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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Dec 21. 2018

13 밤을 새워 누군가에게 질문할 수 있다면

당신의 책을 만들어 드립니다

13

책을 만들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있다. 주제와 그것을 쓸 저자이다. 출판인에게 저자란 기획한 바를 독자의 눈높이와 입맛에 맞게 잘 쓸 수 있는 사람이다. 물론 요즘은 책을 함께 팔아 줄 저자, 즉 인기와 일정 수의 팬덤이 있는 저자가 환영을 받는다.


기획한 바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잘 소화하여 쓸 수 있으며, 강의든 SNS든 활발히 활동하여 책을 함께 팔아 준다면 더 이상의 저자 조건은 없다. 그런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출판사의 입장이다.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도 이 조건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겠지만, 오직 편집자를 위해 한 가지를 더 추가해야 한다. ‘편집자와 잘 맞는 저자’여야 한다. 잘 맞는다는 뜻은 소통이 잘되는 관계이다. 다시 말해 계속 이야기하고 싶은 저자, 자꾸만 물어보고 싶은 저자, 밤을 새워 이야기하고 싶은 저자….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 중에 계속 뭔가를 물어보고 싶은 이가 있다. 지식이 많아서도 아니고 특별한 통찰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계속 그 사람의 목소리로 뭔가 듣고 싶기 때문이다. 반면에 똑똑하고 다방면으로 아는 것도 많은데다 사회에서 명성도 있는데 한두 시간쯤 되면 얼른 자리를 파하고 싶은 사람도 있다. 이 둘의 차이를 명확히 말할 수는 없다. 사람마다 이야기 나누고 싶은 유형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꾸만 말을 걸고 싶고 질문을 하고 싶다면 적어도 싫은 사람은 아닌 것이다. 서로 관심이 있고 좋아하는 관계라야 오래오래 말하고 싶은 건 당연하다.


일을 하면서 그런 사람을 만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비즈니스로 만난 사람과 인간관계를 꿈꾼다면 아마추어 소리를 들을 게 뻔하다. 또 인간관계가 유지된다 싶다가도 불현듯 비즈니스의 얼굴로 바뀌고, 괜한 상처에 마음의 빗장만 쓸데없이 굳건하게 닫아 건다.


그런데 책을 만들 때는 조금 다르다. 편집자와 작가가 비즈니스 관계인 건 맞지만, 그들은 조금 특별하다. 편집자는 작가가 밤새 질문하고 싶은 사람일 때 책을 만들어 볼 생각을 한다. 실제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그럴 정도로 저자가 가진 생각을 선호하고 공감하고 존경할 때 책을 만들고 싶다. (물론 어쩔 수 없이, 회사에 의해, 상사의 지시에 의해 책을 만들기도 한다.)


그 둘은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서로의 생각과 방향을 가장 잘 알아야 하는 관계이다. 편집자에게 책을 만드는 과정은 저자의 생각을 알아가는 시간이다. 그러니 어떻게 질문이 나오지 않을 수 있을까. 저자의 생각을 알고 있어도 그 사람이 가진 것을 더 끄집어내 그것을 책에 담기 위한 질문을 하게 된다. 책을 만드는 전 과정에서 생산된 질문을 통해서 저자의 생각이, 문장이, 글이, 그리고 책이 만들어진다.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저자, 밤새 질문을 던져 보고 싶은 저자, 그리고 그 질문에 생각지도 못한 답변을 내놓는 저자와 만나는 행운은 저자 그 이상의 존재를 얻는 일이다. 편집자는 그 속에서 사람과 세상을 배우고, 그 경험을 통해 새로운 책을 만들어 볼 힘을 얻는다.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에게 궁금한 것이 너무 많다고요? 질문이 한 트럭은 된다고요?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충분합니다. 긴 말 않겠습니다. 편집자가 되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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