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유진 Jan 04. 2019

15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요?

당신의 책을 만들어 드립니다

15

“이것저것 재능이 많은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을까? 한 가지만 파는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을까?”

이 질문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우선 성공의 기준이 필요하다. 편의상 세속적인 성공, 즉 사회적 명성이나 부(富)로 놓고 보자.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도 이 질문에는 대답하기가 곤란하다. 재능이 많거나 또는 한 가지만 있다는 건 크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을 보아도 ‘저 사람은 재능이 많은데 왜 저렇게 일이 안 풀리지.’, ‘재능이 많으니 할 일 많아서 좋겠다.’하는 경우도 있고, ‘저 사람은 저거 하나로 평생 잘도 써먹고(?) 사네.’, ‘에고, 어쩌려고 저거 하나만 잡고 있어. 이제 다른 것 찾아봐야지.’ 하기도 한다. 그러니 재능이 많다고 의기양양하거나 또 재능이 하나뿐이라고 탓하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뻔한 소리지만 다 자기하기 나름이다.


이제 질문은 바꿔 보겠다.

“이것저것 재능 많은 사람이 글(책)을 쓸 확률이 높을까? 한 가지만 파는 사람이 글(책)을 쓸 확률이 높을까?”

인생의 질문 앞에서는 대답을 명확히 하지 못했지만, 이 질문에는 바로 대답할 수 있다. 후자가 확률이 높다. 물론 재능이 다양한 사람도 글이나 책을 쓸 수 있다. 그런데 나의 경험에 비춰 봤을 때, 그리고 그동안 만나온 저자들의 이력을 볼 때 ‘한 가지만 파는 사람’이 글(책)을 쓸 확률이 조금 더 높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조차도 직접 만나 보면, 기다렸다는 듯 이것저것 자신의 관심사를 꺼내 보이며 책이 될 수 있는지를 묻곤 한다.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 가장 대하기 어려운 저자는 권위적이거나 출판인을 자신의 비서쯤으로 생각하는 이가 아니다. 권위적인 면은 어느 선만 넘어오지 않으면 참을 만하다. 또 글쓰는 사람들 특유의 기질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기에 인성의 문제가 아닌 다음에야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 또 편집자를 자신의 비서로 생각하는 저자에게는 그 역할에 대해 차차 알려 주면 되므로 그것도 큰 문제는 아니다. 물론 인내심은 필요하다.


가장 힘든 저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책에 다 넣고 싶어 하는 전지전능, 다재다능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것저것 다 쓰고 싶어 한다. 사실 이런 면은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알게 된다. 자신의 능력이 얼마나 다양한지 굳이 보여 주지 않아도 되는데, 마치 면접을 보러 온 사람처럼 자신의 능력을 한번에 쏟아내기 시작한다. 이들은 과시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일 수 있다. 기선을 제압하고 싶거나 단순히 잘난 척을 좀 하고 싶을 수도 있다. 차라리 이런 이유라면 괜찮다. 문제는 그들 스스로 정리가 안 되어 있을 때다. 또 저자가 스스로를 잘 모를 때이다.


두 번째, 세 번째 책을 쓰는 사람도 예외는 아니지만, 특히 책을 처음 쓰는 사람들이 자주 빠지는 늪이다. 또는 아직 책을 쓰지 않은 예비 저자들도 이 늪에 잘 빠진다.

“무엇에 대해 쓸 생각이세요?”라는 말은 사실 사이즈가 엄청나게 큰 질문이다. 이 질문을 받고 당황스럽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이다. 이런 말을 던지는 출판인도 단단히 마음을 먹고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이 질문을 받은 사람 중에 많은 이들이 ‘이것도 쓰고 싶고, 저것도 쓰고 싶고, 요것저것 다 쓰고 싶다.’고 대답한다. 아직 정리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임을 보여주는 대답이다. 그래서 이것저것 말은 많이 하는데 알맹이가 없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어떤 것을 잘 쓸 수 있는지 모르는 상태이다. 쓰고 싶은 것과 쓸 수 있는 것을 혼동하고 있기도 하다.


이럴 때 편집자의 역할이 빛을 발할 수 있다.

“선생님, 대체 무엇에 대해 쓰고 싶으신 건가요?”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고 싶지만, 우회적으로 1단계 질문을 먼저 던져 보는 것이다.

“선생님은 제가 보기에 000에 일가견이 있는데, 제가 잘 본 건가요?”

1단계 질문은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저자에게 던져보면 좋다. 또한 기획을 하기 전에 ‘이 사람을 저자로 만들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때도 유용한 질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재능’은 작가만이 쓸 수 있는 특별한 어떤 것이다. 아직 다듬어지지는 않았으나 책으로 나올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함께 선별하고 뽑아 보는 것이다.


그다음은 2단계 질문이다.  

“선생님의 콘텐츠가 A, B, C, D, E인데, 이것들 중에 선생님 마음속에 1등은 무엇일까요?”

이 질문은 왜 필요할까? 사람들은 많은 일을 하고 있어도 자기 안에 핵심 키워드를 품고 있기 마련이다. 단지 표현하지 못할 뿐이다. 또한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 핵심 키워드를 위해 나머지 일들을 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도 그걸 본인만 모르고 있다.

그럴 때 그 핵심 키워드를 꺼내는 일을 편집자가 할 수 있다. 그것이 기획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책 기획은 새로운 것을 발명하는 일이 아니다. 세상에 이미 존재하는 것 중에 한 가지를 골라내는 일이다. 자신이 무엇을 갖고 있는지(또는 잘하는 사람인지) 모르는 이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는 일이다. ‘당신의 콘텐츠는 사실 00이에요.’라고 북돋아 주는 일이다. 흩어져 있는 누군가의 생각을 한 바구니에 잘 정리해서 담는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무엇’을 가지고 있다. 편집자는 그 ‘무엇’을 발견해 주고 정리하여 책의 형태로 만드는 사람이다. 참으로 좋은 일이지 않은가. 누군가의 무엇을 발견하고 정리하는 일은... 그래서 편집자는

누군가의 은인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의 말을 듣고 정리를 잘한다고요? 누군가의 단점보다는 장점은 잘 본다고요? 이 두 가지 재능이 당신을 책 만드는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겁니다. 어떤 사람이 잘하는 것을 찾아주는 일, 어때요? 세상 뿌듯한 일이지요?

매거진의 이전글 14 작가, 편집자, 독자의 동상이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