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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e Mar 09. 2016

아이러니의 아이러니

퇴사가 확정되던 날, 작가가 되었다

수고 많았어요


금요일 아침 8시 50분.

“수고 많았어요”라는 한 마디와 함께 부장님이 악수를 건네셨다. 그렇게 첫 직장에서의 퇴사가 확정되었다.


잠시 후 9시 10분.

한순간에 ‘마지막’이란 세 글자가 수식어로 붙은 주간회의에 참석하기 바로 전, ‘작가로 선정되었습니다’라는 알림을 봐버렸다. 퇴사가 확정된 순간에 작가 선정이라니. 설레고 또 설렜고, 설렘에 죄책감마저 들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듯 ‘퇴사’라는 단어를 뱉어내는 순간부터 퇴사의 여정이 시작될 것만 같았다. ‘퇴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품고 있던 생각을 입 밖으로 뱉고, 뱉어낸 말이 두 귀로 들어와 다시 마음에 박히는 그 과정에서 정말 퇴사가 하고 싶어 질 것 같았다. 욕심 많던 신입직원은 그 두 글자가 무서웠다. 아직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라고,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범주에 내가 있다고 여러 번 최면을 걸어야 했다.

어느 날의 퇴근길, 서울역에서 바라본 서울스퀘어. 여기도 저기도 분주하게 움직인다.

‘매일매일 버텨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멈추자’고 다짐했던 날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어느 순간부터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내고 있었다. 그런데 앞만 보고 달리다가 고개를 돌려 보니 나뿐이 아니었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팀원들 모두가 힘겹게 버텨내고 있었다. ‘그래, 나도 더 참고 잘 버텨내자’와 같은 다짐 보다는 ‘왜 이렇게까지 버텨가며 일을 하지?’라는 생각이 차올랐다.


시간이 지나면 그동안 힘들었던 일도, 지금 힘든 일도 모두 별 것 아닌 일들로 기억될 테니 조금만 더 버텨보라는 말을 들었다. 최악은 늘 갱신되니까, 지금이 최악의 순간이 아니란 말도 함께 들었다. 마치 매일 반복되는 입시지옥에 빠져 있는 학생에게 대학만 가면 고생 끝이라고 하는 어른들의 말처럼 들렸다.


직장은 자아실현을 하는 곳이 아니라고들 하지만, 나는 자아실현을 꿈꿨다.


다닐 이유를 찾지 못해 반년 가까이 퇴사를 고민했다. 그래서 반년에 걸쳐 ‘선배’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왜, 이 회사에 다니세요?”

“왜 일을 하세요?”

단 한 명도 하고 있는 일이 좋아서 다니고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회사가 나쁘지 않아서, 급여가 괜찮아서, 오래 다니기 좋아서 다니고 있다는 답변이 대부분이었다. 사회초년생이었던 내겐 당연하면서도 의외인 대답들이었다.


직장은 자아실현을 하는 곳이 아니라고들 하지만, 나는 자아실현을 꿈꿨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꿈꿔왔던 것이 무엇이었는지조차 희미해져 있었다. 다시 무언가를 선명하게 품어나갈 자신이 생기지 않았고, 하고 싶어 했던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준다는 말에도 나는 퇴사를 강행했다. 그렇게 퇴사가 확정되던 날, 첫 직장에서의 자아실현은 실패했지만 ‘작가’라는 소소한 꿈을 이뤘다.      


글 좀 써보려고요
지난 연말, 내년에는 좀 행복해지라는 말과 함께 받은 카드.

그날, 점심을 먹고 간이테이블에 앉아 대리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대리님은 ‘어른 말 참 안 듣는 고집불통’ 막내에게 1주 전, 2주 전에 했던 이야기들을 또 반복했다. 말을 안 듣는다고 해서 새겨듣지 않는 게 아니라는 항변을 하던 차에 부장님과 마주쳤다.


“이제 뭐 할 거에요?”

안타까움 반 아쉬움 반 골고루 섞인 한 마디가 내게 던져졌다.     

“글 좀 써보려고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퇴사하겠다고 말했던 터라 미소를 가득 머금고 자신감에 찬 얼굴로 답했다.

“오~ 본인이 글 좀 쓰는 편이긴 한데, 요즘 글 잘 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정도 실력은 아닐텐데 뭐 그래도 열심히 해봐요!”



밤낮없이 주말도 없이 일하며 글 쓸 시간이 없다고 말해왔던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작가로 선정되었다는 알림을 받고 어언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오늘에서야 노트북을 켜고 글을 끄적이고 있다. "글 좀 써보려고요"라는 작은 외침이 무색해지지 않도록, 이제는 정말 나를 위한 글쓰기를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꼭 글쓰기가 아니어도 좋지만 가장 좋아하는 일이 글쓰기인 만큼 브런치를 통해 좋아하는 일에 시간을 쏟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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