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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fp Aug 08. 2024

2. ‘신경정신과’의 진입장벽을 넘다!

겨우 예약한 신경정신과에서의 첫 진료에선 어떤 이야기와 검사를 할까?

성인 ADHD 단어를 알게 된 순간부터 ADHD의 특징이면서 나의 장점이자 단점인 과몰입과 과집중이 발현되었다. 끊임없이 중독적으로 인터넷과 책에서는 ADHD와 관련된 단어만 찾아보았고 ADHD관련 도서에 있던 ADHD 자가진단으로 막연하게만 생각하던 ADHD에 대한 상담을 병원에서 진지하게 받아봐야겠다는 결심은 충동적으로 병원 예약까지 끝내고 나서야 병원에 갈까 말까 한 고민이 겨우 멈췄다. 항상 집에서도 취미활동이나 수익활동을 한다는 핑계로 하던, 사실은 나를 잃고 싶지 않아 시작했던 일은 큰 애가 아직 낮잠을 자던 시기에 둘째는 임신 전이라 크게 무리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둘째를 임신하면서 앉아서 오래 하던 그 일은 몸에도 무리가 가기 시작했고 점점 열정과 집중력, 실행력 등이 골고루 낮아지는 날들이 이어지자 무기력해지기 시작했다. 점점 부정적인 생각도 많이 하기 시작했고, 마음속 추측은 점점 확신이 되었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내 신경의 문제를 전문가에게 털어놓고 진단받고 싶어 졌다. 동시에 어쩐지 ‘신경정신과’라는 단어가 주는 중압감, 부담감에 왠지 병원을 찾으면서도 정말 예약을 해도 되는지, 이런 정신과 쪽 의료기록이 남은 엄마는 앞으로 아이들 인생에 혹시나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지 무지에서 오는 여러 가지 망설임들로 병원 예약하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다시 마음을 고쳐먹은 것은 이런 내 정신질환적인 문제가 남아있는 것이 치료하는 것보다 아이들 인생과 가정분위기에 더 방해가 될 것 같다는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서 결국 병원을 여러 군데를 찾아보고 예약까지 진행했다. 약 용량이나 종류를 맞추기 전까지는 지속적으로 병원방문이 필요하다고 들었기에 주기적으로 가기 편한 위치에 있는 차로 15분 거리 이내에 있는 여러 신경정신과 병원 중에서 성인 ADHD와 관련된 진료를 하고 의료진이 여러 명 있는 지역에서 제법 큰 병원으로 예약을 잡았다. 유명하거나 큰 병원들은 초진을 잡을 때 오래 걸린다고 해서 감안하고 해를 넘기기 전인 23년 11월쯤 전화하자 12월 셋째 주가 가장 빠른 날이라고 하여 그렇게 예약을 잡았다. 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첫 진료를 가게 되었다.


신경정신과는 첫 방문이라 떨리면서도 나도 모르던 내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해결을 찾을 수 있을지 기대됐고 첫 진료에서는 어떤 것들을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던 상태였기 때문에 상담하면서 어떤 부분을 말하면 좋을지 머릿속에서 하고 싶은 말이나 해야 할 말들을 정리해 두었다. (차라리 메모를 해 가는 게 좋은 방법인 것 같기는 하다.) 그리고 방문한 뒤에 배정된 선생님과의 첫 만남에서 나는 힘들게 입을 뗐다.


나: 안녕하세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떤 부분이 힘드셔서 방문했을까요?

나: 요즘 나오는 성인 ADHD라는 게 저 같아서 검사받아보고 싶어서 왔어요.

선생님: 음, ADHD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면서 요즘 사람들이 우울증이나 다른 기타 질환으로 인한 집중력부족을 ADHD가 아닐까 하고 오시는 경우가 많거든요. 환자분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어떤 부분이 ADHD 같다고 생각하셔서 오신 걸까요?

나: 정리 못하고 집중 못하고 사람들 대화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눈치 없단 말도 많이 듣고 어릴 때 우산 같은 물건들도 많이 잃어버리고 학창 시절 좋아하는 과목과 아닌 과목사이의 점수편차도 크고 어쩌고저쩌고...

선생님: 그랬군요. 혹시 감정적으로 힘드시거나 어려운 부분은 없으세요?

나: 걱정이 많고 무기력하고 뭔갈 해야 하는데 하기가 어려운 적도 많아요. 시간을 의미 없이 흘려보낸다던가 그럴 때도 있어서요

선생님: 아기 낳고는 어떠셨어요?

