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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Oct 29. 2018

06 셜록 옆에는 왓슨이 있습니다!

당신의 책을 만들어 드립니다.


06

차범근과 박지성의 뒤를 잇는 축구스타는? 단연 손흥민이다. 워낙 어린 시절부터 해외에서 뛰었고 벤치 선수가 아닌 정말 ‘뛰는 선수’라 그의 골과 승전보는 국내 축구팬들의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그가 태극 마크를 달고 운동장을 누빌 때 더욱 멋있어 보이는데, 최근 인성까지 갖춘 슈퍼스타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경기에서 져 상심하고 있는 어린 선수들에게 다가가 응원의 말을 건네는 등 주장으로서 운동장 안팎에서 미담을 끊임없이 제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변화가 하나 있다. 골을 빼앗기지 않고 골대까지 몰고 가서 자신의 발로 슛을 차던 그가, 골대 앞에서 다른 선수들에게 패스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득점 란에 다른 선수들의 이름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고, 손흥민의 이름은 ‘득점’이 아닌, ‘도움’에 더 많이 올라가 있다. 그는 왜 달라졌을까?


세상에 나오는 모든 것들은 한 사람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만들 수도 없다. 세상에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태어나고 죽는 일까지도 다른 이의 도움을 받지 않던가. 다만 어떤 일에는 그것을 대표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목적하는 바대로 끌고 가는 리더와 책임자 말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 뒤에 있다. 단, 앞장 서는 사람은 하나의 역할일 뿐, 뒤에 서 있는 다수보다 더 낫거나 절대적으로 훌륭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 한국 사회의 모든 눈은 늘 ‘뭔가를 이끌고 가거나 대표하는 자’에게 가 있고, 그런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 그렇게 말하는 이들조차도 그런 사람이 아니면서, 자녀나 청년들에게 반드시 1인자가 되라고 말한다. 하지만 모두가 다 앞장 서는, 모두가 다 얼굴을 내밀고 리드하는 사회가 존재할 수 있을까?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런 사회는 없다. 하나만 있어도 되는 역할이 많아진다고 이 사회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좋은 사회는 각자의 역할과 존재를 인정해 주고, 개인 스스로도 자부심을 가지고 사는 법이다.


출판인들은 기본적으로 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저자 또는 출판사 뒤에서 일하는 숨은 일꾼이다. 간혹 뛰어난 편집자나 디자이너, 마케터, 제작자들이 이름을 직접 떨치는 경우도 있으나 드문 일이며, 그 이름이 출판 담장을 넘는 일도 흔치 않다.


특히 편집자는 어떤 사람의 글 뒤에서 5%~50% 내외로 개입(?)하며 일하는 자이다. 여기서 말하는 5%란 작가가 써 온 원고에서 치명적인 오류와 오탈자를 고치고(저자의 허락 하에), 표지 카피와 언론에 뿌리는 홍보 자료만 만드는 역할의 퍼센트이다. 대개는 문학 편집이 5% 내외이고, 비문학 편집은 50% 내외로 개입한다.

50% 개입은 어느 정도일까? 여기에는 어떤 책을 만들지 기획하여, 그것을 쓸 저자를 찾고 목차를 함께 만드는 업무가 들어간다. 또 독자들이 읽을 수 있는 글로 바꿔 주는 윤문과 문법에 맞게 고치는 교정 교열이 기본이다.

대부분 이 정도지만 저자의 글을 완전히 새롭게 쓰는 경우도 없지 않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분명 존재한다. 베스트셀러나 유명한 저자들 중에도 여기에 해당하는 몇몇 사례들이 있으나 오해와 입장의 차이가 있어 특정 도서를 언급하지는 않겠다. 하고 싶어도 참아야 한다. 사실 이런 이야기가 재밌는데.


중요한 것은 99%를 개입했다고 하더라도 그 책은 편집자의 이름을 달고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저자의 것이다. 개입과 기여도를 떠나 그 책의 씨앗은 작가의 것이기에, 자신이 책에 기여한 바가 크더라도 그걸 억울해 하는 편집자는 없다. 물론 속으로 하는 건 자유지만. 편집자의 일은 작가의 씨앗을 함께 키워 뿌리를 내리고 입을 틔워 세상 밖으로 옮겨 심는 일, 거기까지다. (요즘은 옮겨 심은 땅에서 뿌리를 잘 내리도록 책을 홍보하는 일도 한다.)

책이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뿌듯한 나머지 이렇게 말하는 편집자가 있을까? 말한다고 해도 그걸 제대로 알아듣는 이도 없을 것이다.


“저 책 말이야. 내가 만든 거야.”


‘책을 만들다’라는 이 짧은 문장으로는 한 권의 책이 세상이 나오게 되는 전 과정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다.

서점이나 도서관, 또는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남몰래 ‘내가 만든 책’을 만나는 기쁨이 썩 괜찮으니까. 또한 다른 관계에서는 맛보지 못하는 저자와의 깊은 우정(때로는 애증)과 책 곳곳에서 발견되는 소소한 기여들이 만족감을 충분히 주고도 남으니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내 것이면서, 한 번도 완전한 내 소유가 될 수 없는 애잔한 그 마음도 꽤 누릴 만하며... 세상에 이름을 떨친 이의 뒤에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나의 듬직함도 매력이 된다.


정조 옆에는 정도전이 있었다. 셜록 옆에는 왓슨이, 스파이더맨 옆에는 친구 네드가, 유재석 옆에는 박명수가 있었다. 저자 옆에는 늘 편집자가 있다.


“앞에 나서는 것보다는 2인자가 적성에 맞다고요? 좋아요! 출판계의 왓슨이 되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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