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트럭과의 재회를 기다리며
모두의 헬요일인 월요일. 나에게는 연휴보다 마음이 더 여유로웠던 오늘.
오전부터 부지런히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느지막이 감은 머리가 다 마를 때쯤 편한 운동화를 신고 체크카드 한 장과 휴대폰, 이어폰을 손에 들고서 집을 나섰다. 지난달 말부터였나. 입 안 가득히 고소한 아이스라떼를 머금고 싶다는 생각이 오늘까지 이어졌고 맛있는 라떼를 한잔 사마시겠다는 생각 하나로 20분을 걸었다. 우유가 들어간 라떼 보다는 뒷맛이 깔끔한 아메리카노를 좋아하기에, 당을 충전해줄 카라멜마끼아또도 아닌 ‘그냥’ 라떼를 마시는 날은 일 년 중 손에 꼽을 정도다.
라떼를 마시는 날이 일 년 중 손에 꼽으니, 기왕 마시는 거 내 입맛에 ‘가장’ 맛있을 것만 같은 라떼를 파는 곳을 찾았다. 그래서 찾아간 곳은 걸으면 닿는 거리에 있는 이름바 ‘동네카페’. 그러나 누군가들에게는 언젠가부터 맛집 프로그램에 소개된 유명 카페로 알려져 있었다.
박준 시인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가 여전히 카페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걸 확인하고 나니, 지금보다 더 협소하고 덜 바빠 보였던 예전의 커피 맛이 그대로일 것 같았다. 주문 직후 빠르게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손길과 끊김 없이 균일한 줄기로 추출되는 에스프레소를 보며 바로 그 맛일 거란 기대감을 키웠다.
뚜껑을 닫고 빨대로 휙휙- 저어준 라떼 한잔을 손에 들고 달동네 언덕을 내려갔다. 걷고 걷고 또 걸어서 동네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에 발을 멈추고서 일렁이는 강과 쭉 뻗은 도로와 솟아오른 건물과 달리는 차를 바라봤다.
비가 쏟아질 듯 말듯 흐려진 하늘에 현관 앞에 말려둔 운동화가 생각나 평평한 길을 놔두고 언덕길을 올라 다시 걸었다. 언제나 이별노래가 가득한 플레이리스트에서 모처럼 흘러나오는 달달한 노래를 들으며 걷다가, 오늘 처음으로 누군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잠시 이어폰을 뺐다. 주인공은 과일트럭 아저씨였다.
“싱싱한 참외, 사과, 오렌지 한 바구니 사가요~”
확성기로 퍼지던 소리가 아닌, 살아있는 생생한 목소리가 나를 세웠다. 사실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직 이십 대인 나를 동네 아주머니로 봤나 싶어서. 그러나 곧 눈을 돌렸다. 트럭 위 바구니에 가득 담긴 오렌지에게로.
오늘의 아쉬움 하나는 과일트럭의 싱싱한 오렌지 한 바구니를 사지 못한 것
형광등 불빛 아래에 진열된 과일들만큼 껍질이(혹은 껍데기가) 반짝이지는 않지만, 트럭 위 바구니에 꽉꽉 채워 담아둔 ‘내 과일들’에 애정을 보여주는 과일아저씨(혹은 아주머니)가 좋아서, 손이 무겁도록 검은 봉다리 가득 담아주는 정이 좋아서 동네 과일트럭을 좋아한다. 또, 트럭에서 과일을 사면 판매하는 사람도 수확한 사람도 조금 더 가져가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과일트럭 앞에서 종종 머뭇거리곤 한다.
내게 남은 오늘의 아쉬움 하나는 현금을 들고 나오지 않은 것. 그래서 과일트럭의 싱싱한 오렌지 한 바구니를 사지 못한 것이다. 갈망하던 아이스라떼는 기대 이상의 맛이었고 카페인이 주는 두근거림은 기분 좋은 들뜸으로 바뀌었지만, 아쉬움을 해소해주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켜고 끄적이다가, 어제 대청소를 하면서 버릴까 말까 고민하던 박스에 눈이 갔다. 투명한 유리컵에 맛깔스럽게 담긴 오렌지주스가 박스 표면을 가득채우고 있다. 내일은 오렌지주스를 사먹거나 우연히 마주치는 과일트럭에서 오렌지를 한 바구니 사야겠다. 그래야 나와 과일트럭 아저씨에게 남겨진 오늘의 아쉬움이 해소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