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fp Aug 16. 2024

3. 예상을 뒤엎은 나의 종합심리검사 결과는?

생에 첫 신경정신과 약을 처방받다! 그런데 ADHD약은 아니고...

지난여름, 1n년간의 장롱면허를 졸업하기 위해 운전연수를 10시간 받았다. 운전연수를 받고 몇 달간 운전에 익숙해질 겸 혼자 운전하며 다니기 시작했는데 초보운전이라 그런 건지 정신과에서 흔히들 말하는 신경전달물질의 문제였던 건지 운전 중에 늘 신경이 곤두서있었고 예민했다. 아이들을 태우고 운전할 때는 아이들이 말 한마디만 걸어도 나도 모르게 짜증 섞인 큰소리를 냈으며, 여러 가지 사고과정들이 자동으로 오버랩되면서 불안과 걱정으로 머릿속을 꽉 채운채 운전을 해왔었다.


이런 여러 가지 심리상태나 불안도는 지금까지 (ADHD여서)  덜렁거리고 조심성 없이 살면서 겪어온 내 인생의 데이터들이 모여 걱정 많고 불안해하는 성격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시험지 작성과 대면 상담 때 최선을 다한 나는 ‘혹시라도 ADHD가 아니면 어떡하지?’라는 약간은 걱정 아닌 걱정을 했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검사결과를 의사 선생님에게서 듣고 나서야 여러 가지 걱정이나 불안도가 많은 이유를 알게 됐다.



-‘민프피(본명 비밀)’님께서는 지금 불안도가 굉장히 높은 상태시네요.


선생님께서는 우선 웩슬러 검사(지능검사-성인용)를 통해 봤을 때 지능 부분은 평균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지만 주의력결핍증세로 인해 실제 능력만큼 발현시키기 어려웠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더불어 우울증까진 아니지만 약간의 우울감도 보이고 사회적 긴장도가 높은 불안장애로 인해 더 그런 경향이 심했을 거라고 하셨다. 실제로 나는 사람들 앞에서 긴장하게 되면 알고 있던 것도 새로운 것처럼 느껴지는데 단순히 내가 완벽하게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자신감이 없어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불안도로 인한 증상이라니. 마찬가지로 중요업무를 실행해야 할 때 갑자기 기억이 하나도 안나는 날들이 있었는데 이게 ADHD로 인한 공존질환 중 불안장애-사회적 긴장도로 그렇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속으로 나는 ‘내가 우울증? 내가 불안장애? 내가? 누가 봐도 아무 생각 없어 보이고 남들은 밝게 보는데? 물론 걱정이나 불안은 가지고 있지만 그건 그냥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은 내 인생 데이터로 인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선생님께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저 이어서 이야기하셨다. 이런 이유들로 내가 가진 능력만큼 발휘시키기가 어려웠을 거라고. 내 잠재력을 꺼내기 위해서 불안증과 사회적 긴장도를 풀어주는 게 좋다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ADHD약을 먹기 전에 본인이 더 강하게 가지고 있는 질환을 우선치료해 보면서 부주의한 경향이 개선되는지를 우선 보자고 하셨다. 불안장애의 치료방법은 명상, 요가 등의 방법으로는 6개월 이상 치료해야 할 수 있고 약물로는 1-2개월 차부터 효과를 느낄 수 있다고 하시면서 나 같은 경우 많이 심한 경우는 아니라서 본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시도해 볼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럼 나는 약물로 빠르게 호전시키고 나중에는 명상이나 요가 등으로 루틴을 잡은 뒤 호전된 상태를 유지시키고 싶다고 이야기하자 바로 그럼 가장 부작용이 없고 약한 약으로 먼저 1주일치를 처방해 준다고 하였다.

’내가 정신과 약을 먹는구나. 것도 ADHD약이 아닌 불안장애 약으로.‘


진료실을 나와 수납하자 정신과 약국은 병원 내에 있어서 약을 받기 위해 대기하면서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가 집에 혼자 오롯이 있다 보니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유로 서글퍼졌다.


내가 지금까지 이상하던 이유가 불안장애였구나, 사람들 앞에서 이상하게 실수하고 그랬던 이유가 사회적 긴장도가 높아서 그랬구나, 미리 알았더라면 내가 되고 싶었던 내 모습에 조금 더 빨리 가까워졌을까, 왜 뒤늦게 가서 이제야 치료를 시작하게 된 걸까, 20대 30대 등 앞서 여러 기회가 있었는데 너무 늦게 온 거 아닐까 등등 금방 부정적인 생각에 다시 빠졌다가 다시 정신 차리고 생각했다. 100세 시대에 이제 겨우 만 37세이다. 정신과 약은 임신 중에는 어차피 끊었어야 하는데 그때 단약증세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아이들을 키워놓은 지금이 더 낫지 않나. 이제부터 내 모습을 조금이라도 바로잡고 발전해 가보는 거라고. 조금씩이나마 서서히 나아진다면 아이들에게도 발전하는 엄마로 보이지 않을까 하며.


그날 하루, 내 생에 첫 정신과 약을 처방받고 괜스레 낯선 느낌이 들었으나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가 흘러갔다.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아이들을 하원시키고, 저녁 먹이고 씻긴 뒤 하루를 마무리하고 침대에 들기 전 남편에게 물었다.


“자기는 만약 자기가 심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 있으면 나한테 얘기할 거야, 혼자만 알고 있을 거야?”


슬픔과 안 좋은 일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생각하는 INFP인 내가 묻자 굳이 슬픈 일과 안 좋은 일을 말해서 기분 안 좋아지는 사람이 두 명이 될 필요가 있냐는 가치관의 ISTJ인 남편이 대답했다.


“굳이 자기한테 말할 필요가 있나? 나 혼자 힘들면 되지, 굳이 자기한테 말 안 하지.”


이상하게 서운해진 나는 약을 먹고 점점 나아진 후 이야기해야지 라며 다짐하며 당분간은 내 이야기를 배우자에게도 비밀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날은 나도 모르게 눈물을 계속 흘렸던 밤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2. ‘신경정신과’의 진입장벽을 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