나: 첫째 낳고는 기분변화나 그런 쪽은 금방 괜찮아졌는데요, 둘째 낳고 남편직장으로 인해 이쪽으로 이사 오게 되면서 연고도 없고 그러다 보니 외롭기도 했고 폭식증상도 있었어요

선생님: (기타 여러 가지 질문)

나: (나름대로 여러 가지 대답)


담당 선생님께 첫 진료를 받으며 생각보다 다양한 기분관련한 질문들도 받았고 나도 전반적으로 내 인지기능이나 기분상태가 어떤지도 궁금하다고 하자 선생님께서는 여러 가지 종합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종합심리검사(풀배터리 검사)를 받아보고 나중에 결과지를 보면서 같이 이야기하자며 첫 진료는 마무리되었다. 어쩐지 다른 병원 방문과 큰 차이가 없는 듯하면서 막연하게 생각만 하던 가슴속 깊은 이야기나 내면의 불안감등을 털어놓고 나니 처음 보는 선생님이지만 심적거리가 가까워진 것 같은 생각에 다음 진료 때도 만나 뵙고 싶다는 생각이 든 진료였다. 수납을 하자 제법 큰 금액을 결제하였고 심리센터에 방문해서 여러 가지 시험지를 받아가라는 안내를 받고 2층에 있는 심리센터에 방문했다. 그곳엔 하얀 가운을 입은 임상심리 선생님들이 계셨고 내 이름을 말하니 여러 종류의 제법 많은 시험지를 주면서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모를 인지장애나 정신과질환을 우려해선지 상냥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아주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어서 편안하게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고 다음 방문 때까지 모두 작성해서 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받아온 시험지중 일부는 최근 한 달 동안 있었던 상태를 표기하는 것들도 있어서 한 달 뒤로 진료예약을 끝내고 받아온 시험지들은 너무 많아서 벌써부터 숨이 막혀왔다. 나 주의력 결핍인데? ADHD인데 이거 다 할 수 있을까?라는 괜한 걱정이 있었고 몇몇 시험지는 이런 것까지 물어본다고? 싶은 내용들도 많았다. 결국 받아온 시험지를 다 해결하지 못한 채 진료예약을 한 날짜가 왔는데 마침 그때 아이들이 아파서 예약한 날 방문이 어렵다고 생각되어 또다시 한 달 뒤에 다음 예약을 다시 잡았다. 신경정신과적 특징일까, 당일 예약취소에도 다들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시험지 작성을 못했던 나는 결국 두 번째 방문하기 전 날에서야 겨우 시험지들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기분장애관련한 시험지도 있었고, 충동관련된 질문도 있었고, 주어진 단어로 문장을 만드는 시험지도 있었다. 방어기제 관련한 시험지도 있었고 한 편으로는 이런 것도 필요한가? 싶은 시험지도 있었는데 시험지 작성이 다가 아니었다. 시험지를 모두 작성 후 제출한 날, 임상심리사와 하는 3시간 이상 걸리는 면담 검사도 있어서 좀 이른 시간에 예약을 하고 방문했다.

그날은 의사 선생님과의 진료 없이 바로 임상심리검사실로 오전 일찍 도착해 지금까지 삶에서 왜 ADHD로 추정하는지 이야기도 하고 여러 가지 지능검사, 그림검사, 로르샤 검사 등을 했는데 역시나 곧 지루해진 나는 겨우겨우 마음을 진정시켜 가며 면담에 응했다. 계속 내 마음 한 켠에서는 다른 잡생각들이 다시 시작되었지만 늘 이렇게 살아온 나에게 그 잡생각을 무시하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다양한 이야기들과 퍼즐을 맞추고 단어기억을 하며 그림을 기억해서 따라 그리는 등의 검사를 마치자 마지막에는 모니터화면을 보고 화면을 보고 지시사항대로 버튼을 누르는 컴퓨터 검사를 시행했다. 그렇게 어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ADHD를 위한 검사였고 시험을 하던 중에는 딱히 어려움을 느끼지 않아 ‘나 혹시 ADHD 아닌 건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모든 검사를 마쳤더니 검사결과가 나오는 2주 이후에 예약을 잡게 되었고 그제야 시간을 보니 점심시간 1시간을 빼면 벌써 4시간이 지난 뒤였다. 성격 때문인지 ADHD 때문인지 빨리 검사결과를 알고 싶었는데 시간이 또 필요하다는 사실에 성미 급한 나는 겉으로 티 내지 않은 채 혼자서 초조해했고 결국 이야기했던 2주는 바쁜 시기여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세 번째 방문일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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