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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Dec 05. 2018

12 모든 것을 책으로 만들려는 중독

당신의 책을 만들어 드립니다.

12

사람들마다 관심사가 다르고, 그 관심 대상은 아무리 멀리에 있어도 내 눈에 가장 먼저, 귀신같이 잘 들어온다. 게임이 좋으면 게임에 나오는 음악만 나와도 귀가 쫑긋대고, 사랑하는 연인은 수백 명이 모여 있는 가운데에서도 금세 찾을 수 있으며, 좋아하는 음식 냄새는 문밖에서도 알아맞힌다. 이렇게 무언가에 빠져 있는 순간에는 남들이 잘 보지 못하는 것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 그것이 나를 끌어당기기라도 하듯 말이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책이 관심 대상이다. 당연한 말이다. 그 중에는 책의 물성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전통적인 형태(종이)는 물론이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변해가는 책의 새로운 물성을 즐기기도 한다. 또 ‘읽기’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 책 만드는 과정이 좋은 사람, 저자와의 소통을 즐기는 사람, 새로운 주제에 가슴 뛰는 사람도 있다. 이유야 조금씩 다르지만 출판인들은 ‘책’에 관심이 있고, 퇴근한 뒤에도 그 관심을 잘 끊어내지 못한다. 이는 콘텐츠를 다루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퇴근한 뒤에도 텔레비전, 인터넷, 모바일 등으로 콘텐츠에 계속 노출되어 새로움의 늪에 쉽게 빠져 버리기 때문이다.


책을 만드는 사람은 늘 ‘새로운 무엇’을 책으로 만들어 버리고(?) 싶은 열정에 휩싸인다. 어떤 주제, 키워드, 인물, 이슈, 니즈 등 자신의 마음에 들어온 어떤 것을 책으로 만들고 싶어 안달이 난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본인만 하면 좋겠는데, 사람 마음이 다 비슷비슷하기에 본인이 생각하면 보통은 누군가 이미 했거나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 아무리 빨리 스타트를 끊었다고 해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한꺼번에 그 주제나 인물에 몰리면 그것도 문제다.


몇 년 전 후배 기획자가 퇴근 후 집에서 오락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에 나온 사람과 그의 콘텐츠가 무척 새로워 보였다. 후배는 그 새로움에 마음을 빼앗겨 다음날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그 사람의 연락처를 겨우 알아내 연락을 했다.

“저, 선생님 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다행히 일은 잘 성사되었고 출간된 책도 어느 정도 이슈를 받고 판매도 괜찮았다. 그런데 뒷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후배와 간발의 차이로 몇 개의 출판사들이 줄을 이어 연락을 했는데, 그 저자는 가장 먼저 연락을 준 후배와 함께 일을 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라고 했다. 저자의 생각이 명확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후배는 다른 출판사들과 겨루기(?)를 조금 더 해야 했을 것이다.


책을 만드는 사람, 특히 편집자는 새로운 주제, 키워드, 인물, 이슈, 니즈 등을 만나면 그 옆에 책을 슬쩍 놓으며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이것을 책으로 만들 수 있을까?’

‘이 사람을 저자로 만들 수 있을까?’

‘책으로 만들면 팔릴까?’


보통은 이런 질문만 하면 되었다. 책이 미디어의 우두머리(?) 역할을 할 때까지만 해도 이런 질문만으로 충분했다. 정보가 필요할 때도 책, 가치관 정립을 위해서도 책, 정서 고양을 위해서도 책, 어떤 이론과 개념을 배울 때도 우리는 책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이런 앎과 깨달음의 역할을 다른 미디어에게 내주고 있다. 이것은 책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보다 책의 내용이 부실해졌을 리도 없고 책을 쓰고 만드는 사람들이 덜 똑똑해서도 아니다. 그저 시대가 바뀐 것이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완전히 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책이 될 수 있었던 주제도 이제는 ‘이것이 책이 되면 유튜브와 경쟁할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해 봐야 한다. 또한 ‘책으로 꼭 나올 필요가 있을까?’ 하고 질문해 봐야 한다. 물론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은 여전히 정보, 가치, 정서, 개념 등을 얻고자 할 때 책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들마저도 꼭 책이 아니어도 되면 과감히 책을 버리고 다른 미디어를 선택한다. 더 쉬운 쪽으로 더 편리하고 돈이 덜 드는 쪽으로 말이다. 젊은 세대는 말할 것도 없다.

책을 만드는 사람은 위 세 가지 질문에 앞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아야 한다.


‘굳이 이것을 책으로 만들어야 할까?’


예를 들어 유튜브 1억뷰를 달성한 콘텐츠가 있다고 하자. 그것을 책으로 만들었을 때 1억 권이 팔릴까? 그것을 본 사람들은 독자가 아니다. 또한 그 콘텐츠는 유튜브에 있을 때만 빛이 나고 더 사랑받을지 모른다. 물론 여러 미디어의 담장을 넘나들며 오랫동안 사랑받는 콘텐츠도 있기는 하다.


이런 사실을 안다고 해도, 책 만드는 사람은 어떤 것이든 일단 책으로 만들고 싶다. 새로운 무엇을 보는 순간 머릿속에는 이미 한 권의 책이 꽂혀 있기도 하다. 뭔가에 중독된다는 것, 건강만 해치지 않으면 참 행복한 일이다. 그렇다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책으로 만들 수는 없다. 수많은 미디어가 앞다투어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려는 시대라서 그렇다. 이는 책 만드는 사람들만의 고민도 아니다. 텔레비전, 라디오, 컴퓨터, 모바일을 통해 나오는 모든 콘텐츠의 제작자들도 같은 고민을 한다. 그러니 책을 만드는 사람의 질문도 이제 달라져야 한다.


‘무엇을 책으로 만들어야 사람들이 읽을까?’

‘무엇을 책으로 만들어야 책을 읽지 않는 40퍼센트의 비독자들이 읽으려고 할까?’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오직 책만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뭔가에 한번 빠지면 잘 헤어나오지 못하는 당신,

그런 당신이 출판일을 하면 또 그렇게 될 확률이 높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다 보면 무엇은 만들고 무엇은 만들면 안 되는지 아는 순간이 올 테니까요. 물론 그것도 정답은 아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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