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책을 만들어 드립니다.
08
옛날 어른들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자주 이렇게 말했다.
“내가 살아온 인생을 글로 쓰면 책 한 권은 나오지.”
세상에 입신양명(立身揚名)한 사람만 스토리를 가지고 사는 건 아니다. 널리 알려지고, 덜 알려지고, 안 알려지는 인생만 있을 뿐, 세상사람 누구나 자신만의 ‘책(기록)’을 쓰면서 살아간다. 그 책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누가 알아봐 주지 않아도 나름대로 완성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누군가 내 책을 펼쳐 주기만을 간절히 바라본다. 그러나 그 기회를 얻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건드려 주는 이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법이다. ‘톡’ 건들기만 해도 술술 나오는 자신의 이야기는 인간의 욕망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그렇기에 여기 출판의 위대함이 있다고 말하면 지나친 왜곡일까? 하지만 이유는 있다.
누구나 한 권쯤 쓰고 있는 인생, 사상, 생각, 감정을 다른 사람들이 읽어 주기를 바라는 욕망, 이를 해결해 준 것이 ‘출판’이기 때문이다.
출판이란 무엇인가? 출(出)은 세상에 내놓는다는 뜻이고, 판(版)은 조각을 뜻한다. 인간의 정신적 소산물(생각, 사상, 감정 등)을 판에 새겨 여러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다. 출판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인간은 인류의 탄생과 함께 ‘생각’이란 걸 해 왔을 테니 이것으로는 그 역사를 추측할 수 없고, 이는 ‘판’의 역사와 일치한다.
‘판’의 시작은 한 번쯤 들어본 이름… 서양 최초로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1440년)하였다. 그리고 그보다 약 200년 앞서 고려에서 금속활자가 발명되었고, 1377년 흥덕사라는 절에서 <직지심체요절>이 인쇄되었다. 물론 금속활자가 인쇄술의 시작은 아니다. 그 앞에 목판인쇄가 있었다. 이는 서양이나 우리나라 모두 마찬가지다. 다만 목판인쇄가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든다는 점에서 출판에 기여한 면이 적은 것뿐이다. 출판이란 뭐니 뭐니 해도 ‘짧은 시간’에 ‘적은 비용’으로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가능한 많이’ 찍어 내는 것 아니겠는가. 이는 6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모든 출판인의 염원은 짧은 시간에 적은 비용으로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편집의 역사는 언제부터일까? 출판 편집의 역사가 시작되는 18세기 말, 출판의 중심은 ‘인쇄소’였다. 생각해 보라. 많이 찍어내는 게 가장 중요하니, 기계를 가지고 있는 자가 갑이다. 출판에 관련된 모든 일을 인쇄소에서 지휘했을 것이고, 지금과 같은 편집자나 디자이너, 마케터가 있었어도 역할은미비했을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 지금의 편집자 역할까지 하고, 순서에 맞게 판에 글을 앉히는 것이 디자인의 전부였을 테니.
편집자의 개념이 생긴 것은 19세기 <브리태니커> 같은 백과사전 류의 책들이 출간되면서부터였다. 기계가 보편화되고 누구나 많이 찍을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다음 경쟁력은 무엇일까? 누가 더 좋은 내용으로, 누가 더 아름답게 만들어 내는가가 중요해졌고, 이때부터 편집자와 디자이너의 업무가 본격화되었다.
누구나 한 권쯤 쓰고 있는 인생, 사상, 생각, 감정을 다른 사람들이 읽어 주기를 바라는 욕망, 출판은 이를 인쇄술과 함께 해결해 준 장본인이다. 편집자는 그것이 조각되어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 독자들의 눈에 들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작가의 욕망에 열열이 집중해 왔다. 출판과 인쇄술이 세상에 미친 영향은 여러 각도에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다만 여기서는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과 연결해 본 것이다. 그 간절한 바람을 돕는 출판인도 함께 말이다.
“누군가 말한다. ‘내 인생 좀 부디 읽어 주세요.’
돕고 싶은가? 그럼 됐다!”
#국문학과#문예창작과#출판사#출판#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