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시작한 JLPT 접수, 그러나...
여기, 공부도 충동적으로 하는 여자가 있다.
생뚱맞고 급작스럽게.
시작은 일본어능력시험(JLPT)
2024년 하반기, 나는 아주 충동적으로 일본어능력시험 접수를 했다.
2018년 봄부터 줄곧 경력단절 상태로 지내다 보니, 당장 필요하지는 않아도 자기 계발이든 뭐든 뭔가 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올라왔다. 검색해 보니 마침 JLPT 접수 기간이 아닌가.
그리고 2005년에 구 JLPT 2급에 합격했던 기억 하나만 믿고, 덜컥 N2를 접수했다. 이렇게 대충 급수를 정해도 되나 싶었지만, ADHD인의 전형적인 사고방식이 발동했다.
‘이 정도면 조금만 공부하면 되겠지.’
터무니없는 생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일단 접수. N1을 보고 싶은 마음도 없진 않았지만, 너무 열심히 공부해야 할 것 같아서(?) 일단 보류했다. 우선 지금 내 일본어 실력이, 약간의 공부로 N2를 딸 수 있는 수준인지가 궁금했다.
접수하고 며칠 뒤에야 서점에 가서 N2 모의고사와 참고서를 펼쳐봤다. 솔직히 말하면, 공부를 안 해도 어떻게든 합격은 가능해 보였다. 그래도 양심상 한 권으로 끝낸다는 책 한 권을 사 왔고, 공부는 하고 싶을 때만 대충 했다. 시험이 며칠 남지 않았을 때는 모의고사를 풀며 시간 안에 푸는 연습을 했고, 청해는 같은 문제를 두세 번, 배속으로도 들으면서 시험 리듬에 익숙해지려고 했다.
육아와 살림만 하며 떨어진 내 자존감을 끌어올리기에 JLPT는 꽤 좋은 수단이었다. 정석대로 차근차근하기보다는, 좋아하는 일에는 과집중이 잘 되는 내 성향을 이용해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공부했다. 어떻게 보면 주먹구구식이었다. 그러면서도 내 나름대로는 본격적이었다. 교재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동영상 강의를 결제했다. 합격하면 강의료를 환급해 준다는 조건이었는데, 이게 생각보다 꽤 동기부여가 됐다.
홍대병 말기인 나는 평소에도 일본어는 즐기는 편이었다.
J-pop을 듣고, 가끔 일본어 기사도 읽고, 고등학생 때부터 이어져 온 일본인 친구와 연락도 하고 있었다. 기본 베이스는 있는 상태였고, 이 공부가 언젠가 아이들이 크고 난 뒤의 내 미래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큰 스트레스 없이 이어갈 수 있었다. 큰 어려움 없이 시험을 마치자마자, 나는 자연스럽게 다음 레벨인 N1 공부를 시작했다.
(JLPT는 합격 여부를 거의 두 달쯤 뒤에야 알 수 있다.)
일본어 공부에서 국어국문학과 편입으로
JLPT는 일본에서 주관하는 시험이다 보니 결과 발표와 합격증 발송까지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린다. 스무 살, 스물한 살 때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포기했던 N1을 이번엔 바로 다음 목표로 삼았고, 참고서부터 준비했다.
그런데 N1을 들여다보면서 깨달았다. 결국 언어 시험이라는 건, 어느 나라 말이든 중상급 이상으로 가려면 문해력과 어휘력이 받쳐줘야 한다는 사실을.
N1 단어들 중에는 가끔, 한국어로 봐도 ‘이게 무슨 뜻이지?’ 싶은 것들이 있었다. 사전을 찾아야만 알 수 있는 우리말 단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참에 국어 공부를 좀 제대로 해볼까?
내가 부딪힌 건 어휘의 벽이었고, 상황과 욕망이 자연스럽게 국문학과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국문학 공부에, 조금만 공부해도 아웃풋이 잘 나오는 일본어를 조합한다면—늦은 나이지만—언젠가는 번역이라는 꿈도 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욕심도 생겼다. 그래서 또다시 충동적으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편입을 결정했다.
우연일까.
얼마 전 읽던 번역가의 수필집에서 그 사람의 전공이 국문학과였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마침 그분도 일–한 번역가였다. 생각이 이어진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결국 내 충동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차곡차곡 쌓인 동기와 성장 욕구들이 어느 날 ‘지금 할 수 있는 조건’이 되면 나는 그걸 충동이라는 이름으로 갑자기 실행해 버린다. 그리고 그 충동은 이번에도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일본어로 시작한 공부는 점점 늘어났고, 관심사는 한 방향으로만 가지 않았고, 나는 또 다른 선택 앞에 서 있었다.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