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PMS 심한 사람 모두 모두 모여라!

알면서도 힘든 그 며칠에 대하여...

by Minfp

PMS를 겪을 때마다 자괴감에 빠진다.
내 감정도, 식욕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책하기 바쁘다. 자극적인 음식이 유독 당기고, 갑자기 화가 나는 역치가 눈에 띄게 낮아졌다는 느낌이 들면 습관처럼 달력부터 확인한다.

‘아, 역시.’


이상하게도 그 확인은 위로가 되면서도 또 다른 좌절을 남긴다. 이유를 알았다는 안도감과, 그럼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있다는 실망감이 동시에 밀려온다.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지금 이 감정이 ‘나’ 자체는 아니라는 걸. 그럼에도 그 순간엔 늘 실패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평소에는 살짝 둔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무던한 편이다. 웬만한 일은 둥글게 넘어가고, 크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데 그 시기만 되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작은 일에도 짜증이 먼저 올라오고, 감정기복은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내린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별일도 아닌데, 마음은 이미 폭풍 한가운데 있다.


특히 아이들 앞에서 그럴 때가 가장 괴롭다. 엄마가 되고 나서 PMS는 조금 더 복잡해졌다. 다른 날엔 웃고 넘길 수 있는 아이들의 말과 행동이, 그날만큼은 유독 크게 다가온다. 감정이 힘든 건 나인데, 그 감정이 향하는 방향에는 늘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감정의 파도가 한 번 넘실거리기 시작하면, ‘엄마답지 못하다’는 자책이 그 위에 겹겹이 쌓인다.

아이들은 내 몸 상태를 모른다. 오늘이 어떤 날인지, 내가 얼마나 애써 참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저 평소처럼 말을 걸고, 웃어 달라고 하고, 안아 달라고 할 뿐이다. 그래서 더 스스로를 몰아붙이게 된다.


‘엄마인데 이 정도도 못 참아?’
‘아이들 앞에서는 무조건 괜찮아야 하는 거 아니야?’


그 생각이 들수록 감정은 더 숨을 곳을 잃고, 결국 엉뚱한 순간에 터져 나온다. 나는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한다. 다만 그 ‘좋음’의 기준이 내 컨디션을 고려하지 않았을 뿐이다. 아이들에게 나쁜 감정은 전혀 드러내지 않는 엄마, 어떤 날에도 기분 좋은 엄마. 그런 엄마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막상 타인에게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하면서, 유독 나 자신에게만은 그러지 못했다. 요즘은 아이들 앞에서 이렇게 말해 보려고 연습 중이다.

“엄마가 오늘은 조금 예민해. 너희 잘못은 아니야. 엄마는 한 번씩 몸과 마음이 힘들 때가 있어.”
아직 아이들이 다 이해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이 말 한마디 덕분에 감정을 숨긴 채 버티는 것보다 훨씬 나아진다. 아이들에게 예민하게 반응하던 순간도 조금은 잠잠해진다.


남편에게도 한 번씩 스스로 놀랄 만큼 날카로운 말이 튀어나온다. 그리고 곧바로 후회한다. 왜 또 이랬을까. 왜 이렇게까지 감정에 휘둘릴까. 자존감은 그때마다 바닥을 친다.


동물 아니잖아. 사람이잖아.
이성이 있잖아, 생각이란 걸 하잖아.
� Stress Relief for Women with Hypnotherapy.jpeg 이미지 출처: 핀터레스트


대체 왜 이러는 걸까. 머릿속에서 수십 번 같은 질문을 반복해도 답은 늘 같았다. 알면서도 못 막는 상태라는 것.


그나마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ADHD 약과 불안장애 약을 함께 먹기 시작하면서, 감정보다 머리가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평소에 이유 없이 초조하고 불안하던 마음이 줄어들다 보니, PMS 기간의 감정기복도 어느 선 이상으로 폭발하지는 않는다.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아, 지금 위험하다’는 신호를 조금은 빨리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미리 날짜를 체크하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다.

아, 슬슬 이구나.

지금은 감정이 과장되기 쉬운 시기야. 조금만 천천히, 조금만 조심하자고. 이렇게라도 마음을 다잡아 본다.


예전 같았으면 감정이 지나간 뒤에야 알았을 일을, 이제는 오기 전에 대비하려 애쓴다.

약을 먹은 지 1년이 넘으면서, 이유 없이 불안하고 초조했던 감정들이 눈에 띄게 사그라들었다. 그래서 이제야 겨우 ‘조절하려는 노력’이라는 걸 할 수 있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너무 지쳐 있어서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상태였다는 것도 뒤늦게 알게 됐다.


물론 식욕은 여전히 문제다. 이 시기만 되면 떡볶이와 초콜릿이 머릿속을 점령한다. 참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몸이 먼저 당긴다. 예전엔 그마저도 실패라고 느꼈지만, 요즘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이 시기 단 하루 이틀, 감정과 몸이 동시에 버거운 날에 조금 먹는 게 그렇게 큰 죄일까.


나에게 있어 PMS는 통제의 문제가 아니라, 평소에 참고 억누르며 나도 몰랐던 감정의 균열일지도 모른다. 조절하려 애쓰고, 이해하려 노력하고, 그래도 완벽하지 못한 나를 다시 받아들이는 시간. 여전히 쉽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제는 예전처럼 나 자신을 함부로 미워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이 글을 쓰면서도 여전히 조심스럽다. 혹시나 나약하다거나, 핑계를 대는 것처럼 읽히지는 않을지. 그럼에도 쓰고 싶었다. 매달 같은 시기에 무너졌다가, 아무 일 없던 사람처럼 다시 일상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고 싶어서.


이 글을 읽으며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고개를 끄덕인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조절하려 애쓰고, 이해하려 노력하고, 그 와중에 또 하루를 살아냈다는 것만으로도 잘하고 있다며 서로 응원하고 싶다.


글을 쓰다 보니 다른 여성들의 PMS는 어떻게 지나가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요령이 생겨 미리 대비하는 편인지, 아니면 여전히 지나간 뒤에야 알아차리는지. 조절하려다 오히려 더 지쳐버린 적은 없는지.

이런 이야기들은 같이 나누면, 혼자 품고 있을 때보다 덜 아프고 훨씬 괜찮아진다.


혹시, 당신의 PMS는 어떤 날씨를 겪고 있나요?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