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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Feb 20. 2019

16 쓰는 사람은 내가 아닙니다만

당신의 책을 만들어 드립니다

16.


글은 저자 혼자 쓴다. 그러나 책은 저자 혼자 쓰지 못한다. 소설이나 시, 연구서 등 문학이나 특수한 몇 분야를 제외한 대부분이 그렇다. 기획자 또는 편집자와 함께 한다. 최초의 독자(들) 또는 조언자 누구라도 함께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 의견을 나누고 조율하여 책에 맞는 목차를 정하고, 어떻게 전개할지, 또 이 책의 독자를 누구로 할지 최종 결정하기고 한다. 여기서는 그들을 출판인, 즉  기획자

또는 편집자로만 정해 본다.


이때 저자가 목차를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편집자가 그 역할을 하기도 한다. 특히 초보 저자나 저자가 목차를 잘 만들지 못할 때 대신 초안을 잡는다. 그리고 기획안에 이미 목차가 들어가기 때문에 이를 작성하는 편집자는 목차를 대략 써 보기 마련이다.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이 목차를 쓴다? 과연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아니다. 좋은 점부터 찾아보자. 해당 분야의 전문가인 저자보다 베테랑 편집자가 목차를 더 잘 만드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아무리 자신의 분야에서 으뜸이고 전문가라도, 대중을 상대로 책을 쓴다는 전제하에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럴 때 저자의 콘텐츠를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 경쟁도서와 시장 상황을 고루 알고 있는 편집자가 목차를 뽑는 게 안전할 수 있다. 물론 저자의 콘텐츠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것을 책으로 잘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을 전제로 한다. 또한 저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보완하는 목차를 만듦으로써 내용을 독자 입맛에 맞추는 탁월함까지 있다면 책 판매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여기까지가 장점이다. 다음은 문제점이다.


자칫 탁상공론 목차가 될 수 있다. 편집자가 제아무리 똑똑하고 베스트셀러를 만들어온 경험 많은 베테랑이라도 글은 저자의 몫이다. 그런데 그런 저자를 대신해 목차를 만들 때 자료 조사를 철저하게 하고 독자를 너무 많이 배려한 나머지, 저자가 쓸 수 없는 목차를 내놓는 실수를 한다. 좀 더 그럴듯하게 만들고 싶고, 시장 상황에 맞추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산으로 가는 것이다.


사실 편집자들은 “편집자니까 글을 잘 쓰시겠어요.”라는 말을 가장 싫어한다. 그들의 업무 중에 글쓰기 양은 여타 다른 회사원들과 비슷한 수준이다. 글을 읽어 내는 직업이므로 읽기와 쓰기에 늘 가까이 있을 뿐, 쓰기 양이나 실력이 남다른 건 아니다. 물론 글을 잘 쓰고 책을 출간한 편집자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그렇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목차는 잘 잡지만, 그것이 쓸 수 있는 내용인지 아닌지, 또 쓸 수 있다고 해도 집필의 밀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상상만 할 뿐이다.


물론 편집자는 책이 나오기까지 작가 옆을 누구보다 오랫동안 지키는 사람이다. 작가와의 호흡을 위해 그들을 위로하고 감정 상태를 살피기도 한다. 그래서 책의 내용이나 집필 당시의 감정(심지어 그때 벌어진 가정사, 심신의 건강까지)을 깊이 교류한다. 그래서 그들은 입버릇처럼 말한다.

“선생님, 원고 쓰느라 고생 많으시죠?”


그러나 직접 쓰지 않는 이상, 쓰는 고통을 낱낱이 알 수는 없다. 그래서 간혹 저자가 쓸 수 없는, 탁상공론식 목차를 만들어 저자를 난감하게 하는 것이다.

모든 산업이 마찬가지겠지만, 기획이나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은 현장보다는 책상 위가 더 친숙하다. 편집자는 출판 현장에 있지만 집필 현장에는 없다. 작가님 혼자다. 그런데 편집자는 집필 현장에 있는 것처럼 기획하고 행동하고 말해야 한다. 그것이 의무이다. 편집자는 직접 쓰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책이 나오기 전까지 필자의 마음으로 함께 기획하고 목차를 만들며, 함께 고치고 완성한다.


무리이며 힘든 일인 줄 알지만 편집자는 글쓰기 연습을 해야 한다. 책을 내서 작가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저 조금씩 써 보라는 뜻이다. 편집자는 매일 남의 말과 글을 읽기에 스스로 글을 어느 정도(?) 쓴다고 착각한다. 부끄럽지만 나도 그랬다. 그런데 막상 써 보면 생각이 180도 달라진다. 그건 그냥 추상적인 상상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게다가 쓰기 실력이 보통의 직장인들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는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 된다. 이 또한 나의 경험이다.


편집자는 글쓰기 연습을 왜 해야 하는가. 책을 잘 만들기 위해서 한다. 탁상공론식 기획안과 목차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한다. 저자의 문장과 문맥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서 한다. 진심으로 “선생님, 원고 쓰느라 고생 많으시죠?”라고 말하기 위해서 한다. 그렇다고 너무 열심히 쓰지는 말자. 그러다 책을 내는 수가 있다.  


“편집자가 글도 써야 하다니 할 일이 너무 많은 것 아닙니까?”라고 깜짝 놀라 묻는 분들에게 희소식. 직장인이 되면 그 정도 양의 글은 다 쓰고 삽니다. 걱정 마세요. 매일 글을 읽는 게 일이니 조금만 연습해도 일취월장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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