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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Oct 26. 2018

03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많으시다구요?

당신의 책을 만들어 드립니다.


03

출판 종사자 중에 편집자들은 대개 이런 사람들이다. 또 이런 사람들이 편집자가 된다.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책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

-언어를 다루는 일에 소질과 관심이 있는 사람

-특정 분야의 전문가로 해당 책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

-국문학과나 문예창작과 등 어문 계열 전공자

-한때 글을 좀 썼는데 작가가 되지 못한 사람

-기타 다른 이유


다양한 이유로 편집자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기본적으로 언어나 책에 관심이 있다. 그러니 전공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고, 한때 작가를 꿈꿨던 사람도 꽤 많다. 문제는 언제나 이 ‘한때’이다. 말이나 글에 ‘한때’가 나왔을 때 현재가 행복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예를 들어 ‘내가 한때는 총망받던 예비 작가였는데 말이지.’ 이렇게 ‘한때’로 시작한 생각의 꼬리에는 그보다 더 어두운 꼬리가 물리곤 한다.


‘언제 한 번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나.’ ‘내가 언제까지 다른 사람의 글이나 고쳐야 하지?’ ‘이번에는 어느 공모전에 글을 내지?’ ‘내 친구 000는 이번에 또 책을 냈네?’

필자는 다행히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성격이나 능력으로 볼 때 작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22살 꽃다운 나이에 일찍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작가를 꿈꾸는 게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A를 하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B를 해야 하면 그 일이 재미없기 때문이다. A를 사귀고 싶은데 울며 겨자 먹기로 B를 사귄다고 생각해 보면 그 마음, 짐작하기 쉬울 것이다.  


과거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편집자이면서 작가이고, 작가이면서 편집자였다. 또 편집자이면서 작가인 사람들이 출판사의 대표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편집자인데 글을 잘 쓰고, 작가인데 편집도 잘했다. 어쨌든 책에 관해서 누구보다 전문가였고, 가난하지만 청빈한 엘리트의 대명사였다.

아직도 이 같은 풍토가 남아 있어서 편집자도 으레 글을 잘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잘 쓰면 좋다. 편집자는 원고를 바르게 고치고, 독자들에게 책을 알리기 위한 글도 써야 한다. 다행히 이 둘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도, 어차피 글을 읽어야 하는 직업이므로 편집자와 글은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화랑의 큐레이터가 그림을 보는 능력 외에 그림도 잘 그릴 줄 알아야 할까? 그림을 그릴 줄 안다고 안 될 것은 없지만, 그림을 꼭 그릴 줄 알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으면 큐레이터에 입문하려는 사람이 절반 이상으로 줄어들 것이다.


편집자도 이제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글과 가까운 직업이기는 하지만 꼭 글을 잘 써야 하는 직업은 아니라고! 글을 고치고 다듬는 일을 하지만, 작가의 글을 무작정 고치는 게 주목적은 아니라고! 편집자가 글을 잘 고쳤다고 그 책이 편집자의 책이 되는 것도 아니고, 잘 고쳐 보겠다는 선의였어도 그것을 잘못했을 때 작가만의 색깔에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은 좋은 문장과 구조가 인기 있는 시대가 아니다.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에 초점이 더 가 있기에 ‘글’이나 ‘문장’ 자체에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 사실 그럴 시간도 없다. 사람들이 공감하는 글이나 콘텐츠 찾기에 더 바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뜻이 전혀 통하지 않는 글까지 수용된다는 건 아니니 오해는 말자.


앞에서 말한 7가지는 편집자가 되려는 조건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우선시 되어야 하는 조건이 하나 있다.


다른 사람의 생각에 관심이 있는 사람


이 한 가지 조건만 내건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편집자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질까 싶어 급조한 것은 절대 아니니 안심하시라. 위 7가지가 능력이나 기술에 관련된 것이라면,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은 태도와 마인드의 문제이다. 그래서 7가지에는 해당되는데 이 한 가지에 해당되지 않으면 그 일을 하는 동안 재미를 느끼기가 어렵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생각에 관심은 많은데, 7가지에 해당되는 게 없는 것은 괜찮다. 이를 해결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고, 보수 교육 기관도 많이 있다.


모든 직업이 그러하듯 태도와 자세를 어떻게 시작하느냐에 따라 그 직업으로 살아가는 시간이 1년이든 10년이든, 평생이든 즐거울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생각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장에서 더 자세히 해보기로 하겠다.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정말 많다죠? 그래서 내가 당신을 고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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