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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진 Nov 29. 2018

10 이 책은 어느 우주에서 왔느뇨

당신의 책을 만들어 드립니다.


10

엄마들은 자녀들이 집안을 어지럽히거나 작은 사고를 쳤을 때 이렇게 묻는다.

“이거이거 누가 그랬어? 어?”

아이들은 쭈뼛쭈뼛 대답을 피하거나, 무의식중에 다른 형제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싸움을 하여 경찰서에 붙들려 간 어른들도 이렇게 말하기 바쁘다.

“아니, 나는 가만히 있는데 이 사람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니까요.”

함께 뭔가를 도모하다가 의견 충돌로 싸우다 보면 ‘누가’ 먼저일 때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가 훨씬 많지만, 이럴 때는 무조건 뒤로 빠지는 게 상책이다.


그런데 사건의 요점이 ‘공(功)’일 때는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칭찬이나 상 앞에서는 체면도 버리고 “저요 저요. 제가 했어요.”라고 말하고 싶다. 작은 공이라도 누가 알아주기를, 어쩌다 한 번쯤은 다 된 밥에 숟가락만 살포시 얹고 싶을 때도 있다.


여기 책이 한 권 있다. 조금 생뚱맞은 질문도 함께.

“이 책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누구로부터 시작된 것인가?”


많은 독자들은 이 질문에 ‘저자’만을 머리에 떠올릴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저자‘만’을 떠올리기에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그 일에 참여한다. 인간의 생각, 감정, 사상 등이 책이라는 물리적 형체를 갖추기까지 다음 4단 변신(?)을 하는데, 이때 저자는 물론이고 편집자, 디자이너, 마케터, 제작자, 독자 등이 이 모든 단계에 참여한다.  


1단: 머릿속에 머물러 형체가 없는 상태

2단: 문자 또는 그림으로 표현된 상태

3단: 물리적 형체를 갖춘 상태

4단: 세상으로 나간 상태


그러니 책 한 권을 두고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가?’라는 질문 자체는 얼마나 무의미한가. 그렇지만 나쁜 일에는 한 걸음 뒤로, 좋은 일에는 한 걸음 앞으로 나오고 싶은 법이다. 어떤 책이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가 되었을 때 여기저기에서 그 책의 기획자라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그 책에 기여했더라는 사람이 적어도 수십 명씩 생겨난다.


“어? 그 책 내가 맨 처음에 말 꺼내서 낸 거잖아.”

“그 기획안 제가 쓴 건데요?”

“그 책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었어. 내가 다 살 붙여서 나온 거 아냐.”

“그거 내가 시장 조사한 걸로 만든 거예요.”

“그거 내가 던져 준 아이디어로 만든 책이잖아. 거참, 그것도 모르고들.”


이러다가는 책에 인용된 특정 사상과 이론, 아이디어, 또 다른 책의 주인들까지 모두 나와 ‘이거 원래는 내 꺼!’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다. 하늘 아래 새로운 기획은 없다. 아무런 연고 없이 우주에서 갑자기 떨어진 책도 없다. 우리는 인류가 축적해 놓은 거대한 지식의 보고를 조금씩 꺼내 쓰고 있을 뿐이며, 앞선 이들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적게 나의 몫을 보태며 책을 만든다. 그러니 인간의 정신적 소산물을 다루는 일에 어떻게 ‘나’라는 이름표를 떡하니 붙일 수 있는 건가... 우리’라는 좋은 말 놔두고.


물론 어떤 직업인으로 살아가게 되든지, 우리는 공(功)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성과, 기여, 인센티브, 진급 앞에서 나만 외따로이 ‘우주’를 논할 수는 없으니까. 다만 넓고 멀리 생각하는 게 정신 건강에는 유익하다는 점.

끝으로 이야기를 하나 들어 보자. 어떤 사람이 공사 현장을 지나다가 세 명의 인부에게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소?” 하고 똑같이 물었다. 세 명의 인부가 각각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툴툴대며) 보면 모르겠소? 땅을 파고 있지 않소.”

“(멍하니) 건물의 골격을 세우고 있소.”

“(환하게 웃으며) 나는 아름다운 성당을 짓고 있습니다.”


소유욕이 너무 커서 출판인이 될 수 없겠다는 말은 하지 마세요. 그 정도도 없으면 세상 어찌 살아가려고요. 그저 염불처럼 외세요. ‘이 책은 우주에서 왔다.’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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