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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Oct 29. 2018

05 단지 책이 좋다는 이유만으로는

당신의 책을 만들어 드립니다.


05

일본 드라마 <중쇄를 찍자(중판출래)>의 주인공 쿠로사와 코코로는 대학 때 유도 선수였다. 그런데 경기 중에 다리 부상을 입어 선수의 길을 가지 못했다. 선수 시절, 그녀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취미 생활은 만화책이었고, 그녀가 새로 도전한 꿈은 흥도관이라는 만화 출판사의 편집부였다. 만화책 마니아가 만화책 만드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실제로도 만화책 출판사에서 일하는 편집부 직원들은 만화광일 확률이 아주 높다.


그러나 만화책을 좋아한다고 다 만화책 편집부에서 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만화책을 좋아해서 읽는 것과 만드는 일은 염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만화를 사랑하면서도 출판 업무와 꽤나 잘 맞아 직업인으로서 운이 좋은 편이다.


여기서 잠깐 우리나라 국민 독서율을 살펴보자. 2018년 현재 약 60%이다. 1년에 한 권이라도 읽으면 이 안에 들어가는 셈이다. 반면 40%의 사람들이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OECD 국가 평균이 76.5%이니 우리나라 수치는 한참 떨어지는 편이다. 이 수치가 발표될 때마다 사회 곳곳, 각계각층에서 그 심각성을 논하곤 하지만, 우리나라 여러 상황과 교육적 환경을 고려해 보면, 그 수치가 절대적으로 낮은 것인가 하는 반문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이 60%에 해당하는 독자들이 출판계에 입문한다. 책을 전혀 읽지 않는 40%의 비독자가 출판계에 들어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는 큰 출판사를 일군 아버지가 아들에게 출판사를 물려주는데 이 아들이 책을 싫어할 확률 정도 될까?


이 60%에는 매일 책을 읽는 사람, 즉 우리나라 인구 중 약 5%를 차지하는 독서광들이 포함되어 있다. 초등학생이 반 이상 넘게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수치이니 극소수의 성인만이 그러하리라 짐작된다. 그러니 보통은 한 달에 1권~4권 정도 읽는 보통의 독자들이 책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책을 좋아한다고 책 만드는 일을 좋아하게 될 확률은 측정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책을 좋아하면 출판사 일을 하세요.”라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가 꽤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단 자신의 독서 습관이 국민 독서율 60% 안에만 들어가면 출판인이 되는데 크게 문제될 게 없다. 한 마디로 5%의 독서광이 될 필요까지는 없다는 말이다. 그럼 무엇이 더 필요할까?


“누가 읽고 싶을까?

“무엇을 읽고 싶을까?”

“어떻게 읽고 싶을까?”


위 세 가지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단순히 책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출판계에 입문해서 재미를 느끼며 일할 확률이 더 높다. 출판은 개인적인 독서 시간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주제, 내가 사랑하는 작가, 내가 선호하는 방식만 고집할 수 없다. 자신의 방향이 아닌, 대중의 방향으로 향해 있을 때 직업인으로서 성과물도 나온다.


하지만 책은 인간의 정신적 소산물을 담아내는 일이라, 만들려는 책이 자신의 가치관이나 성향과 극적으로 다를 때 만들기를 꺼려한다. 예를 들어 출판인에게 “정치적 성향이 극단적으로 다른 이의 책을 만들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대부분이 못 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또는 “역사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의 책을 만들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도 많은 사람들이 거절하거나, 할 수 없이 만들면서도 내내 불편한 감정에 휩싸일 것이다. 여기 책이 상품이면서, 상품만은 아닌 이유가 있다.

이렇게 책을 만드는 일이 보통의 물건과는 조금 다른 차원임을 알고, 책을 좋아하는 마음이 독서 인구율 60% 안에만 들으면 당신은 출판인이 되기에 너무도 충분하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독서 인구율 60% 안에 드는 사람이 틀림없습니다. 더 볼 거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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