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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Oct 26. 2018

02 웬만하면 다른 거 해... 왜 하필 이걸...

당신의 책을 만들어 드립니다


02

한국 사회에는 유독 A가 되고 싶었는데 A’가 된 사람들이 많다. 물론 A가 되고 싶었는데 B나 C가 된 사람도 많이 있다. 가령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데 학원 강사가 된 사람, 변호사가 되고 싶었는데 변호사 사무실의 직원이 된 사람, 의사가 되고 싶었는데 간호사나 약사가 된 사람,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는데 트레이너 강사가 된 사람, 공무원이 되고 싶었는데 회사 직원이 된 사람….


우리 사회는 어릴 때부터 A가 되어야만 한다고 가르치고, 오직 A로 가는 방법만을 개발하고 안내한다. 이는 꼭 A가 되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자, A만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위험한 주입이다. ‘나는 너와 다르다.’ 내지는 ‘내 것과 네 것은 다르다.’는 식의 줄긋기 라이프 스타일이 진로 교육에도 여실히 드러나는 모습이다.


각 직업의 가치를 심어 주기보다는 반드시 ‘사회가 바라는 A’가 되어야 하는 이유와 장점만을 가르쳐, 다양한 직업들이 그만 어떤 A의 차선이나 차차선으로 전락해 버리는 꼴이다. 그러다 보니 그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스스로에게 실패자의 딱지를 붙여 살아가고, 젊은이들이 그 직업에 관심을 가지고 기웃거린다 싶으면 이렇게 말하며 손사래를 친다.


“웬만하면 다른 거 해. 왜 이거 하려고 그래.”


깜짝 놀란 젊은이들은 그 주변에는 얼씬도 하지 않게 된다. 그 산업의 흥망성쇠는 젊은이들의 발길이 이어지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결정되므로 그 끝은 더욱 암울하기만 하다,

어떤 일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그 일의 숙련자가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해 보자.


“이 일 하려고? 잘 생각했어. 내가 해 보니 정말 좋은 직업이야.”  


이 대답은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이나 기쁨이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이 대답은 개인적으로만 나올 수 있는 대답만도 아니다. 최악의 월급, 최악의 발전성, 최악의 복지를 겸비(?)한 산업에 종사하면서 이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자릿수도 안 될 것이다. 정말 그 직업을 사랑하거나 매우 긍정적인 사람 정도랄까? 최악의 조건을 가진 경우는 대부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웬만하면 다른 거 해. 왜 이거 하려고 그래.”


출판 산업에 종사하는 약 20만 명의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각자의 사연과 사정, 그리고 어떤 경로와 과정을 통해 책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된 이 사람들의 직업 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다. 아니, 낮다. 직업 만족도가 낮은 이유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우선 이 직업을 가진 사람 중에 어렸을 때부터 ‘출판인’이 꿈인 사람은 거의 없다. 또한 이 직업을 옆에서 본 경험이 거의 없고 알려진 바도 없으며, 소위 ‘큰돈’이 되는 업(業)이 아니기에 그렇다.


무엇이 반드시 되고 싶어서 된 자와, 어떻게 하다 보니 그 일을 하고 있는 자의 직업 만족도는 그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 산업의 발전 양상도 큰 차이가 난다. 어떻게 하다 보니 그 일을 하게 된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 발전할 가능성이 높을까? 그 일에 가치와 의미를 두고 그 일을 꼭 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 발전할 가능성이 높을까?


‘큰돈’이 안 되는 것이야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아 일단 논외로 한다. 여기서 말하는 큰돈은 다른 산업에 비해 그렇다는 말이지 돈을 벌 수 없거나 모두 가난한 것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 먹고살 만큼은 되니 걱정마시라! ‘큰돈’을 논외로 하고 나니 이유가 딱 한 가지 남는다.

바로 이 직업에 대한 홍보(?)가 미약하다는 점. 상품으로 따지면 집에 있는 냄비나 프라이팬만큼 흔하디 흔단 책이 건만, 이것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대한 정보가 이렇게나 미비하니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떤 악순환인가? 가상의 악순환 시나리오를 만들어 보았다.


①반드시 되고 싶은 사람보다는 전공이나 ‘어쩌다 보니’의 경로를 따라 온 사람들이 책과 관련된 일을 한다.

②‘어쩌다 보니人’들은 직업 만족도가 떨어지고 삶도 행복하지 않다. 일의 능률은 당연히 떨어지고, 공부나 연구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먹고살아야 하기에 회사를 계속 옮긴다.

③출판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마저 그 분위기를 견디다 못해 유사 업계(타콘텐츠, 타미디어) 로 일자리를 옮긴다.

④일을 잘하는 또는 좋아하는(?) 사람들이 출판계를 떠나거나 프리랜서 또는 1인 기업으로 창업한다.

⑤직원은 계속 바뀌고 위 직원들이 떠난 뒤, 회사의 매출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덩달아 시장도 안 좋아진다. 사장은 화가 나서 남은 직원들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⑥매출은 바닥을 치고, 몇몇 출판사는 문을 닫는다. 뉴스에서는 출판계 현황과 종사자들의 어두운 미래에 대해 연일 보도한다.

⑦이를 본 청소년들이나 대학생, 취업준비생들은 ‘책을 만드는 일이 고달프고, 그곳은 ‘참 가난한 동네’라는 선입견을 갖는다.

⑧출판계에서 신입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가 되고, 한때 잘나갔던 노년층 종사자만 남아 침침한 눈으로 먼지 쌓인 책만 들여다보며 말한다. “우리 때는 말이야. 블라블라블라.”


가상의 시나리오지만, 일부(좀 많이) 현실을 반영하여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미래를 그려 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어린 시절 꿈이 ‘편집자’는 아니었다. 해 보니 재밌고 운 좋게도 잘 맞아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지, 나 역시 가상 시나리오 ②번의 피해자가 될 뻔했다.


출판 일을 ‘A’ 자체로 만들기 위한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가상 시나리오 ①번을 주목하면 된다. 반드시 출판인이 되고 싶은 사람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일이 가지고 있는 매력과 가치를 수신자 입장에서 다각도로 알려 줘야 한다. 이 글도 아주 작은 보탬이 되고자, 당신에게 그것을 알려주는 중이다.   


“그러니 당신이 꼭 와 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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