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학습자의 삶-2
세상은 빠르게 변합니다. 인공지능이 우리의 일상을 바꾸고, 새로운 기술이 끊임없이 등장합니다. SNS는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직업의 세계는 10년 전과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기술과 현상은 변해도, 인간의 본질적인 고민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천 년 전 로마의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사람들은 시골이나 해변, 산으로 도피처를 찾으려 한다. 하지만 진정한 도피처는 자기 자신의 영혼 안에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번아웃을 느낄 때 휴가를 떠나고 싶어 합니다. 환경을 바꾸면 뭔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결국 문제는 외부가 아니라 내면에 있다는 아우렐리우스의 통찰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공자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는 뜻이죠. 이것은 단순히 과거를 공부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변하지 않는 본질을 이해할 때, 변화하는 현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대에도 사람들은 소통했습니다. 말과 글, 편지로 마음을 나눴죠. 기술은 변했지만, 소통의 본질 - 진심을 전하고 이해받고 싶은 욕구 - 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진정한 소통의 의미를 더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에픽테토스는 《엥케이리디온》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라.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마음 쓰지 말라.”
세상의 변화 속도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도 막을 수 없죠. 하지만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 변화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무엇을 배울 것인가, 어떤 자세로 살아갈 것인가입니다.
미네르바 대학이라는 독특한 교육기관이 있습니다. 이 학교에는 고정된 캠퍼스가 없습니다. 학생들은 전 세계 7개 도시를 이동하며 배웁니다. 왜 이런 방식을 선택했을까요? 변화하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단순히 지식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배우는 능력 자체를 키워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강조하는 것은 ‘학습하는 방법을 배우기’, ‘비판적 사고’, ‘창의적 문제해결’입니다. 구체적인 기술은 계속 변하지만, 배우는 능력, 생각하는 능력, 적응하는 능력은 언제나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고전 철학자들이 평생 추구했던 지혜의 본질과 정확히 일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