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상반기, 여유 없이 달려왔다.
하나에 꽂히면 전체 상황을 보지 못하고 그냥 달려드는 것, 이 또한 나의 특징이다.
“국어국문학과 나왔어? 어쩜 이렇게 상황에 딱 맞게 웃겨?”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걸 좋아하는 나는 종종 이런 말을 들었다. ADHD의 어떤 면들이 사람들 눈에는 ‘재밌는 포인트’로 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나는 늘 “음… 그런가?” 하며 대충 넘겼다. 스스로를 그렇게까지 특별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서였다.
N1 시험 접수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3학년 편입
(아니, 난 내가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지...)
일본어 능력시험 N1 공부를 이어가며,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3학년 편입도 함께 신청해 두었다.
과거의 나는 이번 시험도 합격하면 강의료 환불이라는 말에 혹해 동영상 강의를 결제했고, 책을 펼칠 여력이 없을 때는 강의를 틀어두며 시험에 익숙해지려 애썼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N1은 내 실력을 한참 웃도는 시험이라는 게 분명해졌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그 어려운 시험과 대학 공부를 동시에 하겠다고 마음먹은 셈이었다.
(그걸 몰랐냐고? 편입 신청도 시험 접수도 전부 내가 함. 스스로 불러온 재앙.)
지난해처럼 '지금 당장 시험 봐도 되는' 만만한 시험 하나만 준비하는 상황이 아니었다. 방송통신대를 다니면 과제물 작성, 출석수업을 못 들을 경우 치러야 하는 대체시험, 기말고사까지 챙겨야 한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하나에 꽂히면 전체 상황을 보지 못하고 그냥 달려드는 것, 이 또한 나의 특징이다.
다행히 기다리던 N2 시험 결과는 안정적인 점수로 합격이었다. 3월부터는 대학 공부도 시작해야 했기에 12월부터 2월까지는 JLPT 동영상 강의를 듣고, 어휘 공부를 하며 시험 준비에 집중했다. 그렇게까지 공부에 몰두한 경험은 인생에서 손에 꼽을 정도였다. 늘 공부를 대충 해왔고, 자격시험도 운 좋게 통과한 경우가 많았던 내가 주 3회 이상 단어 공부를 ‘꾸준히’ 하려고 애썼으니 말이다. 스스로도 낯설었고, 조금 대견하기까지 했다.
‘오, 이번엔 공부 좀 하는데?’
그게, 그러니까… 2월까지는 그랬다.
바쁘다 바빠, 2025년 상반기.
3월이 시작되자 정말 숨 돌릴 틈이 없었다. 출석 체크를 위한 동영상 강의를 꼬박꼬박 틀었고, 틀어놓은 김에 공부도 하고(?) 중간중간 과제물 작성도 신경 써야 했다. 출석수업은 현실적으로 참석이 어려워 기말고사 2주 전에 치르는 대체시험으로 변경해 두었고, 그 와중에 N1 공부도 놓을 수는 없었다.
방송대는 3학년 편입 시 교양 학점이 이미 채워져 있어 전공 수업만 들으면 되는데, 나는 자동으로 배정된 3학년 전공과목들만 그대로 수강하게 됐다. 수강신청 때 과목을 조정할 생각을 왜 못 했을까. 1·2학년 과목을 섞었더라면 이렇게까지 벅차지는 않았을 텐데.
여기에 더해 3월 한 달은 첫째의 초등학교 입학에 적응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여섯 살, 여덟 살 두 아이를 돌보며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가사는 엄마로서 당연히 해야 할 몫이었다. 건강을 위해 주 5회 배드민턴까지 다니던 내 생활을 누가 들으면 ‘갓생’이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전에 운동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씻자마자 누워 오후에 쓸 체력을 회복해야 하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내가 어쩌다 이런 일정들을 한꺼번에 벌여놓았는지 스스로도 의문이었다.
2025년 상반기는 나에게 개 큰 시련이었다.
3월에는 첫째의 초등학교 입학과 등·하교 적응, 각종 방과 후 수업 신청.
4월에는 아이 학원 등록과 동시에 쌓여가는 과제물의 산.
5월에는 가족 행사들 사이에서 대체시험과 기말시험을 벼락치기로 준비했고,
6월 초 모든 방송대 시험을 끝내고 나니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7월 6일 JLPT N1 시험이었다.
N1은 N2와는 확실히 결이 달랐다. 대학 공부로 잠시 멈췄던 단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상황은 늘 그렇듯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였다. (= 발등튀김) 거의 매일 벼락치기였고, 모의고사를 풀며 시험 시간 분배에도 신경을 썼다. 그럼에도 시험 전날까지 ‘이제 됐다’ 싶은 마음의 여유는 끝내 오지 않았다.
7월 6일 시험을 보고 돌아온 나는 완전히 기진맥진해 있었다. ‘떨어지면 어떡하지’와 ‘그래도 붙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을 동시에 품은 채 시간을 보냈고, 다행히 8월 말, 정말 턱걸이로 합격 소식을 듣게 된다.
일본학과 복수전공
뜬금없는 이야기 같지만, 원래 2학기는 1·2학년 과목 위주로 비교적 여유 있게 수강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N1 합격의 여운에 취해 있던 나는 성적 장학금을 노리며 전공과목과 일본어 기초 과목을 함께 신청했다. 그 결과, 난생처음 평점 4.4/4.5라는 성적을 받게 된다.
문제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기왕 나이 들어 공부하는 김에, 언젠가는 한국어와 일본어를 결합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다시 별다른 계획 없이, 충동적으로 일본학과 복수전공을 선택해 버렸다. 내년에 마흔하나가 되는 내가 이렇게 계속 충동적으로 자기 계발을 해도 괜찮은 걸까 하는 의문이 자꾸 고개를 든다.
조금은 긍정적으로
그래도 솔직히 말하면, 새로운 지식으로 머리를 채우는 감각은 꽤 좋다. 이제는 만성이 되어버린 도파민 부족을 지적 허영심이 대신 채워주는 느낌이랄까.
어차피 충동을 막을 수 없다면, 그 방향이 자기 계발인 편이 조금은 낫지 않을까—요즘의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