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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Nov 14. 2018

09 책 쓰는 일이 더 이상 권력이 아닌 세상

당신의 책을 만들어 드립니다.


09

우리는 모두 독자로 태어난다. 엄마의 말소리를 듣고 자라 친구와 말을 나누고 스승에게 지식을 배우는 청자로서의 삶에 익숙해질 때쯤, 글자를 배우고 어휘와 문장을 익혀 한 명의 독자로 성장하게 된다. 누구도 태어나면서부터 작가일 수 없고, 보통은 죽을 때까지 독자로 살아간다. 하여 ‘쓰는 사람’은 오랫동안 우리보다 많이 아는 자, 우리와는 다른 자, 우리보다 똑똑한 자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21세기는 분명 달라졌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고 그들이 쓴 글을 읽기만 했던 사람들이 드디어 직접 말하고 쓰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자기표현의 시대가 왔다. 사람들은 글, 사진, 동영상 등을 이용해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사람들의 공감을 기다리며 직접 소통도 한다. 그 옛날 ‘쓰는 사람’들만 할 수 있었던 일들을 말이다. 이는 고학력군의 증가, 평균 수명 연장, 자기표현 플랫폼의 다양화, 무엇보다 모바일 등의 기술 발전으로 가능해진 일이다. 수동적으로 남의 지식만 받들던 시대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공유하고 나누면서 다시 배우는 지식의 선순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들은 모두 완벽하고 체계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을까? 아니다. 영 서툴고 미완성처럼 보이는 것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안 된다. 이를 받아들이는 쪽에서도 그것의 완성도나 완벽한 무엇을 기대하지 않고, 날 것 그대로를 즐기면서 공감과 소통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걱정하는 쪽은 따로 있다. 책을 많이 읽는 헤비리더heavy reader들, 기존 작가들, 고매한 출판인들, 학자들, 교수들…  그러니까 기성 세대들. 1년에 약 8만 종의 책이 쏟아져 나오는데, 해마다 독서율은 떨어지고 있으니 그들의 우려도 무리는 아니다. 어떤 이들은 책의 종수가 늘어나고 누구나 쓰는 것에 데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요즘 책의 질이 점점 떨어지고 있어요.”

“이러다 독자는 사라지고 저자만 남겠어요.”

“검증되지 않은 사람들이 책을 쓰는 게 문제예요.”

“허술한 데이터에 달달하게만 쓰는 게 문제예요.”

“책을 내는 일에 더 진중해져야하지 않을까요?”

“그래도 책인데…. 너무 무책임한 것 같아요.”  


이 우려의 말들이 모두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모든 것에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이 같은 말을 듣고 있으면 조선 시대 때 한글 창제를 반대했던 양반들과 집현전의 몇 학자들의 얼굴이 묘하게 겹쳐진다. 왜 그럴까? 저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대개 식자층이나 기존의 저자들, 즉 ‘원래 쓰던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기 때문일까?


책은 언제까지 엄숙해야 할까? 세상은 최첨단을 달리고 저만큼 앞서 있는데, 책은 언제까지 박제의 유리장 속에서 고고해지기를 바라는 걸까? 또 그렇게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대체 언제까지 자신들이 쌓아올린 성 위에 서서 그곳에 올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새마을 깃발만 흔들고 있을 것인가.


21세기는 모든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어도 된다. 아니,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책 등의 어떤 형태로든 세상에 나와 읽혀야 한다. 이제 ‘누구나 쓰는 시대’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지 말자. 세상의 책들이 가벼워지거나 질이 떨어지면 어쩌냐는 지나친 염려도 거두자. 글을 쓰고 책을 펴내는 일은 더 이상 권력이 될 수 없다. 권력의 옷을 벗어던질 때 더 큰 큰 힘과 명예를 얻을 수 있음을 기억하자.

쓰는 사람과 쓰는 플랫폼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편집자들의 눈과 귀도 바빠지고 있다. 쓰는 사람 옆에는 늘 편집자가 있으니까. 클래식부터 뽕짝까지 다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편집자가 유리하다. 클래식에만 빠져 있거나 뽕짝만 좋아하는 편집자는 오래 가지 못한다. 유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권력과 오만과는 거리가 먼 당신… 그러면서 유행에 민감한 당신이 꼭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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