이 들어올 때도 있는데 그럴 때면 음성 제거를 해놓으면, 상대방에게 소리가 들어가지 않는다. 자신이 발언할 때 다시 음성을 켜놓으면 된다.


9월에만 하더라도 문외한이었던 내가 이렇게 자주 ZOOm을 이용하게 될지는 몰랐다. 언니의 초청으로 한국에서 열리는 포룸에 초대받기도 했고, 자매들과는 자주 중요 미팅을 갖는다. 자매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한 가지 사안을 가지고도 서로 생각하는 차이를 느낄 수 있어서, 왜 서로 다른지 곰곰 생각해보게 됐다. 내가 가진 단점은 사태를 너무 낙관적으로 본다는 점, 때로는 좋기도 때로는 게으른 생각법이기도 한 것을 자매들과의 대화에서 많이 느꼈다. 그래도 하나의 결론을 내게 되면, 무언가 성취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오랜 이민생활 중 이렇게 오랫동안 자매들과 자주 만나 대화를 했던 기억이 없다. 한국, 미국, 캐나다 즉, 세계를 잇는 줌이 있어서 이게 가능해졌다.


이런 과정들을 겪으면서 디지털 초급을 벗어나고 있다. 그런데 언제나 그런 생각은 든다. 디지털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 더 커질 것 같다는 말이다. 코로나가 미래를 앞당긴다고들 한다. 디지털 기술이 성큼성큼 앞서 나가고, 쫓아가는 자들과 점점 처지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다. 이 격랑 앞에서 남 걱정할 때가 아니라고 누가 말할지는 모르지만 자꾸만 이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걱정이 된다.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했을 때, 주변 지인이 자신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었다. 그때 이미 사용하고 있던 나는 "없어도 살았던 것이기에 필요성을 못 느끼겠지만, 내가 사용해보니 앞으로 없이 살 수는 없게 될 것 같다"며 권유했던 적이 있다. 그분은 지금 스마트폰을 잘 쓰고 계신다. 특별히 새로운 문물에 저항감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그분들에게 기회가 오면 사용해보는데 주저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가족 간 만남도 이제 줌에서나 가능한 시대가 열릴 수도 있고, 사실 지금 그렇다. 우리 집 큰딸도 캐나다에 올해 오지 못했다. 그나마 줌으로 자주 보니, 다행 아닌가?


줌은 관계의 장이다.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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