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가 정신병원에 들어간 실제 사연.
가출팸.
지금에서야 흔한 말로 그렇게 부르지만 이런 신조어가 생기기 전에도 그 그룹은 언제, 어디에나 존재했다.
이 이야기는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 사이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으로 그 당시 학교를 꽤 들썩이게 했다.
그들은 그저 공부하기 싫었던 목소리가 큰 학생들이었다. 담배를 피우며 술도 마셨지만, 누구를 괴롭히거나 그보다 나쁜 짓은 하지 않았다.
친구들 이름은 모두 알파벳으로 정하겠다. 그리고 가독성을 위해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이야기하겠다.
그들 중 가장 몸집이 작고 예쁘장한 얼굴을 지녔지만, 성격은 제일 개떡 같았던 ‘A’ 그 친구가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그들 중에는 아버지가 중소기업 사장인 친구도 있었고, 교회 목사님이 아버지인 친구도 있었다. 자라온 환경이 악마를 만들었다든지 그런 일은 절대 없었다.
그저 그 시절 그 어느 때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철없는 친구들이 마음도 모으고 돈도 모아서 보증금 없는 월세 같은 곳에 들어가 아지트처럼 지냈던 거다.
그런 곳에서 며칠씩 죽치고 있다가 부모님이 찾아오셔서 한두 명씩 머리끄덩이를 잡고 들어가 해산했던 질풍노도의 청소년 집단이었을 뿐이다.
그 부모님이 소환된 직접적인 계기가 된 사건이 있었다.
그들은 집에서 꽤 큰돈을 모아 온 모양이었다. 자기들만의 공간이 생기자 무언가 신나는 일이 가득할 것만 같았고 자유로움에 도취해 한참 즐거웠다.
하루이틀은 웃고 떠들고 정신없이 지냈다.
그러나 한여름에 에어컨도 없는 손바닥만 한 방에서 서로 부대끼며 쪽잠을 자고 주머니를 털어 짜장면만 시켜 먹던 이들이 서서히 하나둘 때 되면 따뜻한 밥이 있고 편하고 시원하게 누울 자리가 있는 집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서로 눈치만 보고 있던 그때, 이야기의 주인공 A가 당차게 이들을 이끌고 한강으로 향했다.
야밤에 강가에서 맥주를 마시며 어른 흉내를 낼 생각에 아이들은 다시 기뻐했다. A가 말했다.
“걸어가자. 우리 돈도 얼마 안 남았는데 왔다 갔다 택시비 하면 맥주도 못 사.”
“여기서 한강을 걸어갈 수 있어? 가면 새벽이겠다 너무 멀지 않아?.”
“아니야 내가 낮에 가본 적 있어. 그 배 있고 사람 많은 강남 쪽 말고 이 근처 한강도 괜찮아 거기는 가까워.”
친구들은 A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랐다. A는 그들 무리의 대장이었다.
30분쯤 차도와 도로 사이를 뛰어다니던 그들 눈에 드디어 한강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시각은 열 시가 넘었다. 간간이 운동하는 사람들과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들은 가방에 덜거덕거리는 술병들과 마른안주들을 끌어안고 설레는 맘으로 A를 따라 무작정 걸었다.
그렇게 한강 다리 밑을 걷고 또 걷던 이들은 지쳐 가기 시작했다. 앞장서 걷고 있던 A에게 친구들이 눈치를 보며 묻기 시작했다.
“아직 멀었어?.”
“아무 데나 앉아서 먹으면 안 돼?.”
A는 사실 당황했다. 여기는 몇 번이나 와봤던 곳이다. 잔디밭이 깔리고 치킨이 배달되는 저 반짝이는 올림픽대로 옆 한강이 아닐지라도 낮에는 이곳도 시원한 강물 옆에서 삼삼오오 모여 앉아 커피도 마시고 운동도 하는 활기찬 곳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보이는 것은 시커먼 강물과 흉물스러운 돌기둥들 뿐이었다. 시간은 벌써 열한 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A는 결국 작정하고 돌아서서 친구들을 향해 말했다.
“그냥 여기서 먹자 저기 다리 밑에서.”
A가 가리킨 곳은 한강대교 밑이었는데 마침 딱 앉기 좋게 널따랗고 반듯한 커다란 돌이 있었다. 용도를 알 수 없었지만 분명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콘크리트 돌바닥이었다.
다섯 명의 아이들은 아무 생각 없이 신나 하며 그곳으로 뛰어가 한 자리씩 차고앉았다.
