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함은 누가 정했는가? 소크라테스의 가르침
사람은 대체로
자기가 선택하며 살아왔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하루를 찬찬히 돌아보면
정말 내가 원해서 한 일보다
그냥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아서 한 일이 더 많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거절하지 않았고,
굳이 설명하지 않았고,
그냥 넘어갔습니다.
중년이 되면
이런 장면이 유독 많아집니다.
이미 충분히 해온 사람이라는 이유로,
이미 알 만큼 안다는 이유로,
이제 와서 튀면 안 된다는 이유로.
"이 정도는 해줘야지."
"나이 먹었으면 이해해야지."
"그게 세상 사는 거야."
이 말들은 폭력은 아닙니다. 대신 사고를 멈추게 하는 말입니다.
사람은 생각을 멈추는 순간 기준을 타인에게 넘겨주게 됩니다.
그때부터 삶은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남의 기준을 따르는 일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고 싶은 일은 미뤄지고,
해야 할 일만 남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에게 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평생
질문만 던졌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답을 몰라서 무너지기보다
질문을 하지 않아서 무너진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군가 이렇게 말하면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 말도 맞네."
"괜히 내가 예민한 건가."
하지만 소크라테스라면
그 자리에서 조용히
이렇게 물었을 겁니다.
"정말 그런가요?
그 기준은 누가 정했나요?"
이 질문은
상대를 공격하지 않습니다.
대신 나 자신을 되돌려 놓습니다.
남의 기준은 항상 부드럽게 들어옵니다.
"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다들 이렇게 해."
그래서 더 위험합니다.
남에게 삶의 기준을 맡길 때
사람은 불쾌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안심합니다.
이런 안심이 반복되다 어느 날
남의 기준에 의해 쓸모를 다해 버려졌을 때 이런 생각이 떠오릅니다.
나는 성실하게 살아왔을 뿐인데 왜 이렇게 허무할까?
허무함의 이유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내가 선택한 삶이 아니라
기대에 맞춘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해왔지만 내 것이 아니었던 시간들을 반복했을 뿐 결국 내것은 없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너 자신을 알라"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선택이
정말 내 판단인지, 아니면 오래된 기대에 자동으로 반응하고 있는 건지
끝까지 묻고 또 묻으라는 말입니다.
남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은
단 하나의 질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건 정말 내가 선택한 걸까?"
오늘, 딱 한 번만 이 질문을 해보십시오.
답이 바로 나오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자신의 기준을 찾는 당신만의 질문만은 잊지 마세요.
소크라테스
'질문을 멈추는 순간 사람은 남의 삶을 아무 저항 없이 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