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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구게 42

못가!

by 월하수희

수련이 48시간이 고비라는 의사의 말을 들은 지 만 하루가 지났고, 여전히 의식을 되찾지 못한 채,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


그러나 그녀의 두 뺨에 발갛게 생기가 올라왔고 심전도 모니터는 일정한 리듬을 유지하며 뿌듯하게 소리를 내고 있다.

회진을 온 의사의 말 역시 고무적이었다.


“내출혈은 지혈됐고, 혈압과 맥박, 체온도 안정화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이대로라면, 내일 오전 중에 계획했던 좌측 대퇴부 복합 골절 정복 및 고정 수술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련의 어머니와 가영은 무너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서로 끌어안으며 기뻐했다. 그러나 정작 의사는 머뭇거리며 그들의 표정을 외면했다.


“다만…. 척추 신경 손상이 심각해, 수술이 성공하더라도 전신마비의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광범위한 뇌 손상입니다. 의식이 돌아온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 점은.. 미리 각오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말끝에 혜란과 가영은 긴장감으로 뻣뻣이 세웠던 몸을 그대로 흘러내리듯 주저앉았고, 곧 흐느낌이 병실을 채웠다.

양쪽에서 손을 하나씩 꼭 쥐고 기도하듯 수련에게 매달려 울고 있던 그때, 들릴 듯 말 듯 조심스럽다는 듯 가느다란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문 가까이에 앉아 있던 혜란이 먼저 일어나 문을 빼꼼히 열어본다.


“누구…?”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가영, 문 틈 사이로 비친 낯익은 얼굴에 벼락이라도 맞은 듯 벌떡 일어나 문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그들 틈에 끼어 다급하게 상황을 정리하려 허둥댄다.

“아니, 안 오신다더니 어떻게 오셨어요? 잠시만요.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 어머니, 저랑 잠시만 얘기 좀.”


당황한 듯 병실을 찾은 손님에게 낮고 빠르게 인사하며 혜란을 잡고 병실에서 멀찍이 데려간다.

병원 복도 사이 비상계단에 멈춰 선 두 사람.

가영이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어머니께 미리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저분, 수련이 친모세요.”


“뭐? 뭐라고요? 수련이 친모가 여길. 왜? 아니. 수련이 친모를 임교수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예요? 우리 딸도 모르는데?.”


혜란은 심장이 벌떡거려 말까지 더듬고 있었다.

“사실… 수련이는 자신이 입양됐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친모를 찾아보고 싶어 했어요. 그전까진 단 한 번도 그런 말 한 적 없었는데…”


가영은 숨을 고르며 혜란의 눈을 피했다.


“늘 어머니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다고 했어요. 그건 정말이에요.”


그 말을 듣고도 혜란은 병원 계단 끝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고, 그 안엔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울고 나서야, 혜란은 얼굴을 들었다.

“그래서 저 여자가, 여길 왜 온 건데요?”


가영은 우물쭈물하다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수련이가 얼마 전, 저한테 부탁했어요. 혹시… 친모의 주소를 알 수 있겠냐고. 꼭 만나고 싶다고…”


말이 끝나기도 전, 혜란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울음을 터뜨렸다. 배 아파 낳은 자식은 아니었지만,

그 누구보다 사랑으로, 목숨처럼 키워낸 딸이었다. 그래서일까. 문득 스치는 배신감은 가슴을 서걱서걱 썰어내듯 아픈 것이었다.


혜란이 가슴을 치며 울자, 가영이 급히 덧붙인다.

“어머니, 제가 느끼기엔 그리움 같은 거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 거 같았어요. 꼭 묻고 싶은 게 있다고 했는데, 저는 지금까지 단순하게 자기를 왜 버렸냐 그 정도로 생각했어요. 근데 그분을 만나보니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수련이는 친모를 만나서 묻고 싶은 게 있었던걸 거예요. 제 생각이 짧았어요. 친모를 찾아 데려온다면 송장처럼 누워있는 수련이도 벌떡 일어날 거 같았거든요.”


혜란도 어느새 눈물을 그치고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그때, 병원 전체의 공기를 찢고 들려오는 비상 경보음이 있었다.


“코드 블루! 코드 블루! 1003호 응급 의료진 즉시 호출 바랍니다.”


수련의 병실이었다.

혜란과 가영이 정신없이 수련의 병실로 뛰어들어갔을 때는 이미 대여섯의 의료진들이 경련하고 있는 수련의 몸을 붙잡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느새 수련의 친모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지금 수련은 다시 위기에 처해졌다.


수련은 천천히, 아주 고요한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아무것도 없었다. 소리도, 빛도, 통증도.. 그러다 처음들은 친어머니의 목소리.


“내가 여기 왜 왔는지 알아? 내 인생 남은 마지막 핏줄을 보고 싶고, 살리고 싶어서? 모정? 아니! 그딴 건 애초에 없었어. 난 그저 네가 이렇게 비참하게 죽어가는 걸 보고 싶었어. 네가 내 품에서 떠난 후로 널 미워하고 증오하지 않은 날이 없었어. 왜냐고? 너는 내 모든 걸 앗아갔어. 내 인생이 너 때문에 망가졌어. 너 때문에 나는 내 모든 걸 잃었어. 너 때문이야. 너 만 없었으면 너만! 이제 너도 그냥 죽어! 지난 28년간 죽은 듯이 산 나처럼 이제라도 죽어! 죽어버리란 말이야!.”


눈을 떠 친어머니를 볼 수는 없었지만, 알 수 있었다. 자기를 낳아준 진짜 엄마라는 걸. 수련은 대답도 묻지도 못했다. 몸도, 목소리도 움직이지 않는 깊고 어두운 공간.


-아.. 내가 죽는 걸 바라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구나.. 모든 건 내 탓이었을까? 나만 없어지면 되는 걸까? 힘겹게 붙들고 있던 이 손들을 내가 놓으면 되는 걸까? 이 가벼운 마음은 뭘까? 그냥 이 길을 따라 걷자.-

수련은 깊은 어둠 속에서도 솟아오르는 한줄기 따갑고 찬란한 빛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산소포화도 40! 아드레날린 투여 준비!”


침대 옆에 놓인 심전도 모니터는 직선을 긋고 있었고,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끝없이 늘어진다.


삐---------------------


“안돼 수련아 안돼!.”


절규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수련은 구름 위에 뜬 듯 가벼운 걸음으로 빛을 향해 걷는다.

그 걸음 하나에 무언가 밟힌 바스락 소리가 들려온다.

동시에.


촤랑-


지훈의 무령이었다.



이제 곧 이별할 예정입니다. 반정도 달려온거 같은데 벌써. 빌런들이 등장했기때문에.. 혹시나 웹으로 이 소설을 보고 싶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시즌 1부터 정주행 해주세요. 브런치 스토리에 맞지않는 글 이라 판단했거든요. 이곳에서는 소모되지않는 소중한 글을 종이책으로 살려보겠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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