이제는 간간이 들리던 찌릉찌릉 자전거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그저 둥그렇게 둘러앉아 가져온 술을 꺼내어 마시기 시작했다.
웃고 떠들다 보니 자정이 넘었다.
고작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얼음처럼 차가운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가 정수리까지 얼려버릴 지경이었다.
아이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쭈글쭈글한 종이컵에 술을 따라 홀짝이기만 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A가 벌떡 일어나 춤을 추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맞장구쳐주고 웃어야 할 친구들은 그러지 못했다. 취했다고 하기엔 평소 A와 너무 다른 행동이었다. 달도 숨어버린 시커먼 밤에 비릿한 강바람을 맞으며 올려다본 A의 행동은 기괴해 보이기까지 했다.
갑자기 A가 춤과 노래를 멈추고 우뚝 섰다. 그리고 곧 돌발 행동을 했다. 물가가 있는 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친구들이 일제히 일어나 뜯어말렸다.
“야 가지 마! 너무 어두워 물가로 떨어지면 어떡해!.”
“야야 쟤좀 말려봐.”
물가로 돌진하는 A를 향해 친구들이 들러붙었다. 그러나 자그마한 체구의 A는 황소 같은 힘으로 그들을 뿌리치며 아슬아슬하게 돌 더미 사이를 걷기 시작했다. 그러자 친구들이 핸드폰으로 플래시를 켜서 A의 앞을 비춰주며 함께 조심스레 내려가게 되었다.
“어! 저거 뭐지?.”
A가 물가 근처에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마치 그것을 향해 온 것처럼 반가운 목소리였다.
시커먼 강물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정말 그곳엔 정신이 번쩍 들만한 무언가가 있었다.
A는 용감하게 정신을 다잡고 비틀거리면서도 그곳에 제일 먼저 당도했다.
“와 대박! 이거 새건대? 먹어도 될 거 같아. 누가 놓고 갔나 봐.”
아닌 게 아니라 강물과 산책로 사이 돌무더기 위에 가지런히 놓인 음식들은 마치 누군가 지금까지 여기서 이걸 차려놓고 먹다가 가버린 것처럼 먼지 하나 없이 새것이었다.
그러나 곧 나머지 네 명의 친구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 음식들 옆에 놓인 하얀색 국화꽃을 보고 말이다.
C 가 말했다.
“야 저거 그거 아니야? 누구 죽었을 때 그 자리에..”
“어 맞는 거 같아 옆에 꽃도 있는 거 보니까 게다가 국화꽃이잖아.”
“야 기분 나쁘다 무서워 가자. 우리 가자.”
덩치는 산 만 해서 겁은 제일 많았던 D가 A를 붙잡고 끌어올렸다. 그러나 A는 그 자리에 박히기라도 한 듯 꿈쩍을 안 했다.
“너네 너무 쫀 거 아냐? 케익 상자도 있는 거 보니까 저건 연인들끼리 여기 앉아 먹고 놀려다가 싸우고 그냥 간 거야.”
D가 말했다.
“연인들끼리? 주고받는 꽃이 하필 국화꽃이라고? 그건 너무 억지다. 그냥 가자. 너 저런 간식 줘도 안 먹잖아. 갑자기 왜 그래?.”
그러게, 왜 그랬을까?
A는 고집을 부렸다. 어쩌면 친구들 앞에서 강해 보이고 싶었던 단순한 호기였을지도 모르겠다.
“네 들 말이 다 맞다 쳐. 근데 음식이 무슨 죄야? 안 죽어 안 죽어. 내가 먹어서 증명할게.”
덥석 쥐어 들은 것은 초코파이 비슷한 가공식품이었다. 순식간에 말릴 새도 없이 우악스럽게 봉지를 뜯어 아구아구 씹어 삼킨 A.
멍하니 친구들은 그 행동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심각한 표정으로 밖으로 나가 모여든 A를 제외한 네 명.
누구 하나 쉽게 입을 열 수는 없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삐죽 대던 B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겨우 하는 말은.
“술이 안 깬 건. 아니겠지?.”
그 말에 나머지 셋이 동시에 어이없어하며 하고 싶었던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야 무슨 술? 쟤 한숨도 안 잤어.”
“나도 계속 뒤척였는데 쟤 저러고 밤새 있더라. 내가 뭐 하냐고 자라고 해도 쳐다보지도 않더라니까.”
