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악습의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
여느 남자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듯,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볼일을 보는 것에는 상당히 섬세한 조작이 요구된다. 아직 반 밖에 뜨지 못한 눈으로 흐릿한 조준점을 빗나가지 않게 조준하는 것은 어려운데다 썩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것때문에 잔소리를 듣고 골치를 썩여본 남성들은 대개 함께 생활공간을 공유하는 여성과 타협을 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이것이 아침만되면 도무지 뜻대로 되질 않으니, 남자도 변기에 앉아서 볼일을 보는 것으로 말이다. 문제는 이마저도 잊어버리거나 귀찮아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아주 사소하지만 분명한 '악습'으로,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자에게 피해를 주어 갖은 분열과 감정적인 대립을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이러한 악습에대해 이야기 하기전에, 한가지 예를 더 들수 있다. 매년, 새해의 첫 아침이 밝아올때마다 우리가 다짐하는 것들이다. '금연', '다이어트', '공부' 등등, 이 다짐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목표하는 사항이면서도 결국 의지나 노력의 부족으로 이루지 못하는 것들이다.
그렇게 이루어지지 못한 목표들은 결국 내년으로 미뤄지며, 내년의 목표는 또다시 내후년을 기약하게 된다. 그 이유는우리가 가지고 있거나, 혹은 외부에 자리잡은채 우리의 행동을 제한하는 악습의 원인들이 목표를 향한 우리의 노력을 방해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이를 조금 더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악습은 의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일상속에서 나의 품위와 삶을 해치는 존재이다. 또 이것들은 방치해둘수록 점점 더 '나자신'이 되어가 삶의 깊숙한 곳에 아주 사소한 영역으로 굳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악습들을 두고 우리는 '나쁜 버릇'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가 행하는 악습들은 소위 나쁜버릇이라고 불러줄 만한 것들 뿐인가?
결과적으로는 우리의 손끝, 입술 사이에서 발생하며, 더 이상 버릇들이라고 부를 만한 수준의 상황을 불러일으키는 악습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 원인은 다양하다. 현실적인 필요에서 비롯되고ㅡ 나보다 강한 힘을 가진 누군가의 명령이었으며, 사회적인 궁지에 몰려 선택한 궁여지책이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거의 사회적으로 조성되어 우리의 의지와 상관 없이 벌어지는 악습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의 삶을 좀먹는 악습들은 실제로 사회적인 것보다 자신으로부터 나오며, 그것들은 나 자신의 이기적인 의도, 성찰없이 폐쇄됀 철학, 독선적으로 뒤틀린 도덕관, 절제되지 못한 감정과 편협한 사고방식, 또 고정관념이라는 인식의 틀로 세계를 짜맞추려했던 오만의 결과라는 것을 말이다.
여기에 간단한 일화가 있다. 바로 은연중에 자신의 삶이 되어버린 악습의 원인과 새로운 삶 사이에서 소금기둥으로 변해버린, 룻의 아내에 관한 이야기이다.
룻은 하느님이 멸망시키기로 작정한 죄악의 도시인 소돔에 살고 있었다. 룻은 소돔에 사는 유일한 의인이었는데, 하느님은 룻에게 소돔의 심판이 있기전에 소돔을 떠나라고 미리 일러주셨다. 그래서 룻은 소돔을 떠나게 된다. 사실 룻도 소돔의 모습이 죄악에 물든 모습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저 익숙한 삶의 자리었을 뿐이었다. 소돔에 낭자한 죄악이 두려웠지만, 오랫동안 살아온 만큼 굳어진 일상의 익숙함이 그동안 그를 움직이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런 그에게 하느님은 다른 성읍으로 도망치는 것을 허락하셨다. 단, 떠나는 중에 절대 뒤를 돌아보아선 안된다고 하셨다. 그렇게 그는 아내와 딸들을 데리고 악습과 악행의 본거지로부터 도망을 치게 된다.
심판이 시작되고, 신의 분노가 불과 유황이 되어 소돔에 내렸다. 공기중에는 유황냄새와 소돔 사람들의 울부짖음으로 무겁게 가라앉아있었다. 룻은 가족들과 함께 떠나면서 그 소리를 모두 들었고, 떠나는 중에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하느님의 경고를 따라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반나절뒤면 새로운 성읍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될 터였다. 그러나 룻의 아내는 갑자기 뒤를 돌아보고 만다. 뒤늦게 뒤를 돌아보면 소금기둥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며, 그녀는 순식간에 소금기둥으로 변해버린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호기심 많은 인간이 신의 명령을 거슬러 일어나는 상황만을 그리고 있지 않다.
필자는 룻의 아내가 그리하였던 '뒤를 돌아봄'이라는 행위에 집중해보고자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뒤돌아보게 만들었을까? 아마 '익숙함'이 그녀를 붙잡았을 것이다. 일상의 익숙함. 즉 룻의 아내에게는 떠나오고 있는 죄악의 도시가 악한 곳일지라도 그녀가 매일 눈을 떠 아침을 시작하고 또 끝마치는, 익숙한 삶의 현장이라는 의미가 강했던 것이다.
우리는 룻의 아내를 두고 미련하다고 욕할 수 없다. 오히려 지극히 인간적이고, 우리와 닮아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로운 삶을 꿈꾸면서도 우리의 삶을 좀먹는 악습의 그 익숙함을 쉬이 떨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을 떨쳐내지 못하는 이상, 우리는 우리가 지향하고 또 룻의 아내가 꿈꿨던 '새로운 삶'의 영역으로 나아갈 수 없다. 떨쳐내고, 떠나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우리는 우리의 삶의 깊숙한 곳을 이미 꿰차고 있는 옛 악습의 향기를 맡고는 다시 홀린듯 제자리로 돌아오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하루, 일주일, 한 달, 한 해 동안 반복되면서 우리는 점점 소금기둥이 되어간다.
소크라테스도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성찰은 자신의 마음을 닦고 반성하여 보다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성찰하지 않는 삶은 정지해있는 삶이며, 광야 한 가운데에 멀뚱히 굳어있는 소금기둥과도 같다. 옛 악습과 새로운 삶의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오도가도 못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또다른 '교훈적인 일화'로 그 자리에 남게 될것이다.
사실 나도 그것이 가장 두렵다. 변화할 수 있는 삶을 성찰해놓고도 변화시키지 못한 삶, 그것이 소금기둥의 삶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