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ADHD에 대한 자아성찰 보고서
최근 몇 년 사이 내가 보는 유튜브에 ‘ADHD’에 대한 영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보육교사로 일하면서 유달리 충동성이 높거나 자기 조절이 안 되는 유아들 중에 ADHD진단받은 아이들 몇 명을 본 적이 있었고 단순히 그런 아이들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영상을 몇 개 시청했더니 이젠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성인 ADHD’에 대한 영상들이 뜨길래 처음엔 호기심에 시청해 보았다.
MBTI가 유행하면서 나의 특성은 INFP라서 그렇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중에 일상생활에서 불편함을 느끼거나 어딘가 조금 창피하다고 생각하던 것들은 아무리 고치려 해도 고쳐지지 않았기에 못 고치는 내 성격이라 생각하며 성인으로서 어딘가 미성숙하고 아직도 못 미더운 내 모습을 그냥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하던 나날이 이어졌다. 그런데 알고리즘에 뜬 ‘성인 ADHD’ 영상이나 관련 글을 읽으며 점점 생각이 바뀌었다. 성인이 된 ADHD의 특징의 대부분은 나를 나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는 그저 조금 덜렁대고 물건을 가끔 못 챙기며 어른이지만 아직도 종종 넘어지거나 잘 다치는 손이 좀 많이 가기도 하는 주변정리가 안 되는 그런 ‘특성’의 사람으로 나를 정의하며 살아온 3n년간의 삶이 혹시 모를 나의 ADHD 때문일 수도 있다고 하니 아이러니하게도 억울한 생각이 들었지만 약을 복용하면 고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당장 ADHD진단을 받고 싶었다.
20대 때 알바나 사무직종에서 일할 때 지시 이행률이 떨어지거나 알고 있으면서도 틀리는 등의 사소한 실수로 혼난 기억이 항상 있었고, 학창 시절에 흥미 없는 과목은 아예 공부자체를 안 하거나 재미없는 와중에 나름 열심히 해도 성적이 나오지 않아 성적의 점수편차가 제법 나는 편이었으며, 당장 해야 하는 것들보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들에 몰두하느라 생산성이나 자기 계발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던 나는 이미 자존감과 자기 신뢰감이 떨어져 뭘 해도 안 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단순히 내가 부주의하고 집중력이 없으며 산만하고 게을러서 그러겠거니 생각해 왔다. 일하면서도 데드라인이 있는 업무는 미루고 미루다 직전에 급하게 해치우다 보니 나중에 꼭 사소한 실수가 발견되기도 해서 일을 빨리 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업무를 완벽하게 마무리하지도 못한 내 자신에 대해 자기혐오와 떨어진 자존감으로 지금까지의 나를 부정적인 색으로만 채워오며 살았다.
덜렁거리는 나는 주변인들로 하여금 손이 많이 가기에 20대 땐 그야말로 '민폐캐릭터’ 그 자체였고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이런 내 모습은 왠지 창피해서 그러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점검하고 돌아보고 검열하며 남들은 그냥 할 수 있는 부분에 나는 정신적 에너지를 많이 쓰며 살아왔다. 그랬기에 남들은 그냥 하는 일도 나에게는 큰맘 먹고 에너지를 써야 하는 일이어서 체력소모나 정신력소모도 더 큰 편이었고 체력방전도 잦은 편이었다. 그냥 하는 많은 행동들에 유독 나는 큰 에너지를 들이고 신경을 아주 많이 써야 겨우 남들과 비슷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이어서 아주 기본적인 생활도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날들을 살다 보니 남들과 같은 하루를 보내더라도 내 에너지는 바닥나있었고 지속적인 자기반성과 자책들로 자존감은 바닥을 찍고 나에 대한 불안감은 올라갔다.
주부지만 두 아이 모두 기관에 보내는 요즘, 남는 시간만큼 자기 계발을 하고 싶은데 점점 일 시작이 잘 안 되고 그전에 하던 일은 지속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집안일이나 살림을 야무지게 하지도 못한 나에게 자괴감이 들던 중 유튜브 알고리즘에 뜨는 ‘성인 ADHD’라는 단어가 내 눈길을 이끄는 건 당연한 결과였을까. 알고리즘 때문인지 처음엔 나랑 연관이 없는 단어라고, 다만 일할 때의 아이들을 이해하기 위해 공부했던 단어라고만 생각했던 내 생각은 영상을 몇 개 보고 완전히 바뀌었다.
집중을 못한다, 산만하다, 머릿속 생각이 정리가 안된다, 내 책상이나 업무환경 등이 정리되지 않는다, 물건을 둔 장소를 자주 잊어버린다, 중요한 약속을 종종 깜박한다, 구도화 체계화가 어렵다, 충동적인 행동(충동구매)을 자주 한다, 감정기복이 심하다, 시작한 일의 마무리를 못한다, 타인의 이야기가 잘 안 들린다(웅웅 거리며 들린다), 대화 중 다른 생각을 할 때가 많다, 나도 모르게 잘 부딪히거나 넘어져서 몸에 멍이 많다, 과잉행동-가만히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게 된다 등등
이 나열한 모든 문장들이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의 나 그 자체였다.
그럼 나는 전두엽에 문제가 있는 걸까. 신경전달물질의 문제는 왜 생기는 거지. 어린아이들은 약 먹고 완치라도 가능한데 내가 만약 ADHD라면 고치기는 힘든 걸까. 그럼 나의 두뇌는 나이에 맞는 발달을 못한 걸까. 혹시 나는 알고 보니 지능이나 인지기능도 부족한 건 아니었을까 등등 여러 가지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 어지러웠던 머릿속은 평상시보다 더 어지러웠다.
그리고 걱정되는 ADHD의 또 다른 문제. ‘유전’.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미 아이 둘을 낳고 키우고 있는데 큰애는 아직 취학전이니 우리 아이들에게 행여나 나로 인한 유전으로 ADHD로서의 문제가 있다면 빨리 잡아줄수록 아이도 덜 고생하고 완치율도 높다고 하니 당장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런 나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단점 중 하나. 금방 식는다.
며칠간 고민하고 걱정했으면서 막상 ‘병원 예약해야지’하고 생각만 한 채 다시 몇 달이 흘렀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감정기복이 심하다고 생각하던 나는 어느 날 아이들에게 화풀이하듯 크게 짜증 내는 내 모습에 이런 엄마로 살다가는 아이들 정서발달과 성격발달에 방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래서 아주 충동적으로 지역에서 가장 크고 주기적으로 가더라도 부담 없는 위치의 신경정신과병원에 전화를 했고 바로 예약까지 잡았다.
병원에 다녀오면 뭔가 달라져 있지 않을까. 나도 지금까지 찾지 못한 내 정체성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너무 큰 기대를 하면 실망도 크겠지만 당시에는 당장 해결법을 찾은 듯한 느낌에 그렇게 기대하며 예약일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