“야 우리 쟤 때문에 다 못 잤어! 쟤 왜 저러는 거야? 말을 시켜도 쳐다도 안 봐. 삐졌나?.”
“뭘 삐져? 삐졌다고 아침까지 저러고 있다고? 난 솔직히 무서워! 대체 언제부터 쟤가 저랬지?.”
“난 기억나, 쟤가 집에 들어오면서 문턱에 걸려 넘어졌잖아. 그때부터 애가 저렇게 얼이 빠져서 앉아만 있더라니까.”
“그런가? 한강에서 택시 타고 올 때는 괜찮았나?.”
“택시 아저씨한테 사정사정해서 뒤에 네 명이 탔잖아, A가 조그마니까 가운데 앉았는데. 그래서 그런가? 난 뒤통수밖에 못 본 거 같아.”
그들의 고민은 상당히 깊었다. 그만큼 A의 상태는 심각했다.
물도 안 마시고 밥도 안 먹고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돌처럼 굳어서 그저 앉아만 있었다.
그들이 기겁하고 자지러진 것은 오후쯤이었다.
안절부절못하며 A를 불러도 보고 흔들어도 보고 별짓을 다 해도 A는 퀭한 눈으로 창밖만 보고 있었다.
“야 너 진짜 왜 그래?. 어.. 어??.”
A를 흔들던 B는 순간 깜짝 놀라 주저앉더니, 엉덩이를 질질 끌며 뒤로 기어갔다.
A의 몸은 미동도 없었고, 그 아래로 연 노란 소변이 흘러나오며, 바닥에 둥글게 번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충격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집을 나왔고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 불량 청소년이었지만 그들도 그저 아이들일 뿐이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부모님을 부르는 것뿐.
A의 부모님이 와서 A를 태우고 갈 때 뒷좌석에서 비친 A의 마지막 모습은 그들 평생 잊지 못할 만큼 소름 끼치는 것이었다.
A는 이제까지 눈 한 번 마주치지 않았던 아이들을 한 명씩 바라보며 까딱까딱 손짓했다.
마치 따라오라는 듯이.
가출했던 학생들은 정학 처리를 받고 학교에 돌아왔지만 A는 그 후로 볼 수가 없었다.
대신 제일 친했던 B가 매일매일 소식을 전해줬다.
B는 처음 가출하자고 A를 꼬드겼던 죄책감 때문에 A의 병문안을 매일 갔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날 A를 데리고 그의 어머님과 함께 무속인을 찾아가게 된다.
B는 아버지가 목사였고, 그런 요란한 곳은 처음이라 그저 따라는 갔지만 무서워 무당의 얼굴도 못 쳐다볼 지경이었는데 그보다 무서웠던 건 무당의 첫마디였다.
“너는 교회 다니는 년이 여기까지 뭐 하러 따라와? 저기 뒤에 가 있어.”
B에게 한 말이었다. 밖으로 혼자 나가는 것도 무서웠던 B는 A와 A엄마 뒤에 조용히 앉아있었다.
그날 일을 B는 무겁고 진지하게 전해줬다.
“조금 뒤에 앉아서 듣고만 있었는데 무당이 제일 처음 A한테 한 말이 뭔지 알아?.”
모두가 숨도 쉬지 않고 B의 다음 말만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가면 안 되는 곳에 가서 해서는 안 될 짓을 하고 절대 처먹으면 안 되는 것까지 먹었어! 쯧쯧쯧... 사람 구실 할 수 있으려나?.-
한강에 같이 갔던 친구들은 누군가를 추모했을 장소에 가서 기괴하게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고 남의 제사 음식까지 훔쳐먹은 A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 침묵하고 얼어있을 때 무당이 전해준 다음 말에 친구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한 둘이 아니네! 물에 빠져 죽은 수살귀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어. 거기 너! 계속 같이 있었으면 너도 지금 이 꼴이 됐을 거야 부모님께 감사하다고 빌어라.-
B는 그 후로 아주 독실한 신자가 되었다.
친구들은 마지막에 A가 손짓했던 모습이 A가 아닌 거 같았다고 했다. 정말 친구들을 따라오라고 손짓한 건 수살귀들이었을까?
그리고 내가 들은 A의 마지막 흔적은 정신병원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 후로 그 친구가 어떻게 됐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부디 잘 지내기를 몹쓸 것 다 떨쳐내고 밝고 씩씩했던 모습으로 돌아와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